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한국거래소 “주가조작 게 섰거라!”

MARKET ISSUE

“‘2012년 ‘북한 경수로 대폭발’ 루머를 퍼뜨려 시세차익을 챙긴 작전세력의 설계자는 19살짜리 대학생이었습니다. 그는 고등학생이었던 2010년 초에도 비슷한 주가조작 사건으로 입건됐었죠. 하지만 이 학생을 비롯해 작전세력 구성원들은 모두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고 풀려났습니다.” 지난 2월 신설된 한국거래소 시장감시본부 예방감시부의 황의천 부서장의 말이다. 황 부서장은 “주가조작에 대해 많은 투자자들의 범법의식이 낮고 법원의 처벌도 솜방망이 같아 불공정거래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사진 윤관식 기자 newface03@naver.com


한국거래소는 2월 18일 시장감시본부 내에 예방감시부를 신설했다. 예방감시부에는 사이버감시팀을 만들어 최근 증가하고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이용한 작전세력’ 대처에 대응력을 높였다. 지휘는 베테랑 황의천 부서장이 맡았다. 황 부서장은 말한다. “이전에도 한국거래소에는 시장감시기능이 있었습니다. 예방감시부는 주가조작의 사전 예방 필요성이 증대됨에 따라 시장감시기능을 확대해 신설된 부서죠. 부서 내에는 예방감시팀, 사이버감시팀, 정보분석팀 등 세 팀이 있습니다. 예방감시팀에서는 그날그날의 매매거래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사이버감시팀에서는 방송, SNS, 인터넷 게시판 등을 모니터링 합니다. 정보분석팀은 오프라인 분석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관심표명으로 주가조작 문제가 빅 이슈로 떠 오르면서 한국거래소 시장감시본부 예방감시부가 더욱 주목 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3월 11일 열린 첫 국무회의에서 “주가조작 세력을 철저히 발본색원 하라”고 말해 주가조작 행위 근절에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대통령 선거일 전날에도 거래소를 찾아 “성실한 개인투자자들이 (범법세력에 의해) 주식투자로 손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의 뜻이 전달되면서 금융위원회는 4월 1일 업무보고를 통해 “법무부 등 관계부처와 협력해 주가조작 적발·처벌 등의 전 단계에 걸친 종합대책을 4월 중 수립해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의 주가조작 문제에 대한 관심은 지난해 12월 대통령 선거와 관련한 테마주의 영향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특정 종목들이 기업의 가치와 무관하게 대통령 후보들과의 인맥을 이유로 급등하면서 후보자의 지지율 변화에 따라 급등락을 반복하며 수많은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끼쳤기 때문이다. 최근까지도 상승폭을 유지하고 있는 몇 종목이 있지만 이들 종목 역시 결국엔 2007년 대선 때와 마찬가지로 원래 가격으로 곤두박질칠 가능성이 높다. 황 부서장은 “인맥 테마주 급등 현상은 우리나라에서 유난히 두드러지는 현상입니다. 학연·지연 등 인맥과 관련한 우리나라의 정서적 특징이 시장에서도 반영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설명했다.

황 부서장은 그러나 테마주와 불공정거래가 같은 의미로 해석돼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한다. 스마트테마, 줄기세포테마 등 신기술 관련 테마들은 시장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활력소라는 것이다. 실제 기술발전에 따른 기업 이익의 상승을 예측, 투자하는 것은 건전한 투자의 한 방법이다. 이때 ‘테마’는 기업의 기술가치를 부각시켜 해당 기업의 잠재적 성장가치를 평가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긍정적 역할을 한다. 기업의 본질적 가치를 반영하는 이런 종류의 테마는 시장 건전성을 저해하는 대신 오히려 전체 주가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데 기여한다.

한국거래소는 대선 테마주가 기승을 부렸던 2012년에 초단기 시세조종과 허위사실 유포 등 불공정거래 51건을 적발했다. 시장경보 발동은 투자경고 118건, 매매거래정지 25건이었다. 불건전주문 제출 위탁자에 대해서는 총 3,938건의 주문수탁 거부 조치를 했다. 불공정거래 혐의로 금융감독원에 통보된 종목은 282개다. 황 부서장은 말한다. “우리나라의 불공정거래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금융감독원에 통보되는 건수만 매년 200여 건이 넘습니다. 게다가 그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죠. 불공정거래를 적발하면 시장의 신뢰 저하와 투자자 피해 등의 문제가 생깁니다. 시장은 한 번 신뢰를 잃으면 다시 회복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됩니다. 지난 2007년 발생한 루보사건이 대표적인 예로 2,000원이었던 주가가 작전세력에 의해 5만1,400원까지 급등했었죠. 세력 철수 후엔 다시 1,000원대로 내려앉았습니다. 한동안 시장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죠. 많은 개인투자자들은 주가조작이 있는 줄도 모르고 투자했다가 큰 피해를 입습니다. 그래서 예방감시부의 책임이 더욱 막중하다고 느낍니다.”

우리나라 시장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도 (불공정거래 증가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개인투자자 비중이 높다. 코스피시장의 50.8%, 코스닥시장의 91.6%가 개인투자자다. 게다가 개인투자자의 상당수가 단기투자, 뇌동매매, 투기성 추종매매 성향을 보이고 있어 작전세력이 활동하기 좋은 무대를 만들어주고 있다. 황 부서장은 말한다. “우리나라는 개인투자자들이 직접 투자할 수 있는 환경여건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인터넷 속도나 보급률 등 제반시설이 세계 최상위권이죠. 증권사들의 HTS프로그램이나 모바일앱 등 투자 편의성 또한 탁월합니다. 물론 다른 시각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간접금융투자상품의 발달이 덜 됐기 때문이란 분석도 많습니다. 이미 나온 상품들도 시장의 신뢰도가 낮아 개인투자자들이 직접 시장에 참여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다른 나라와 시장 간 비교가 어려운 것도 이 때문입니다. 기관투자자의 비중이 높은 시장에서는 증권업자만 규제해도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기관과 개인을 아우르는 시장 전체 참여자에 대한 감시를 필요로 합니다. 이 때문에 예방감시부에서는 모든 주문에 대한 감시를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

주문 하나하나를 모니터링 해야 하는 필요성 때문에 시장감시시스템은 고도로 첨단화됐다. 1994년 최초 개발 후 계속 업그레이드 된 결과다. 특정 종목에서 가격 급변 등의 이상 징후가 포착되면 관련된 계좌와 주문을 추적한다. 그간의 거래를 분석해 통계적으로 이상 거래를 검색하고 적출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해외에서도 우수성을 인정받아 지난해 필리핀으로 수출하기도 했다. 현재도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시장감시시스템 및 매트릭스 전체를 이식하려고 접촉 중이다.

전체 시장감시 매트릭스는 여섯 단계 과정을 거친다. 예방감시부에서 시장감시시스템을 이용, 실시간 주문 모니터링 중 주가조각이 의심되는 이상 주문을 포착하게 되면 시장감시부로 내용을 전달한다. 시장감시부는 주가조작 및 주문과의 개연성을 조사하고 계좌단계까지 세부 내용을 확인한다. 시장감시부를 거친 내용은 심리부로 이동, 자료징구권 등으로 계좌 주인을 확인하는 단계를 거친다. 여러 정황을 종합해 주가조작과 이상 주문과의 개연성이 확보되면 금융위원회에 통보되고 금융위원회는 증권계좌 위탁자를 소환(강제조사권은 아니다)해 내용을 확인한다. 여기서 혐의가 확정되면 검찰 고발로 이어지며 검찰이 사건을 기소하면 법원 판결을 통해 죄의 유무와 처벌의 수위가 확정된다.

아무리 시장감시시스템이 좋고 매트릭스가 훌륭해도 투자자들의 의식과 솜방망이 처벌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불공정거래를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주가조작에 참여하는 많은 개인투자자들이 별다른 범법의식 없이 시장 교란에 동참한다. 작전세력에 대해 추종을 넘어 경외하기도 한다. 솜방망이 처벌은 이미 오래전부터 논란이 돼왔다. 국회 정무위원회에서는 4월 11일 주가조작사범에 대한 처벌 강화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문제는 처벌 기준이 아니라 법 실행이다. 현재 자본시장법에서도 불공정거래에 대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억 원 이하의 벌금’을 기준으로 ‘최대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 규정을 두고 있지만, 실제 재판에서는 실형보다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경우가 많고 벌금 또한 수익금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북한 경수로 대폭발’ 루머를 퍼뜨린 작전세력 구성원들도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감형됐다. “루머로 피고인들이 얻은 이익이 크지 않다”는 재판부의 설명이다.

황 부서장은 말한다. “작년에도 대법원에서 양형기준을 강화한다고 발표했지만 아직 사례를 접하지 못했습니다. 미국에서는 10년 징역형이나 수백만 달러 벌금도 흔합니다.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죠. 우리나라에선 경제사범에 대한 처벌이 관대한 편입니다. 사회의식이나 법원의 판단기준이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대인·대물 피해에 대한 징벌은 강한데 특정 피해인이 없는 경제금융 범죄에 대해선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실 국민 전체, 시장 참여자 전체가 범죄의 대상이 된 것인데 말이죠. 그런 인식 자체가 부족한 점이 참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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