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꿈은 중역이다. 하지만 꿈이 현실이 되긴 힘들다. 특히 대기업이라면 더욱 그렇다. 1%도 안 되는 좁은 문을 뚫어야 이사직에 오를 수 있다. 여기 대기업 임원으로 또 Ceo로 산업현장을 30여 년 이상 누벼온 경영 9단들이 있다. 대기업 퇴직 임원들이 7년 전 결성한 전경련 경영자문단 위원들이 그들이다. 포춘코리아 기자가 인천과 포항으로 기업탐방을 나선 자문위원단을 1박 2일간 동행 취재했다.
인천 middot; 포항=한정연 기자 jayhan@hmgp. co.kr
11월10일 오전 7시30분 여의도 전경련회관 앞에서 버스에 오르려는 전경련중소기업협력센터 소속 경영자문위원단을 만났다. 김성덕 전 연합철강 대표(현 경영자문위원장)가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버스 3대에 나눠 탄 70여 명의 자문위원들 중에는 낯익은 얼굴도 보였다. 삼성과 LG, 포스코, 대우, 롯데 등 대기업 출신이 대부분이다. 현재 자문위원은 128명. 이 중에는 창업으로 성공한 이도 있고 꾸준히 고문으로 여러 회사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
대입 수능이 치러진 이날 자문위원단은 그동안 경영 자문을 해줬던 기업 두 곳을 방문했다. 인천의 인쇄회로기판(PCB) 제조업체 현우산업과 포항의 합금주강품 제조업체 동주산업이다. 수능 점수를 확인하러 가는 것처럼 경영자문위원들의 표정이 들떠 보였다.
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현우산업은 LG디스플레이의 협력업체다. 이들이 자문위원단을 찾은 이유는 주요 공정에서 나오는 불량률을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2011년 예상 매출이 1,500억 원을 넘는 곳으로 2007년 코스닥에 상장된 업체다. 이 회사 문병선 사장은 인쇄회로기판 표면에 잉크를도포시켜서 대량으로 복제하는 과정과 제품을 화학처리해 패턴을 찍어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량률을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이 위원단에 자문을 구했다.
경영자문단에서는 LG마이크론 사장을 지낸 조영환 자문위원을 주치의로 내세웠다. 그는 2010년 10월부터 6개월 동안 LG디스플레이 상생팀과 함께 제조과정 전반을 점검하고 대안을 내놓았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디스크 롤러 간격을 변경하고 노즐의 조합을 재구성하면서 두 공정에서 발생하던 불량률이 46%나 줄어들었다. 양산 기간도 절반으로 단축됐다. 조용환 위원은 “100만 개를 만들 때 불량이 5,000개 정도 나던 것을 절반 가까이 줄인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며 “나와 현우산업과 LG디스플레이의 삼박자가 잘 맞았다”고 말했다.
권위의식 없는 친절한 경영 주치의
버스가 점심식사를 위해 고속도로 휴게소에 잠시 정차하자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띄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비서실장으로 유명한 기외호 전 헤럴드경제신문 대표는 기자가 미처 명함을 건네기도 전에 먼저 손을 내밀며 인사를 건넸다. 이처럼 자문위원단은 작은 중소기업을 방문하면서도 권위를 벗어 던지고 적극적으로 먼저 다가섰다. 포항에 있는 동주산업 공장을 둘러보던 자문위원단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실무진, 경영진을 가리지 않고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수첩에 옮겨 적었다.
심만섭 위원(전 현대금속 대표): 초대형 롤초크 조립라인의 자동화가 안 돼 있는 이유는 뭔가요?
김병오 동주산업 차장: 소규모 주문제작이 많다 보니까 수작업을 하는 게 경제성이 좋습니다.
심만섭 위원: 내구성이 좋기 때문에 수요가 발생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겁니다. 이 부분을 해소하려면 수출선을 다양하게 유지하는 게 좋겠어요.
포스코의 자재부문 우수업체로 선정된 동주산업은 주력제품인 롤초크(두꺼운 철판을 눌러 얇은 강판을 만드는 제철소 압연공정에 사용하는 부품)를 중심으로 지난해 연매출 354억 원을 올렸다. 2009년에는 1,000만 불 수출탑을 수상하고, 지식경제부가 선정한 세계일류상품 생산기업 인증도 받았다. 포스코의 권유로 자문을 구한 이 회사의 결과도 역시 실적으로 나타났다.
라채홍 동주산업 회장은 “경영 전반을 진단해 준 자문위원단이 해외로 나가라고 조언한 게 가장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자문위원단은 롤초크 시장을 분석해 유럽 기업 위주의 신규시장 진출 전략을 제공했다. 특히 해외 판매 확대를 위한 사내 문화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자문기간 중에 이 회사는 일본 NSC, 스미모토제철소 등과 200만 달러 수출계약을 맺었다. 유럽의 지멘스VAI와도 100억 원 규모의 계약체결을 눈앞에 두고 있다.
성과 보고를 마치고 공장을 견학하는데 라채홍 회장 주변을 대여섯 명의 자문위원들이 둘러싸고 질문을 던졌다. 10여 분 지났을까? 경영 9단들은 현장에서 즉석처방을 내렸다.
나채영 회장: 포스코에 우리 제품이 들어가는 것이 수출할 때 큰 신용이 되고 있습니다.
오세희 고문: 그렇죠. 동반성장이라는 것이 그리 거창한 게 아니죠.
나채영 회장: 이번에 지멘스에 100억 원 규모 수출을 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됐어요. 우리 수출부서에서 차장으로 근무하는 제 아들이 지멘스와 협상을 주도했습니다. 무엇보다 전 직원들에게 매일 영어 강좌를 듣게 하고 해외영업부서를 신설하도록 자문해주신 덕이 컸습니다.
양금승 소장: 포스코의 경쟁력이 세계적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협력업체라는 점을) 최대한 활용하시면 좋겠습니다.
장종웅 위원: 수출이 늘어날수록 환 헤지가 걱정이네요.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나채영 회장: 안 그래도 그런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김성덕 위원장: 우리 자문단에 수출입은행에서 오래 근무한 위원이 있어요. 자문을 요청하시면 언제든지 도와드리겠습니다.
전경련 중소기업경영자문단은...
전경련 중소기업경영자문단은 전직 대기업 CEO와 임원, 중견기업 CEO 중 경력 5년 이상의 자문위원이 모여 2004년 7월 구성됐다. 현재 자문위원 수는 128명. 다시 산업 현장으로 돌아간 전직 위원까지 합치면 200명이 넘는다.
이들 자문위원은 지금까지 중소기업 4,243곳에 총 1만 번이 넘는 경영컨설팅을 제공했다. 특히 경영닥터제는 대기업 협력업체에 경영 전략을 짜주고 실제로 성과를 도출해 주는 제도다. 삼성, LG, 포스코, KT 등 10대 그룹 협력사 20곳을 포함해 지금까지 83개 대기업 계열사와 170개 협력업체가 이 제도를 이용했다.
경영자문단은 전경련 중소기업협력센터가 지원하고 있다. 협력센터는 2005년 10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을 위해 문을 열었다.
협력센터는 단순히 경영 멘토 제도만 운영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단기적인 자금난을 겪고 있는 유망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기협기술금융 융자 추천제를 시행하고 있다.
전경련 중소기업경영자문단의 자문을 받는 기업 중 신용등급 B등급 이상의 기업은 2년간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다.
사진 전경련중소기업협력센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