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비트 월드

THE UNSPLITTABLE BIT

과학자들은 끊임없이 세계를 저장하고, 압축하고, 원자화해 왔다.

과연 그 한계에 도달할 수 있을까?


정답은 “예스”다.


BY JAMES GLEICK

미국 메인주 뱅거의 전신국. 한 남자가 급히 들어와 종이에 적은 메시지를 즉시 전송해 달라고 요청했다. 전신 기사는 종이를 받아들고 전신기를 두르려 메시지를 전달했고 늘 그랬듯 종이는 벽의 고리에 꿰어 매달았다. 그런데 손님은 불만스런 표정으로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결국 손님은 소리를 질렀죠. 메시지를 왜 보내지 않느냐고요. 전신 기사는 이미 보냈다고 했지만 그는 코웃음을 치며 다시 말하더군요. ‘보내긴 뭘 보내요. 내 메시지 종이가 아직 저기에 있잖아요.’”
- 하퍼스 뉴 먼슬리 매거진 발췌 (1873년)

어처구니없는 이 에피소드에서 우리는 한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메시지가 꼭 종이처럼 물리적 형태를 가질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전신의 발명 이후 추상화·부호화 된 메시지는 처음에는 점과 대시(-) 기호로, 이후에는 전자적 자극으로 변환돼 전선을 타고 상대방에게 갔다. 오늘날에는 아예 무선으로 허공을 날아 전송된다. 우리는 이들 정보를 컴퓨터로 처리하고, 클라우드에 저장하며, 휴대기기에 담아 가지고 다닐 수도 있다. 정보가 세상을 움직이는 필수요소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정보란 무엇인가. 비트를 통해 정보를 전달하는 방법을 고안, 디지털의 아버지라 불리는 클로드 섀넌은 비트를 정보의 기본단위로 정했다.

0 또는 1뿐인 비트는 동전 던지기의 결과처럼 불확실한 것들을 수치화 할 수 있다. 그는 또한 정보는 놀라움(또는 불확실성)의 표시인 동시에 추상적이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굳이 물리적인 형상을 띨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섀넌의 수학적 정보 이론을 바탕으로 과학자들은 문자, 소리, 이미지 등 다양한 상징들을 정량화할 수 있게 됐다.

다음 과제는 정량화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다. 섀넌은 이에 대해 “특정 지점에서 선택된 메시지를 다른 지점에서 정확하게 재현하는 게 의사소통의 가장 근본적 과제”라며 “중요한 것은 메시지를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보내는 데 따르는 어려움”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지점이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정보의 출발점과 도착점은 시간적 또는 공간적으로 분리돼 있다. 이는 서울과 부산의 전신국, 수십 광년 떨어진 두 개의 행성, 인간 두뇌 속 뉴런까지 모두 포함된다.

메시지는 원자가 아닌 상징으로 구성되지만 정보를 보내는 데는 돈이 든다. 섀넌의 동료 학자 워런 위버는 정보에 대한 섀넌의 추상적 관점을 다음과 같은 말로 멋지게 정리했다.

“정보는 글이나 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음악에도, 그림에도, 연극에도, 춤에도, 그 밖의 모든 인간 행동 속에 존재한다.”

이 점에서 정보 이론이 유전학에서 심리학에 이르는 여러 분야에서 두루 큰 영향을 끼치게 된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중요 기초과학인 물리학은 아직 정보 이론의 미개척지로 남아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물리학 이론가들은 새로운 아원자 입자와 그 원자들의 상호작용을 지배하는 규칙을 알아내고자 했다. 여기에 의사소통에 대한 연구 따위가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그들에게 비트 같은 것은 무의미했으며 전기공학자들의 영역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달라졌다. 물리학에도 정보 이론이 적용되고 있다.

정보는 물리적이다
물리학에 정보 이론을 적용한 최초의 학자는 미국의 롤프 란다우어 박사다. 정보에 대한 그의 철학은 논문 제목이었던 ‘정보는 물리적이다(Information is physical)’에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에게 비트는 결코 추상적 존재가 아 니다. 석판 위의 그림, 펀치 카드에 뚫린 구멍, 위아래로 움직이는 아원자 입자 등 정보는 물리적 변화 없이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정보는 물리적 세계의 일부로서만 사용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란다우어 박사와 그의 동료들, 특히 찰스 H. 베넷은 계산 과정에서 열역학적 변화를 연구하며 정보와 물리학을 연결시켰다. 이는 처음에는 다소 이상하게 받아들여졌다. 정보처리는 보통 실체가 없는 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랬던 것은 아니다. 양자 이론가이자 수학자 폰 노이만은 1949년 ‘에드박(EDVAC)’이라는 전자식 컴퓨터의 제작에 참여하던 중 똑같은 의문을 던졌다.

에드박은 진공관이 6,000개나 달려있는 거대한 컴퓨터지만 메모리 용량은 5킬로바이트에 불과했다. 그는 이 컴퓨터의 가장 기본적 정보 처리 활동 단위, 즉 1비트를 연산할 때마다 나오는 열의 양을 계산해 보았다.

그로부터 12년 후 베넷은 노이만이 제기한 의문에 정답을 증명하려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상당수의 논리연산에는 전혀 에너지가 들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얼핏 보면 비트가 0 에서 1로 바뀔 때, 혹은 그 반대의 경우 에너지가 사용되지 않고 보존되는 것은 타당하다.


왜냐하면 정보 자체가 그대로 보존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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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베넷은 컴퓨터에서 정보가 삭제될 때 열의 발생을 발견했다. 전자식 컴퓨터가 콘덴서에 저장된 정보를 삭제할 때 실제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물리학자들은 이를 바탕으로 정보를 잊는 데는 에너지가 든다는 결론을 얻었다.

란다우어 박사는 이런 물리적 한계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의 계산에 거의 신적인 능력을 부여한다. 이론상으로는 매우 강력한 컴퓨터를 개발하면 물리학의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비트에서
그러나 유한한 우주에서 무한한 메모리가 존재할 리 없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있는 이상 정보 역시 제한을 받게 된다. 우주 속 모든 비트의 숫자를 헤아리고자 하는 신세대 우주론자들에게 이 제약은 매우 심각한 요소다.

MIT 극한 양자 정보이론센터(xQIT)의 세스로이드 소장이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우주를 거대한 컴퓨터라 가정하고 축소된 플랑크 상수, 빛의 속도, 빅뱅 이후 흐른 시간 등을 모두 계산해 넣으면 우주가 태어난 이후 현재까지 1만120회의 연산을 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우주를 이루고 있는 모든 입자의 자유도를 계산하면 우주는 현재 약 1,090 비트의 정보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렇게 구체적 수치가 나왔음에도 여전히 정보는 추상적으로 여겨진다. 이진수인 비트는 동전 던지기의 결과와도 같다. 예 또는 아니오. 0 또는 1. 켜짐 또는 꺼짐일 뿐이다. 그 실체는 없다. 그런 것들이 어떻게 물질이나 에너지처럼 물리학의 기반이 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로이드는 이렇게 설명한다.

“흙, 공기, 불, 물은 에너지가 있어요. 이들이 취한 또 다른 형태가 바로 정보죠. 무엇을 하더라도 에너지가 필요하듯 무엇이 이뤄졌는지를 명기하려면 정보가 필요합니다.” 상대론의 선구자였던 존 휠러는 아인슈타인과 보어의 동료이자, 블랙홀이라는 용어를 만든 이론가다. 그는 앞서의 로이드의 말을 한 마디로 줄여 ‘모든 것은 비트에서 시작된다’고 표현한 바 있다. 이 말은 그가 1989년 발표한 유명한 논문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는 논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모든 입자, 역장, 시공연속체의 기능과 의미, 근원적 존재는 비트에서 기원한다.” 양자 이론가들에 따르면 자연은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최소 단위인 양자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이진수의 선택도 역시 양자다. 이는 ‘관찰자의 역설’을 설명해준다. 관찰자의 역설은 ‘실험의 결과는 그것이 관찰됐을 때 비로소 영향을 받고, 규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관찰만이 실험의 전부가 아니다. 질문을 하고 진술하는 것 역시 실험의 일부며 그 또한 궁극적으로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비트로 표현되는 것이다. 이는 휠러의 글에 잘 나타난다. “현실에 대한 궁극적 분석은 예 또는 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그는 후학들에게 물리학을 연속체의 언어에서 비트의 언어로 바꿀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천문학적으로 큰 숫자 속에 들어있는 비트를 결합시켜 실재를 얻는 날이 온다면 그때야말로 비트와 실재에 대해 더욱 잘 알게 될 것이다.” 왜 자연을 양자역학의 시각으로 볼까. 그것은 정보를 양자역학의 시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비트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입자다.

양자컴퓨터 A to Z
MIT 극한양자정보이론센터(xQIT) 세스 로이드 소장이 알려주는 양자컴퓨터

양자컴퓨터와 일반 컴퓨터의 차이는?
양자컴퓨터는 물리학에서 가장 작고 기본적 단위를 다룬다. 일반 컴퓨터는 단 1비트의 정보를 다룰 때조차 엄청난 수의 전자가 필요하다. 반면 양자컴퓨터는 소립자 하나에 1비트의 정보가 저장된다. 따라서 1큐비트(qubit)는 전자 하나를 의미한다고 봐도 된다.

*큐비트: 양자컴퓨터 계산 단위

비트가 작을수록 좋은 이유는?
양자역학에서는 하나의 전자가 동시에 여러 군데에 존재할 수 있다. 하나의 전자에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시켜도 해낼 수 있다는 뜻이다.

다중 프로세서 컴퓨터와의 차이는?
다중 프로세서이든 아니든 일반 컴퓨터에서 1비트는 0 또는 1이다. 전자가 이곳에 있으면 0이고, 저곳으로 가면 1이 되는 식이다. 그러나 양자컴퓨터에서는 1비트가 0이나 1, 혹은 동시에 둘 다가 될 수도 있다. 양자컴퓨터의 1큐비트는 동시에 두 가지 정보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마찬가지로 2큐비트와 3큐비트는 각각 동시에 4가지, 8가지 정보가 된다.

그럼 오늘날의 양자 컴퓨터는 몇 큐비트인가?
현재 수십 큐비트급 성능을 갖고 있다. 덕분에 복잡한 계산도 매우 빠르게 해낸다. 300 큐비트만 되면 동시에 2,300가지 일을 해낼 수 있게 된다. 이는 우주의 소립자 숫자와 맞먹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컴퓨터만 있으면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양자컴퓨터는 어떻게 작동되나?
전자를 제어할 수 있다면 큐비트의 제어도 가능하다. 극초단파나 레이저를 쏴서 큐비트를 원하는 곳으로 옮기는 것이다. 이미 인류는 극초단파와 레이저에 대한 충분한 사용 노하우를 갖고 있다.

생김새는 일반 컴퓨터와 비슷한가?
아니다. 양자컴퓨터는 1950년대의 컴퓨터와 비슷하다. 큐비트는 작은 시험관에 든 분자 속에 저장된다. 이런 큐비트를 움직이려면 시험관을 초전도 자석 사이에 놓아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기기는 초저온 액체 헬륨 장치 속에 들어 있다. 때문에 양자컴퓨터의 모습은 케이블이 잔뜩 연결돼 있는 맥주통처럼 된다.

큐비트를 움직이는 방법은?
먼저 일반 컴퓨터로 지시를 내린다. 그러면 지시가 통역돼 극초단파 발생기에 전달되고 극초단파가 큐비트를 움직인다. 이후 분자에서 약한 극초단파가 발생되는데 이것이 연산의 답이다.

향후 양자 구글링도 가능할까?
양자 구글링이니 큐글(quantom+google)쯤 되려나. 어쨌든 양자컴퓨터만 있으면 완벽한 보안과 익명성을 확보한 채 데이터베이스를 신속히 검색할 수 있다. 일단 큐글은 답을 주고 나면 질문이 무엇인지 절대 복제할 수 없다. 양자 상태를 망가뜨리지 않고는 양자 상태의 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개인정보보호 브라우징도 새 시대를 맞게 되나?
맞다. 그래서 구글의 공동창립자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에게 달려가 이 아이디어를 설명하기도 했다. “드디어 양자 인터넷이라는 멋진 개념이 나왔습니다. 꿈의 실현을 위해 돈을 내시겠습니까? 아니면 저희 회사를 사시겠습니까?” 그들은 나중에 돌아와서 이렇게 답했다. “죄송합니다. 우리 사업은 모든 사람의 모든 것을 아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따라서 양자 인터넷은 우리의 계획과 어긋납니다.”

양자컴퓨터로 해결 가능한 최고의 난제는?
우주의 기원과 운명이다. 사실 우주 자체가 양자 컴퓨터와 다름없기 때문에 양자컴퓨터가 있다면 이 문제를 풀 수 있다. 정보의 관점에서 우주를 생각해보자. 우주는 소립자라는 이름의 비트로 구성돼 있고, 소립자들이 상호작용하며 우주라는 이름의 양자컴퓨터가 작동된다. 우리는 우주를 이루고 있는 비트의 숫자를 파악할 수 있고, 이들을 움직이려면 얼마만한 에너지가 필요한지, 우주에는 얼마만한 에너지가 있는지도 계산할 수 있다. 우주가 갖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비트가 움직이는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다. 따라서 충분한 비트만 확보한다면 우주 자체와 똑같은 양자컴퓨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양자컴퓨터가 개발되면 무엇을 묻고 싶나?
우주 자체의 근본적 물음인 “왜?”를 묻고 싶다. 많은 답이 돌아올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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