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하민회 이미지 21 대표 peepo1029@naver.com
바야흐로 한류, K-Pop 등 한국의 '흥'이 세계를 사로잡고 있다. 좋아하게 된 가수의 국적이 한국이라 노키아 휴대폰을 삼성 애니콜로 바꾸게 되었다는 프랑스 소녀의 이야기가 유튜브를통해 들리는가 하면 한국 드라마를 보기 위해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외국인들도 종종 눈에 띄고 있다. 최근에는 영국 공영방송 BBC의 국제방송인 BBC 월드 여행프로그램 '패스트트랙 Fast Track'을 통해 2부작으로 서울의 한류와 의료관광이 소개되었고, 곧이어 서울 시민의 생활상을 담은 미니 다큐멘터리 '원 스퀘어 마일 온 서울 One Square Mileon Seoul'도 유럽middot;중동 middot; 아프리카 middot; 아시아 middot; 태평양 middot; 미주 등 전 세계 114개국 약 3억 가구에 방영될 예정이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의 발표에 따르면, 해외 20개 지역 한국문화원의공식 한류 팬클럽은 182개 정도이며, 회원 수는 약 33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고 한다. 말 그대로 문화 콘텐츠 외교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진행 중이다.
하지만 한국의 국제적인 평판은 그리 높지 못한 형편이다. 지난 9월 발표된 세계 평판 순위에서도 일본, 인도, 태국보다 낮은 34위에 랭크되었다. 평판 연구소(Reputation Institute)가 매년 전 세계 4만2,000명을 대상으로 존경과 신뢰, 호감, 국민생활의 질, 치안 상황, 정부의 효율성 등을 기준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해 내놓는 이 랭킹 리스트에서 우리나라는 전년에 비해3단계 하락해 각종 범죄와 치안 불안으로 정평이 나 있는 멕시코(35위)와 비슷한 순위를 기록했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40여 년간 한국에서 생활해 온 피터 바돌로뮤 영국 왕립아시아학회 이사는 한 칼럼에서 여전히 많은 서양인들이 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나 오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한국에 대한 왜곡된 정보들이 세계적으로 퍼졌고, 한국전쟁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게 작용한 탓인 듯하다. 바돌로뮤는 그동안 경제적인 발전에 비해 국가 이미지 알리기에 지극히 소홀했다는 점도 여기에 한몫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세기 초부터 꾸준히 세계에 자국 문화를 소개해 인상파 회화에까지 영향을 미칠 만큼 세련되고 독특한 동양의 대표 문화로 자리매김한 이웃나라 일본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위상은아직까지 매우 저조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전 세계 인구가 70억이 된 지금 경제규모 세계 12위인 한국이 이제서야 '한류'라는 이름으로 새삼 일부 세계인들의 눈길을 끌게 된 것이 과연 흥분할 만큼 대단한 사건인지, 어쩌면 진작 했어야 할 과제를 늦게 제출하면서 휘파람까지 불며 마냥 좋아하고 있는 것이 과연 우등생이 취할 자세인지 지금쯤은 진지하게 숙고해봐야 한다는 얘기다.
최근 경제대국으로 거듭나면서 자국 이미지 개선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또 다른 이웃나라 중국은 2009년에만 450억 위안(약 7조6,000억 원)을 국가 위상 제고에 투입했다. 대표적인사례로 중국어 교육을 통해 중국의 가치와 문화를 전파하는 공자학원을 들 수 있는데, 2004년 한국에 처음 설립된 이후 약 96개국에 332개의 공자학원과 369개의 공자교실이 운영되고 있다. 이젠 세계 대도시 옥외 광고판에서 중국의 국가홍보 광고를 보는 것이 놀랍지 않은 일이 되었다.
가장 염려스러운 점은 한류를 그저 자부심 정도로만 인식하는 것이다. 한류는 절호의 국가브랜드 마케팅 기회이자 평판 향상을 위한 효율적인 디딤돌이다.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에 호감을 가지게 된 외국인은 한국 상품을 거부감 없이 구매하고 서비스를 이용하기 마련이다. 실제 한류 이미지와 밀접하게 연결된 화장품, 성형, 한식 등 분야에선 가시적인 성과가 뚜렷하게나타나고 있다. 화장품 수출은 43% 이상 증가했고 세계 각지의 한식당들도 덩달아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하지만 한류와 제품 혹은 기업체를 결합시키는 프로그램이나 지원제도는 현재까지 체계적으로 준비되어 있지 않다. 한국의 문화와 한글을 외국인에게 가르칠 수 있는 콘텐츠나 전통 문화에 대한 소개 프로그램 역시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심지어 우리문화에 대한 충분하고 적절한 대중적 교육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가 호기가 왔음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이룬 빠른 성장의 경험에는 신속한 대응과 다양한 모색에 대한 훈련이 체득되어 있다는 것을 믿고, 각 산업 분야가 보다 효과적으로 한국에 대한 인식과 호감도를 높일 수 있는 연결점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한류는 열풍이 되어선 안 된다. 마르지 않는 샘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