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지피지기 교통사고 방지시스템 V2V 커뮤니케이션

VEHICLE-TO-VEHICLE COMMUNICATION

지난해 국내에서 발생한 자동차 사고는 총 22만 1,711건. 이로 인해 5,229명이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다. 차량의 성능과 안전시스템은 매년 발전하고 있지만 그 발전 속도에 비해 사고건수나 인명피해 감소폭은 체감이 어려울 만큼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뭔가 근본적 대책이 없을까. 미 교통부(DOT)가 차량에 '지피지기' 능력을 부여하는 것으로 이 오랜 난제를 풀 해법을 찾고 있다.

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enitel@hanmail.net




원래 자동차는 상당히 불안한 물건이다. 1톤은 족히 나가는 거대한 쇳덩어리가 운전자의 오감과 손발에 의존해 시속 100㎞의 속도로 내달린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인간은 이만한 속도에 적응하도록 진화한 생물이 아니라는 것. '아차'하는 순간의 판단착오도 비극적 사고로 이어진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동차가 지금보다 똑똑해질 필요가 있다. 일일이 모든 것을 조작해줘야 하는 장님이자 귀머거리 같은 존재에서 벗어나 주변상황 인지 능력을 갖춘다면 운전자의 실수를 막고 도로의 안전을 확보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만일 자동차가 자신의 주변에 있는 다른 차량의 위치와 속도 등을 인지하고, 위험상황이 닥쳤을 때 알아서 제동을 걸 수 있다면 어떨까. 현재 미국에서 이 같은 차량 간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히어 아이 엠(Hear I Am)'으로 명명된 앱이 차량에 설치된 센서와 컴퓨터로부터 위치 및 속도 정보를 받아 주변에 전파하며 다른 차량의 앱이 보내는 정보를 수신한다.

연간 교통사고 76% 감소
미 교통부(DOT)와 고속도로 안전관리국(NHTSA)이 공동 추진하고 있는 V2V(Vehicle-to-Vehicle Communications) 프로젝트가 바로 그 주인공. 인근의 차량들이 무선으로 위치, 속도 등의 데이터를 상호 교환함으로써 도로 교통 안전도를 증진시키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기본적 목표다. 이렇게 확보된 정보에 기반해 차량 스스로 위험 상황을 판단, 운전자에게 조언 혹은 경고를 해주거나 충돌을 회피 또는 완화할 수 있는 예방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것이다.

V2V의 핵심은 자신의 위치를 다른 차량에게 알려주는 데이터 메시지 애플리케이션. '히어 아이 엠(Hear I Am)'으로 명명된 이 앱은 차량에 설치된 센서와 컴퓨터로부터 위치 및 속도 정보를 받아 주변에 전파하며 다른 차량의 앱이 보내는 정보를 수신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위치, 속도 정보를 차량의 위도, 경도, 진행방향 정보 등과 융합해 상대 차량에 대한 상황 인식능력을 더욱 높이는 시스템을 표방한다.

앱의 데이터 메시지 송수신 능력은 GPS 등 현재의 차량에는 설치돼 있지 않지만 손쉽게 구해서 탑재할 수 있는 기술과 장비들로 구현이 가능하다. 자동차제조사들에 의해 출고 당시부터 반드시 차량에 내장해야 하는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에 관련기술만 완성되면 가까운 장래 신속하게 도입해 교통사고 감소에 즉각적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DOT의 판단이다.

V2V 시스템의 지향점은 승용차, 트럭, 버스, 모터사이클 등 도로를 달리는 모든 차량들이 이러한 풍부한 데이터를 상호공유하고 소통하면서 능동형 교통안전 애플리케이션과 교통안전 시스템의 새 시대를 열어나가는데 있다. 2V 시스템을 적용한 능동형 교통안전 시스템을 적극 사용할 경우 한 해 발생하는 교통사고 중 76%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곧 교통사고에 수반되는 인명 손실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얘기와 같다.

V2V 시스템은 DOT의 차량 간 교신 프로그램의 핵심이며, 차량-인프라 연결(V2I)과 차량-소비자 전자제품 연결(V2D)을 통해 부족한 점을 보완해 안전성을 배가하고 원활한 교통소통을 도모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다.

이렇게 V2V 프로그램에서는 다음의 6가지 질문에 대해 답을 제시하고자 한다. 앱은 효율적이며 그로 인한 메리트가 검증됐나? 가장 효율적인 도입 시기는? 시스템 구현에 활용할 수 있는 기존 기술은 무엇이 있을까? 트럭이나 버스와 같은 특수분야의 차량을 위한 앱은 어떻게 개발해야 할까? 상용화를 위한 최적의 비즈니스모델은 무엇인가?


V2V시스템은 기존 기술 대비 비용적 이점도 크다. GM이 추정하고 있는 차량 한 대당 시스템 구축비용은 200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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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위 도로 감시 능력
현재 V2V는 앞서도 말했다시피 DOT와 NHTSA를 중심으로 많은 연구기관과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대학으로는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캠퍼스와 LA캠퍼스, 스탠포드대학, UCLA, MIT, 텍사스 A&M 대학 등이 있으며 완성차메이커 중에서는 GM, 다임러 크라이슬러, 포드, 혼다, 토요타, BMW, 벤츠 등이 출사표를 던졌다. 이외에도 여러 통신시스템 회사들이 힘을 보태고 있다.

기술개발 콘셉트가 가장 구체화된 GM의 경우 V2V 시스템이 적용된 차량이 최대 400m이내에 위치한 다른 모든 차량들의 위치, 이동 정보를 공유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차량에 장착되는 장비는 무선안테나와 컴퓨터칩, GPS 정도에 불과하다.

이를 통해 각각의 차량은 운전자의 눈에 띄지 않는 사각지대나 다른 장애물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 차량에 대한 정보까지 모조리 얻을 수 있다. 또 이 정보를 토대로 미래상황을 예측해 충돌이 예상되는 상황이 발발하면 음향, 시각정보, 운전석의 진동 모터 등을 이용해 운전자에게 위험상황을 알린다. 경보에도 불구하고 운전자가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에는 V2V 시스템이 알아서 차량을 안전하게 정차시켜 충돌을 회피하게 된다.

GM은 이렇게 V2V 시스템이 일부 고급형 차량에 장착돼 있는 주행제어 센서, 장애물 탐지 센서, 차선 감지 센서 등을 중장기적으로 모두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시스템 구성은 간단하지만 사고방지 효과는 훨씬 확실하다는 이유에서다.

V2V시스템은 기존 기술 대비 비용적 이점도 크다. GM이 추정하고 있는 차량 한 대당 시스템 구축비용은 200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GM은 지난 2007년 3월 초기단계의 V2V 기술을 시연해 보인 적이 있었다. 당시 V2V 시스템이 적용된 차량은 사각지대에 다른 차량이 진입하면 사이드 미러의 경고등이 반짝이며, 해당 차량이 방향지시등을 켜고 차선변경을 시도하면 그 차량이 접근해오고 있는 쪽의 운전석이 부드럽게 진동해 운전자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V2V 시스템은 추돌사고 방지에도 큰 효용성을 발휘한다. 최대 400m 전방의 차량에게 관련 정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추돌사고가 일어났을 때 즉각 경고를 송출, 운전자의 대응을 유도한다. 400m면 사고상황을 안전하게 회피하기에 충분한 거리다. 혹여 대응이 늦을 때는 차량 스스로 직접 정지시킬 수도 있다. 이와 동일한 메커니즘으로 GM의 V2V 시스템은 차로에 상관없이 전방에 차량이 멈춰 있거나 너무 느린 속도로 주행할 때, 그리고 급정거를 했을 때에도 운전자에게 경고를 해 추돌사고 가능성을 원천 차단한다. 후미 차량이 너무 빠른 속도로 다가올 경우에도 후미등을 활용, 후미 차량 운전자에게 시각적 경고를 보낸다.

다른 자동차 제작사에서도 이와 유사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지만 GM은 비용 효율적으로 가장 진보된 솔루션을 지닌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V2V의 명과 암
이처럼 V2V 시스템의 잠재력은 매우 크다. 미국에서는 현재 이의 도입을 위한 실증실험이 대규모로 진행되고 있는 상태다. 실제로 NHTSA의 데이비드 스틱랜드 국장은 올해 4월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자동차 엔지니어학회(SAE) 컨퍼런스에 참석, DOT가 올 여름부터 1년간 V2V 시스템이 장착된 차량 2,800대를 미시건주 앤 아버 시에서 운행하는 실전 테스트를 수행할 것임을 밝힌 바 있다. 이번 테스트를 통해 DOT는 V2V 시스템의 충돌사고 방지 효과를 검증하고 시스템의 고도화와 상용기술 확보를 꾀할 방침이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NHTSA는 오는 2020년경 미국 내 전체 차량의 4분의 1이 V2V시스템을 장착하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번 DOT의 테스트에 참가한 차량 중 일부는 V2I 시스템도 탑재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차량들 덕분에 교통 인프라 관리자들은 현재보다 차량의 흐름을 더욱 잘 파악할 수 있으며, 그러한 상황인식에 기반해 신호 등의 점등 간격을 효율화하는 등 도로상황에 맞춰 교통 체계를 최적화할 수 있다. 운전자 역시 전방의 차량 흐름을 사전에 습득할 수 있어 교통정체 해소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

전문가들은 향후 V2V와 V2I, V2D 기술이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가며 유기적으로 융합되면 상당히 교통안전, 교통관리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주차 보조, 주행 보조, 차로 유지 보조, 도로표지판 인식 보조 등 운전자 보조 기능에서부터 속도위반 단속, 용의차량 적발 등 경찰 업무 지원이 가능하다. 주변 여행지 및 주유소 위치 정보, 주차비 등 요금 지불, 차량 운행 경로 최적화 등에 있어서도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이렇듯 자동차와 관련된 각 분야에서 V2V와 V2I, V2D 기술에 기대어 일어나는 혁신이 누적되면 자동화 고속도로라는 궁극의 단계에 다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차량들이 다른 차량이나 인프라, 전자기기들과 주고받은 정보를 토대로 사실상의 자율주행을 하는 그런 도로 말이다. 이때 운전자들은 손가락 하나 까닥할 필요도 없다. 상황정보가 실시간으로 갱신되는 만큼 차량 스스로 최상의 판단을 내린다. 기계는 상황 인지 및 반응시간이 인간보다 빠르기 때문에 안전성은 더 높아진다.

하지만 V2V 시스템에도 예상되는 단점은 있다. 네트워크 오류에 의한 상황인식 상실 가능성이 가장 큰 한계로 지적된다. 네트워크가 끊기면서 주변 정보가 차단되거나 정보공유가 지연되기라도 하면 V2V 시스템을 믿고 있는 운전자의 방심을 틈타 대형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덧붙여 마구잡이식 차량 정보의 노출에 따른 사생활 침해 문제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으로 꼽힌다. 하지만 V2V 시스템은 아직 초기 단계에 불과한 기술이므로,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하고 진정한 '전자 도로'의 초석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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