2006년 지주회사를 설립한 국내 1위 게임업체 넥슨이 글로벌 게임업체로 도약하기 위해 지금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목표는 일본 증권거래소다. 그런데 상장이 자꾸 미뤄지고 있다. 그렇다면 왜 넥슨은 일본 증시에 이름을 올리려는 걸까? 그리고 왜 상장은 계속 지지부진한 걸까? 하제헌 기자 azzuru@hk.co.kr
2006년 넥슨은 내부 개발조직을 스튜디오 체제로 개편하고, 넥슨홀딩스(현 NXC)를 설립했다. 넥슨이 본격적으로 상장을 준비한 것이 바로 이때부터다
노무라증권이 예상하는 넥슨재팬의 일본 증시상장 후 시가총액은 약 13조 원. 이 기준으로 상장에 성공한다면 지배구조에 따라 그룹 지주사인 NXC는 약 10조 원의 지분 평가익을, 김 회장 내외는 약 7조 원의 평가익을 거두게 된다
넥슨이 일본 증시 상장을 미뤘다는 소식이 들려왔 다. 지난해 넥슨이 “2011년까지 넥슨재팬(넥슨 은 올해 넥슨재팬이란 사명을 Nexon Co로 변경 했다. 기사에선 편의상 넥슨재팬이라고 표기한 다)을 일본 도쿄 증권거래소 1부에 상장하기 위 해 노력할 것”이라며 강한 의지를 보였던 터라 그 의중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넥슨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봤다. 답변은 간략했 다. “최근 글로벌 증시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판 단 아래 내부적으로 상장 시기를 조율한 것뿐입 니다.” 상장에 관한 공식적인 넥슨의 입장은 결 국 “상장을 추진 중인 것은 맞지만, 시점은 계속 논의 중”이라는 것이었다.
국내 게임산업의 또 다른 축인 엔씨소프트는 2000년 이미 국내 증시에 상장했다. 넥슨이 엔 씨소프트와 달리 일본행을 택한 이유는 무엇보 다 몸값 평가에서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 문이다. 전통적인 게임 강국인 일본은 증시에서 도 게임업체 평가에 우호적이다. 2000년 초반 일 본에서 게임주는 국내에 비해 5배 높은 가격으 로 평가받기도 했다. HMC투자증권 최병태 연 구원은 이렇게 설명한다. “넥슨 상장은 일본에서 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실제 상장되기 전 기업공 개가 진행되면 훨씬 높은 수준으로 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어요. 투자금을 무리 없이 모을 수 있 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컸을 것입니다.”
현재 넥슨 지배구조는 지주사인 NXC(구 넥슨홀딩스)가 일본 법인인 넥슨재팬 지분 78.77%를 소유하고, 넥슨재팬이 한국 법인을 포함한 그 밖의 전체 넥슨 계열사를 지배하는 형태로 짜여 있다. 넥슨재팬은 NXC 자회사 형 태의 사업 지주사로 넥슨이 거느린 자회사들의 경영권 지분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모든 현금흐 름을 관리하는 모기업이다. 넥슨 창업주인 김정 주(43) 회장은 NXC의 지분 48.50%를, 배우자 인 유정현 이사는 21.15%를 보유하고 있다.
넥슨은 올해 안에 일본 증시에 상장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노무라 증권을 주관사로 지정해 놓기까지 했다. 지난 8월에는 상장 준비 단계로 직원들의 주식 계좌를 개설하도록 하는 등 본 격적인 행보에 나서기도 했다. 노무라증권이 예 상하는 넥슨재팬의 일본 증시상장 후 시가총액 은 약 13조 원. 이 기준으로 상장에 성공한다면 지배구조에 따라 그룹 지주사인 NXC는 약 10 조 원대의 지분 평가익을, 김 회장 내외는 약 7 조 원의 평가익을 거두게 된다.
넥슨이 상장 연기 이유로 악화된 증시 상황 을 꼽고 있지만 증권가의 해석은 조금 다르다. 김창권 대우증권 연구원은 말한다. “투자자 등 을 대상으로 한 기업가치 평가에서 김정주 회장 이 원하는 가격으로 평가받지 못했기 때문이라 고 알려져 있어요. 과연 어떤 기업이 더 좋은가 라는 밸류에이션에 대한 논쟁은 언제나 있는 일 입니다. 시가총액이 큰 게임기업의 등장은 국내 게임 기업들의 전반적인 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 합니다.”
또 다른 사정도 있다. 넥슨은 최근 게임업체 인 JCE 인수를 위한 실사 작업에 돌입했다. JCE 는 “지분매각을 목적으로 인수 의향이 있는 넥 슨에게 기업 실사 자료를 제공했다”며 “지분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넥슨의 JCE 인수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넥슨이 그동안 게임업계 M&A에서 큰손 역할을 해왔 던 전례를 비춰봤을 때 성사 가능성은 꽤 높다 는 분석이다. 게임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넥 슨은 매년 1~2개 이상의 게임업체를 인수해왔 어요. 자신들이 취약한 게임분야 장르가 있으면 M&A로 해결해 왔습니다. 스포츠게임에 강세 를 보이고 있는 JCE는 넥슨에게 매력적인 업체 라 할 수 있죠.”
이번 M&A는 일본 상장 건과 연관되어 있다. JCE를 인수하면 일본 상장을 위한 서류 작업을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넥슨의 상 장을 주도하고 있는 최승우 넥슨재팬 대표는 지 난해 이렇게 토로하기도 했다. “상장을 하려면 그룹사 전체의 회계 방식을 통일해야 한다. 최근 몇 차례의 인수합병으로 살펴봐야 할 서류작업 양이 더욱 방대해진 것도 상장이 지연되고 있는 이유다.” 업계 일각에선 넥슨이 JCE 인수전에 뛰 어든 것 자체가 상장 연기 쪽에 무게를 싣고 있 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넥슨은 알고 보면 대단한 회사다. 1996년 ‘바람의 나라’를 서비스하면서 국내 최초로 온 라인게임 시장을 개척했다. 넥슨은 지난해 연 결 매출액 9,343억 원을 올려 국내 게임회사 최 초로 매출 1조 원 돌파를 노리고 있다. 이번 실 적으로 넥슨은 국내 최대 게임업체의 위상을 확고히 했다. 엔씨소프트의 2010년 연결 매출 6,497억 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43%에 달하는 넥슨의 영업이익률도 엔씨소프트의 37%를 앞 서고 있다.
넥슨이 지금처럼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M&A와 해외실적을 빼놓을 수 없다. 2004년 위젯을 인수한 넥슨은 온라인게임 ‘메이플스토 리’를 출시해 문자 그대로 대박을 쳤다. 2008 년에는 ‘던전앤파이터’를 개발한 네오플을 인 수하면서 이듬해 게임업체로는 최초로 매출액 7,000억 원 고지를 밟았다.
넥슨은 ‘바람의 나라’ 론칭 이듬해인 1997 년 이 게임을 미국에 수출했다. 2002년 일본 법 인과 2005년 미국 법인을 설립하는 등 시장 확 대에 나섰고, 2007년에는 유럽 법인까지 설립 하면서 글로벌 비즈니스를 위한 거점을 모두 확 보했다. 지난해 해외에서 거둬들인 매출은 4,714 억 원으로 전체의 60%를 넘어섰다.
전략적 인수합병과 적극적 해외진출로 성장 한 넥슨은 지주회사 체제로 변신한다. 2006년 넥슨은 내부 개발조직을 스튜디오 체제로 개편 하고, 넥슨홀딩스(현 NXC)를 설립했다. 넥슨 이 본격적인 상장 준비를 시작한 것이 바로 이 때부터다.
당시 넥슨은 상장 추진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외부 환경 변화에 넥슨이 흔들림 없 게 되었을 때 상장을 추진하려고 했다. 매출의 70% 이상이 해외에서 이뤄지는 상황에서 브랜 드 인지도 강화 차원에서 상장 추진 결정을 내 렸다.” 하지만 일본 진입은 뜻대로 이뤄지지 않 았다. 일본 증시 진입을 다시 본격적으로 꿈꾸 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이렇게 보면 넥슨의 상장 연기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수년 전부터 일본 증시 상장 의지 를 밝혀온 넥슨은 시장의 기대와 달리 이를 차 일피일 미뤄왔다. 그동안 넥슨은 상장 추진에 따른 기대감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왔다. 하 지만 이 과정에서 국내 최대 게임업체의 위상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도 쏟아졌다. 넥슨이 그동안 상장 이슈와 관련해 관계사 주가를 띄우는 반사이익을 톡톡히 챙겨 왔기 때문이다.
실제 넥슨의 자회사인 게임하이는 넥슨의 상 장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주가가 치솟았다. 지난 8월 초에는 넥슨의 지주회사인 NXC가 네오위 즈에 투자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네오위즈 가 상한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특히 NXC는 네 오위즈 지분 6%를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한 지 이틀 만에 지분 상당수(3.5%)를 매도해 102억 원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말한다. “넥슨은 지금 까지 비밀유지조항을 이유로 상장과 관련해 명 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 서 시장의 혼란만 가중되고 있어요. 국내 부호 순위 상단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성장한 김정 주 회장의 회사라는 점 때문에 그동안의 모호 한 행보들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이 나오고 있 는 것도 사실입니다.”
김정주 회장은 성공한 벤처기업인이다. 얼마 전 재벌닷컴이 발표한 한국 자산가 순위에서 김 정주 회장은 개인재산 2조3,358억 원으로 8위 에 등극했다. 일본 증시 상장으로 얻는 평가이 익이 더해진다면 국내 최고 재벌과 거의 비슷한 위치에 올라서게 될 수 있을 정도로 부호란 얘 기다. 넥슨이 일본 증시 상장을 미루는 건 욕심 을 내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더 큰 것을 노리는 김 회장의 의도가 반영된 것일까? 아직까진 알 쏭달쏭하다.
사진 한국일보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