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슈퍼컴퓨터를 사랑한 내일의 슈퍼맨

SUPERMAN WHO LOVES SUPERCOMPUTER

미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왕복선 개발, 포드자동차의 차세대 친환경 고연비 내연기관 연구, 그리고 인간의 뇌를 세포단위에서 시뮬레이션 하는 스위스 로잔공대의 블루 브레인(Blue Brain) 프로젝트. 이 연구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정답은 바로 슈퍼컴퓨터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연구라는 사실이다.

슈퍼컴퓨터는 현재 우리나라 4대를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500여대가 운용되고 있는데 고도의 기초·응용과학 연구에서 생활밀착형 분야에 이르기까지 그 활용도가 매년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국내는 슈퍼컴퓨터 활용 연구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공학이나 계산과학 분야에서조차 체계적인 교육과정이 부족한 실정이다.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그리드 및 슈퍼컴퓨팅 학과의 교수진과 학생들의 가치는 그래서 더욱 각별하다. 21세기 슈퍼컴퓨팅 강국 도약의 첨병을 자임하며 슈퍼 코리아 실현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내일의 ‘슈퍼맨’들을 소개한다.




"미국, 유럽 등의 슈퍼컴퓨터 선진국들은 우주항공, 핵융합, 기후변화, 게놈프로젝트 같은 거대과학 연구는 물론 산업현장의 신제품 개발, 보험사기 방지, 임산부의 제왕절개 여부 결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 슈퍼컴퓨터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이들처럼 슈퍼컴퓨터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활용인력의 교육과 양성이 최우선 선결과제입니다.”

UST-KISTI(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캠퍼스의 그리드 및 슈퍼컴퓨팅 학과 황순욱 교수는 자신이 이 같은 국가적 중책을 맡고 있다는 사실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이렇게 말했다.





슈퍼컴퓨팅 및 초고성능 네트워킹 동시 교육

현재 그리드 및 슈퍼컴퓨팅 학과에는 이지수 책임교수를 필두로 황순욱, 송중석, 박형우, 석유진 교수 등 5명의 교수진이 7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전산과학과 계산과학 분야를 막론해 광범위한 분야의 슈퍼컴퓨팅 능력 함양을 이끌고 있다. 이들의 무기는 단연 KISTI의 360테라플롭급 슈퍼컴퓨터 ‘타키온 II’지만 KISTI가 국가과학기술연구망(KREONET)을 운용하고 있어 초고성능 네트워킹의 운영과 서비스까지 함께 교육한다.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슈퍼컴퓨팅 장비와 초고성능 네트워킹 관련 실무 운용기술을 동시에 배울 수 있는 곳은 아마 저희 학과가 유일할 겁니다. KISTI 과학기술정보센터를 통해 최신 정보보호기술 습득이 가능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메리트에요.”

특히 그리드 및 슈퍼컴퓨팅 학과는 얼마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힉스 입자(Higgs boson)의 발견에 이용된 핵심 컴퓨팅 기술인 ‘그리드 컴퓨팅’ 교육에 있어서도 학문적으로나 실무적으로 국내 최고의 인프라와 전문가들을 보유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석사과정의 뷰 트롱 히유 학생이 2년 전 베트남에서 UST의 가족이 되기로 결심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베트남 과학기술원 부설 IT연구소(IOIT)에서 인프라 구축과 운영을 공부하던 중 열악한 그리드 연구환경을 깨닫고 고민에 빠졌어요. 큰 규모의 실질적인 그리드 인프라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찾던 중에 UST가 이론과 실무 모두에서 최적의 배움터라고 판단했습니다.”

히유 학생은 현재 KISTI와 프랑스 핵·입자물리연구소(IN2P3), 일본 고에너지가속기연구기구(KEK), 중국 고에너지물리연구소(IHEP)의 컴퓨팅 센터가 공동 구축한 국제 그리드 컴퓨팅 인프라(France-Asia VO)의 운영을 담당하며 그토록 원했던 실무 경험을 쌓고 있다.

그리드 및 슈퍼컴퓨팅 학과는 이런 전통적 슈퍼컴퓨팅 및 그리드 기술에 더해 최근 주목받고 있는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분석 등으로도 전공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상태다. 황 교수에게 학과 자랑을 부탁했더니 연구실의 입지를 가장 먼저 꼽았다.

“KISTI 연구실이 KAIST 캠퍼스 내에 위치하는 만큼 학생들의 교육 여건이 뛰어납니다. 국내 최고 수준의 KAIST 전공 강의를 들으며 UST의 학점을 이수할 수 있는데다 KAIST의 영어강의 덕분에 외국 학생들의 신속한 적응도 가능하죠.”

그래서 인지 황 교수팀은 모두 외국 학생들로 이뤄져 있다. 첫 제자도 베트남 출신의 난이라는 학생이었다. 지난 2008년 졸업해 스웨덴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고 했다. 또 이탈리아의 지안니라는 학생은 컴퓨팅 관련 컨퍼런스에서 우연히 대화를 나눈 것이 계기가 돼 사제의 연을 맺었다. 석사를 마치고는 KISTI에 취업해 한국여성과 결혼까지 했다고 한다.

황 교수팀의 메인 연구과제는 지난해 개발에 성공한 메타데이터 카탈로그 소프트웨어 ‘AMGA’의 보급 확대. 이미 성능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유럽 3대 미들웨어 배포사이트에 등재돼 공식 배포되고 있으며, 국제 그리드 커뮤니티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에는 슈퍼컴퓨터, 그리드, 클라우드 등 다양한 고성능 이기종 분산 컴퓨팅 자원을 효율적으로 통합 활용하기 위한 대규모 계산 처리 기술인 ‘HTCaaS 개발 프로젝트’에도 열정을 쏟는 중이다. 국내에 운용되고 있는 슈퍼컴퓨터들을 연계, 사용자들이 마치 하나의 거대한 슈퍼컴퓨터 자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신약개발, 고에너지물리 등 4개 응용 분야를 정해 비공개 베타 테스트(CBT)를 하고 있습니다. HTCaaS을 통해 개발한 다중 사용자 지원 최적 자원 할당 기법의 기술적 우수성을 검증하기 위해 오는 11월 미국에서 열리는 세계 최고의 국제 슈퍼컴퓨팅 학술대회인 ‘2013 슈퍼컴퓨팅 컨퍼런스’에 학술논문을 제출해놓은 상황입니다.”




현장에서 통하는 실무형 인재 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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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T의 모든 학과들과 마찬가지로 그리드 및 슈퍼컴퓨팅 학과 역시 이론보다는 연구와 실무 중심의 교육을 수행하는 만큼 교육 효과야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일례로 보안관련 기술을 연구 중인 송중석 교수의 경우 학생들과 함께 정부출연연구소, 민간연구소 등 47개 연구소에 대한 실시간 보안관제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해외 대형 연구기관들의 보안 데이터를 국내 연구자들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런 실무는 학생들에게 더 없이 훌륭한 수업이 됩니다. 이론만 알고 현장을 모르는 풋내기 사회초년병이 아니라 졸업 즉시 일선 현장에서 실무를 주도할 수 있는 전문가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그렇다면 과연 학생들은 왜 ‘슈퍼맨’의 길을 걷고자 한 것일까. 7명의 학생마다 계기는 조금씩 달랐지만 열정의 크기와 포부, 자신감은 영화 속 슈퍼맨을 능가할 만큼 대단했다. 최원준 석사과정 학생의 경우 슈퍼컴퓨터의 미래 가치에 주목했다고 한다.

“대학에서 통계학을 전공하고 사회에 나가 컴퓨팅 개발 분야에 종사하던 중 슈퍼컴퓨터를 활용하면 기존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지금은 이종 기기로의 데이터 전송 시 속도를 극대화할 방법론을 연구하고 있고, 향후에는 컴퓨팅 자원을 효과적으로 배분·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볼 생각입니다. 컴퓨터를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연구능력을 더욱 배양해서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전문가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최지연 석사과정 학생은 학부시절 경영학과 컴퓨팅이 접목된 경영정보학을 전공하면서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과학정보기술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송중석 교수님의 지휘아래 24시간 실시간 보안관제 서비스를 하고 있어요. 보안이벤트를 하나하나 살펴보고 실제 공격인지, 보안에 위협적이지는 않는지를 파악하는 게 주요 일과에요. 문제는 하루에 들어오는 데이터가 몇백 만건이나 된다는 거예요. 제대로 처리하려면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죠. 그래서 이 데이터들을 자동 분류하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보안관제요원들의 업무로드를 줄이고, 기업의 정보자산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방안을 개발해 보급하고 싶어요.”

방글라데시에서 온 아잠 하시니 박사과정 학생은 자신이 배운 모든 기술과 실무 노하우를 고국에서 펼쳐놓는 것이 작은 소망이다.

“방글라데시에 2년 전 삼성 연구개발(R&D)센터가 구축됐는데 이곳에서 일하거나 대학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어요. 슈퍼컴퓨팅 분야에서 한국과 방글라데시를 잇는 가교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인도 출신의 아몰 박사과정 학생의 경우 클라우드 컴퓨팅 분야의 세계 최고 연구자로 성장하고 싶다는 포부를 피력했고, 아몰 학생과 동향인 팔구니 라메스바 학생은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UST에 남아 연구를 계속한 뒤에 고국으로 돌아가 연구자의 길을 걸어갈 생각이다. 인터뷰 막바지에 이르러 황 교수는 슈퍼컴퓨팅의 시대적·국가적 가치에 많은 학생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밝혔다.

“그리드와 슈퍼컴퓨팅은 컴퓨팅 분야의 기초과학에 해당합니다. 과학에 있어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듯이 슈퍼컴퓨팅도 마찬가지에요. 긍지와 자부심을 만끽하며 미래 국가·사회에 필요한 인재로 성장하고 싶다면 슈퍼컴퓨팅 관련 분야에 뛰어들어보는 것이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입니다. 언젠가 그리드 및 슈퍼컴퓨팅을 전공한 UST 학생들의 손에서 한국판 안드로이드 소프트웨어가 개발되는 날을 두 손 모아 고대하고 있습니다.”



슈퍼컴퓨팅: 중소기업 경쟁력 향상 도우미

슈퍼컴퓨터는 연구개발의 정확도를 높이고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첨단 연구장비다. 이미 물리, 화학, 지구과학 등 거대 기초과학 분야를 중심으로 활발히 활용되고 있지만 최근 들어서는 자동차, 전자, 바이오, 신재생에너지 등 주요 산업분야에서의 활용도 역시 커지고 있다. 제품 설계와 시제품 제작, 성능시험 평가 등 전 과정에서 슈퍼컴퓨터의 정교한 시뮬레이션이 우수한 성능의 제품 개발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

이 같은 점에서 인력과 자금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에게는 슈퍼컴퓨터의 활용이 곧 경쟁력 향상과 직결될 수 있다. 실제로 그리드 및 슈퍼컴퓨팅 학과 학생들의 소울메이트라 할 수 있는 KISTI의 슈퍼컴퓨터도 최근 중소기업들의 제품 개발에 활용, 연이은 성공사례를 도출하면서 특급 도우미로 부각되고 있다.

지난해 9월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 개봉된 국산 3D 애니메이션 ‘다이노타임’이 그 대표적 실례다. 3D 애니메이션을 만들려면 촬영된 영상을 극장 상영용 영상으로 전환하는 ‘렌더링’ 작업이 필요한데, 90분 분량의 ‘다이노타임’은 26만장의 이미지를 렌더링해야 했다. 평범한 컴퓨터라면 4년 이상이 걸릴 작업이었다. 하지만 슈퍼컴퓨터 덕분에 단 4개월 만에 렌더링을 완벽히 완료할 수 있었다. 슈퍼컴퓨터는 이제 거대기초과학 연구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학계와 연구소, 산업체가 모두 활용하는 보편화 단계로 진입한 것이다.

이와 관련 그리드 및 슈퍼컴퓨팅 학과 학생들의 주 활동무대인 KISTI의 슈퍼컴퓨팅연구소는 슈퍼컴퓨팅 기술과 가시화, 시뮬레이션 기술을 이용해 제품개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설계단계를 가상화함으로써 중소기업들의 신제품 개발비용과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도록 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한 제품 전체의 콘셉트 설정과 성능 향상에도 활용할 수 있다.

박영서 KISTI 원장은 “국내 중소기업들의 제품 설계 능력은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 약 40%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슈퍼컴퓨터를 활용한다면 비용과 시간 투자를 최소화하면서 한층 원활히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2007년부터 2010년까지 KISTI의 슈퍼컴퓨터를 활용해 제품을 개발한 중소기업들을 분석한 결과, 신제품 개발 비용과 시간이 각각 41%, 43%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82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됐고, 지식재산권을 비롯한 산업재산권도 28건이나 등록됐다. 특히 슈퍼컴퓨터의 도움을 받은 기업들의 예상매출 증대율은 무려 51%에 달했다. 기존 대비 절반 정도의 시간과 비용으로 세계무대에서 통할 양질의 제품 개발이 가능한 것이다.

테라플롭 (TeraFlop) 슈퍼컴퓨터의 연산처리속도 단위. 1테라플롭은 1초당 1조번의 연산 처리를 뜻한다.
그리드 컴퓨팅 (grid computing) 모든 컴퓨팅 기기를 하나의 초고속 네트워크로 연결, 계산능력을 극대화한 차세대 분산형 컴퓨팅 모델.
빅 데이터 (big data) 기존의 방식으로는 사실상 처리가 불가능한 방대한 양의 데이터. 데이터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유용한 정보를 선별, 의사결정의 가치를 높여주는 빅 데이터 처리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메타데이터 (meta data) 정보의 효율적 접근과 통제를 위해 특정 데이터가 어디에 어떤 구조를 띠고 있는지 설명해주는 데이터.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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