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우회전 하셔서 비포장 도로로 들어가세요. 그러면 보이실 겁니다.”
목적지에 도착해 렌트카를 주차시키자 동승했던 릭 게이츠켈 박사가 임시로 만든 목제 전망대로 안내했다. 게이츠켈 박사의 집에서 1.5㎞가량 떨어진 이곳에서는 미국 사우스다코타주 리드 지역에 위치한 트로잔 광산이 한 눈에 보인다.
전망대에 오르니 새벽 안개 속에서 여러 대의 불도저들이 산을 깎아 내면서 계단식으로 거대한 구덩이를 파고 있었다. 그 근처에는 예전에 파낸 구덩이에서 나온듯한 암석들이 산등성이를 이루며 잔뜩 쌓여 있었다.
“정말 대단하죠? 금을 찾기위해 문자 그대로 산을 통째로 옮기고 있어요. 이들을 막을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여명이 비추는 가운데 필자는 그의 표정을 봤다. 마치 광산의 인부들과 동료애를 느끼는 듯 했다. 그는 분명 미국 브라운대학의 물리학 교수지만 사실상 그가 하고 있는 일은 광산 인부와 별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게이츠켈 박사팀은 현재 트로잔 광산 인근의 폐쇄된 홈스테이크 금광에서 ‘거대 지하 크세논(LUX)’실험을 막 시작한 상태다. 이 폐광의 지하 1.6㎞ 지점에 역대 가장 민감한 입자 검출기인 LUX 검출기를 설치하고 암흑 물질을 찾고 있다.
암흑 물질은 눈에 보이지 않고, 아직까지 존재가 입증되지 않은 가상의 물질이다. 암흑에너지와 함께 전체 우주질량의 6분의 5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만일 게이츠켈 박사팀이 암흑 물질 발견에 성공할 경우 노벨위원회의 전화를 받을 확률이 매우 높다. 단 10여개의 암흑 물질 입자를 찾아내는 것만으로도 현대 물리학계를 송두리째 뒤흔들기에 충분한 파괴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LUX 실험을 위해 1,000만 달러라는 거금이 투자됐다는 사실 역시 그 중요성을 방증하는 요인이다. 게다가 암흑 물질은 1온스(28.3g)당 가격이 1구(溝) 달러 정도로 평가된다. 단적으로 말해 경제적 가치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만큼 귀중한 물질이다. 게이츠켈 박사가 무려 24년간이나 암흑 물질에 목을 맨 이유 역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당연히 암흑 물질 추적자는 그 외에도 상당히 많다. 소규모 산업이라고 표현해도 허언이 아니다. 다만 아직은 누구도 ‘상품’을 출시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최소한 현재까지는 모든 실험 결과가 부정적입니다. 암흑 물질이 정말 존재하기는 하는 건지조차 몰라요. 저 광부들은 금이 어디있는지 정확히 아는데 말이죠.”
이 말을 듣자 그가 광부와 동질감을 느낀 게 아님을 알았다. 그건 부러움이었다.
“하지만 이번은 다릅니다. LUX를 2주일간 운영하면서 현존 세계 최고의 민감도를 가졌다는 확신이 들었죠. 이제껏 어떤 검출기도 해내지 못한 암흑 물질의 존재를 입증할 직접적 증거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이렇듯 우리 주변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존재가 우주를 하나로 묶고, 질서를 부여하고 있다. 역사상 아직 누구도 그 실체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향후 2년 내에 게이츠켈 박사와 같은 과학자들이 암흑 물질로 불리는 이 이미지의 존재를 우리 앞에 내놓을지도 모른다.
암흑 물질과의 접촉
LUX 실험에 대한 취재는 엄청난 소음을 내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홈스테이크 광산의 수직갱도를 따라 지하 깊숙이 내려가는 것으로 본격 시작됐다.
암흑 물질처럼 탐지가 어려운 물질을 탐지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앞길을 막는 모든 장애물을 치워야 한다. 지표면은 태양, 블랙홀, 초신성 등이 우주에서 고속으로 방출한 원자들의 파편들이 쏟아지고 있다. 원자로 샤워를 하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하지만 지하로 내려갈수록 그런 혼란은 줄어든다.
10여분의 시간이 흘러 엘리베이터는 지하 1,480m에 도착했고, 필자는 하얗게 칠해져 밝게 빛나는 복잡한 터널들의 미로 속으로 첫 발을 내딛었다.
홈스테이크 광산은 2002년까지 금이 채굴됐다. 그러나 지금은 샌포드 지하 연구소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 정도 깊이는 돼야 지상에서 벌어지는 원자 샤워의 영향에서 벗어나 LUX 실험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기에 이곳이 최적 입지로 낙점된 것이다.
우주를 탐구하는 과학자들은 대개 눈에 보이는 것을 시작으로 한겹씩 꺼풀을 벗겨나가면서 연구의 영역을 넓혀간다. 암흑 물질 연구도 이와 비슷한 궤적을 따라왔다.
그 시작은 1930년대 스위스 천체물리학자 프리츠 츠비키 박사가 은하들의 운동을 측정하면서 부터였다. 그는 모든 항성과 가스를 계산에 넣은 뒤 측정을 했음에도 무엇인가가 더 있음을 깨달았다. 은하들을 고속으로 잡아당기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 큰 질량의 물질이었다. 츠비키 박사는 이 물질에 독일어로 암흑 물질을 뜻하는 둔켈 마테리에(dunkle Materie)라는 이름을 붙였다.
오늘날 암흑 물질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얼마든지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뭔가가 은하를 우리의 예상보다 빠르게 회전시키고 있으며, 은하단을 휘게 만든다. 별빛의 왜곡도 한층 심해진다.
특히 이 물질은 이들 은하의 생성과정을 설명해 줄 수도 있어 보인다. 슈퍼컴퓨터로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초기 우주에 널리 구름처럼 퍼져 있던 평범한 물질은 현재의 은하나 은하단과 보조를 맞춰 움직이기에 충분한 중력이 없다. 그런데 암흑 물질이라는 존재를 시뮬레이션에 추가하면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간다.
현재 암흑 물질이 뭔지 아는 사람은 없지만 물리학자들은 무엇이 암흑 물질이 아닌지는 알려줄 수 있다. 사람을 포함해 우리의 눈에 보이는 모든 물질들을 구성하는 평범한 원자들은 암흑 물질이 아니다.
가장 설득력 높은 암흑 물질 존재의 증거는 빅뱅의 잔영인 우주 극초단파 배경복사 측정 과정에서 드러났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빅뱅 직후 우주는 종처럼 울리고 있었다. 종소리를 통해 종의 크기나 모양의 추정이 가능하듯 이러한 우주의 울림 패턴은 초기 우주가 어떤 물질로 이뤄져 있었는지를 정확히 알려준다.
결과는 놀라웠다. 구성물질 중 15%는 과거에도, 지금도 눈에 보이는 것이었던 반면 나머지 85%는 보이지 않는 물질이었던 것. 더 당혹스러운 사실은 눈에 보이는 물질과 암흑 물질을 합쳐봤자 우주 전체 질량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물질이 아닌 에너지의 형태로 우주 자체에 녹아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래서 이를 암흑에너지라 부른다.
샌포드 지하 연구소에서 만난 예일대학 대학원생 니콜 라슨도 학부시절 우주의 무려 85%가 정체모를 물질이라는 얘기를 듣고 호기심이 발동해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필자는 그와 함께 2층 구조로 설계된 높이 2.7m의 LUX 검출기 윗부분을 볼 수 있었다. 장비의 청결과 냉각상태를 유지해 주는 배관, 데이터를 모아 처리하는 전자기기 등 멋있어 보이는 것들은 모두 2층부에 있었다. 그에 반해 검출기 본체인 1층부는 시각적으로 실망스러웠다. 그저 거대한 물탱크 같아 보였다.
실제로 검출기 속에는 26만4,600ℓ의 초순수가 들어있다. 이 초순수는 주변의 돌에서 나오는 자연방사선의 차폐재 역할을 한다. 그리고 초순수 탱크 안에는 높이 1.8m, 중량 2톤의 티타늄 냉장고가 영하 112℃의 액체 크세논 360㎏을 품고 있다.
게이츠켈 박사는 LUX의 기본 개념이 그 이면에 숨겨진 과학적 원리의 복잡성에 비하면 너무나 간단하다고 말한다.
“암흑 물질의 실체는 몰라도, 입자인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이와 관련 주류 물리학계는 약한 상호작용을 하는 거대질량 소립자인 ‘윔프(WIMP)’를 암흑 물질의 실체로 본다. 이 가정이 맞다면 윔프의 상호작용성이 아무리 약하더라도 어떠다 한번쯤은 일반적인 물질의 원자와 충돌하는 일이 있을 것이며, 그때는 윔프에 얻어맞은 원자가 튕겨나가게 된다. 즉 특정 원자에 영향을 미칠 요인이 오직 윔프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 놓는다면 우리가 관측가능한 원자를 통해 윔프의 실존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투명인간이 한 눈을 팔다가 다른 사람에게 부딪치면 위치가 발각되는 것과 동일한 이치다.
LUX 검출기는 바로 이런 메커니즘으로 윔프, 다시 말해 암흑 물질을 탐지한다. 구체적으로 윔프가 LUX의 크세논 원자와 충돌할 경우 빛과 소량의 전하(電荷)가 방출된다. LUX 검출기는 별도의 소프트웨어가 다른 모든 잡신호들을 걸러낸 상태에서 윔프조차 절대 감출 수 없는 이 두 가지 신호를 찾는 장치다.
현재 LUX 실험과 유사한 프로젝트가 10개 가량 진행되고 있으며, 그들 모두가 입자 충돌이라는 동일한 원리에 의존하고 있다. 누구라도 먼저 충돌 신호를 감지하고, 윔프를 찾아내, 암흑 물질임을 규명하면 노벨상은 따놓은 당상이다.
게이츠켈 박사도 노벨상을 염두에 두고 있을까. 그는 괴롭다는 듯 신음소리를 냈다.
“사실 암흑 물질처럼 보이는 일상적인 신호를 잡아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LUX는 최첨단 기술이예요. 작동시킬 때마다 매번 새로 배워야할 것들이 생길 정도랍니다.”
이는 실험결과를 놓고 오류와 논란이 일어날 소지가 있다는 얘기와 같다. 암흑 물질 연구에 있어 지난 20년 동안 그런 일들이 실제로도 많았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다마(DAMA) 연구팀은 10년간 지구를 통과해 지나간 암흑 물질 입자들을 관측해왔다고 발표했다. 아직 경쟁 연구팀들이 DAMA 연구결과에서 오류를 발견하진 못했지만 DAMA팀도 자신의 주장을 확증할 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미국 온타리오주 서드베리 인근의 베일 크레이튼 광산에서 COUPP라는 암흑 물질 검출기를 운용 중인 시카고대학 후안 칼라 박사는 이렇게 표현했다.
“모두가 DAMA의 심장에 말뚝을 박으려고 달려들었답니다.”
게이츠켈 박사는 이 같은 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딱 부러지고 확실한 답을 원했다.
“기존 실험들에 비해 더 나은 결과를 얻어내지 못한다면 제겐 의미가 없습니다. 기존보다 훨씬 크고 민감한 검출기 설치를 추진한 것도 그 때문이에요.”
LUX팀의 연구는 올해 60일의 시운전을 거쳐 300일간 상용 가동을 통해 이뤄진다. 그 순간이 되면 민감도가 기존 검출기의 10배에 달하는 LUX가 지금껏 누구도 손대지 못했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할 것이다.
인공 암흑 물질 메이커
LUX처럼 자연계에 존재하는 암흑 물질을 검출하도록 설계된 실험은 매우 직관적이다. 검출기 안에서 뭔가가 충돌하던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던가 두 가지 상황 뿐이다.
이 단순함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여기에는 심각한 한계가 있다. 암흑 물질 입자가 예상보다 훨씬 가벼울 때는 검출기에 잡히지 않을 개연성이 있는 것. 설령 잡아낸다고 해도 LUX는 암흑 물질 입자의 속성 중 극히 일부 밖에 알려주지 못할 공산이 크다.
암흑 물질의 물리적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직접 암흑 물질을 만들어내 면밀하게 연구할 수 있어야만 한다. 과연 이 세상 누구도 본적 없는 입자를 인위적으로 만든다는 게 가능할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필자는 스위스 제네바행 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
미국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 소속의 물리학자 조 라이켄 박사는 지난 6년간 수천명의 동료들과 함께 이곳에서 세계 최대 입자가속기인 LHC를 활용해 암흑 물질을 제조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얼마 전 신의 입자라 불리는 ‘힉스 입자(Higgs boson)’의 존재가 공식 확인돼 빅뱅에 의해 우주가 탄생했다고 보는 ‘표준모델’이 완성되면서 전 세계가 떠들썩했지만 필자의 생각에 그건 LHC의 ‘부수적’ 성과에 지나지 않는다. 확증만 없었을 뿐 이미 오래전부터 이 분야 연구자들에게 힉스 입자의 존재는 기정사실로 인정받고 있었다.
LHC의 진정한 목적은 표준 모델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더 크고 근본적인 의문의 해답을 찾는데 있다고 본다. ‘왜 중력은 다른 힘보다 그토록 약할까?’, ‘왜 물질은 서로 다른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광자와 전자라는 두 가지 입자로 나뉘어질까?’, ‘암흑 물질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들이 그것이다.
라이켄 박사는 학계에서 이 모든 의문들이 초대칭 이론과 연관돼 있을 것이라 여긴다고 설명했다.
“지난 30년간 초대칭이야말로 자연 현상 중 가장 명백하다는 점을 모두가 인정했습니다. 입자 물리학의 균형을 잡아주고, 세상 만물의 법칙을 이해하는 안목을 제시해주기 때문입니다.”
아직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이 이론에 의하면 세상에는 초대칭 입자를 연결해주는 또 다른 입자 군(群)이 존재한다. 공교롭게도 이 제3의 입자 군에는 질량이 크고, 안정적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특성, 즉 암흑 물질의 특성과 일치하는 입자들이 포함돼 있다. 이는 초대칭 이론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암흑 물질이라는 부산물을 만나게 될 것이며, 초대칭 이론을 증명하려면 암흑 물질의 정확한 속성을 알아내야 한다는 걸 뜻한다. 이것이 바로 LHC의 도움이 필요한 이유다.
LHC의 물리학자들은 27㎞에 달하는 원형 터널 내부에서 2개의 양성자 빔을 반대방향으로 발사, 광속의 99.9999991%까지 가속한 뒤 서로 충돌시킨다. 이 정도 속도로 가속된 양성자의 에너지는 음속의 속도로 주행하는 승용차의 운동에너지와 맞먹는다.
충돌 후 이 엄청난 에너지는 어디론가 갈 곳을 찾아야하기에 자연스럽게 물질의 형태로 변환돼 입자들을 방출한다. 이것이 특수상대성 이론의 핵심인 질량-에너지 등가의 법칙이다. 생성되는 입자의 종류도 정해져 있지 않다. 어떤 종류의 입자라도 생성될 수 있다.
라이켄 박사는 이 입자들 속에 암흑 물질 입자가 숨어있을 것이라는 강한 희망을 품고 있다. 문제는 암흑 물질 입자가 정말 있더라도 탐지가 극도로 어렵다는 점이다. 발견되지 않은 채 LHC의 기기들 사이로 사라져 버릴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저희는 암흑 물질 입자를 직접 탐지하는 대신 사라진 에너지에 주목합니다. 질량-에너지 등가의 법칙에 따라 새로 생성된 입자에 상응하는 에너지가 사라지므로 이를 보면 검출 불가능한 입자들의 존재도 추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지금까지 LHC의 활약은 미미하다. 2010년부터 충돌실험을 계속하고 있음에도 초대칭 이론의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다.
“LHC처럼 거대한 장비로도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면 사람들은 실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에 일부 물리학자들은 불평을 늘어놓으며 초대칭 이론의 폐기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라이켄 박사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지난 2008년 6톤이 넘는 초저온 액체 헬륨을 쏟은 실수를 필두로, 여러 기술적 실수로 인해 LHC는 지금까지 약 50%의 출력으로만 운용돼 왔기 때문이다. 지난 2월이후에는 대규모 업그레이드를 위해 가동 자체가 중단돼 있다.
“지난 2년은 사고 이후 수립된 백업 플랜에 맞춰 LHC를 운용한 것입니다. 초대칭 입자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어요. 진짜 LHC의 실력은 아직 보여주지도 못했으니까요.”
오는 2015년 LHC는 최대 출력으로 재가동된다. 기술적 관점에서는 기존에 8조 전자볼트(eV)에서 운용되던 것이 14조eV로 높아지게 되며, 실질적으로는 11조eV 수준이 될 전망이다.
업그레이드된 LHC에서는 라이켄 박사팀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암흑 물질을 탐색하는 실험도 이뤄질 예정이다. 예컨대 미국 인디애나대학 폴린 개그논 박사는 추론에 근거해 만든 ‘숨은 계곡(hidden valley)’ 모델을 검증해볼 생각이다. 이 모델에 의하면 LHC 안에서 암흑 물질의 완벽한 평행우주가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또한 힉스 입자가 붕괴할 때 생성되는 입자 속에도 암흑 물질이 존재한다.
암흑 물질 헌터
LUX팀을 비롯해 암흑 물질을 찾는 연구자들은 하나 같이 지하에 매복해 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는 법. 노벨물리학상 수장자인 MIT의 새뮤엘 팅 박사도 그중 한사람이다.
그는 암흑 물질이 지하 깊은 곳의 원자에 우연히 부딪칠 때까지, 또는 LHC에 의해 만들어 질때까지 수동적으로 기다릴 생각이 전혀 없다. 대신 암흑 물질이 풍부한 우주로 나가 그들이 남기는 흔적을 능동적으로 찾고 싶어 했다.
이런 아이디어는 일견 모순적으로 들린다. 보이지 않는 존재를 보겠다고 하니 그럴 법도 하다. 그러나 그는 다른 입자들이 암흑 물질을 생성시킬 수 있다면 암흑 물질도 눈에 보이는 입자들을 생성해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2개의 암흑 물질 입자(윔프)가 충돌하면 검출이 가능한 입자들과 감마선이 방출된다는 가정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는 윔프가 만들어낸 입자들은 독특한 특성을 지닐 것으로 본다. 전자와 양전자처럼 물질과 반물질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지구상에서 양전자들은 일반적인 물질에 닿는 순간 소멸된다. 따라서 암흑 물질의 신호는 진공상태인 우주공간 속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게 팅 박사의 판단이다. 그럼에도 대기권 밖으로 거대한 입자 검출기를 쏘아올린다는 그의 구상은 많은 비판을 불러왔다. 그동안 우주에서 암흑 물질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을 아무도 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귀결이기도 했다.
팅 박사는 그러한 편견과 17년간 싸워왔다. 그리고 결국 2011년 중량 8,4톤의 20억 달러짜리 ‘알파 자기 분광기(AMS)’를 지상 320㎞ 상공에 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ISS)의 메인 트러스에 설치하는 데 성공했다.
올해 봄 팅 박사는 25억회의 입자 검출 데이터를 공개하며 데이터가 모든 방향에서 오고 있다고 밝혔다. 암흑 물질이 우주 전체에 퍼져 있다는 예상과 일치하는 결과였다. 반면 양성자를 뿜어내는 블랙홀 같은 천체가 가까이 위치한 곳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지금은 오는 2028년까지 수집하기로 계획된 데이터량의 단 8%만 획득한 상태에요. 모든 데이터가 모아지면 LHC 속에서 양성자가 충돌할 때와 비슷한 수준의 에너지를 가진 우주 물질과 반물질의 지도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이건 과거에 누구도 도달할 수 없었던 경지에요.”
그의 말은 사실이다. 입자 탐색 분야에서 AMS는 현재까지 최고의 실적을 올리고 있으며 앞으로도 향후 수십년 동안은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
팅 박사와는 다소 다르게 우주에서 암흑 물질 입자가 충돌했을 때 나타나는 감마선을 추적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이 접근법은 AMS만큼 화려한 측정장비도, 엄청난 인내심도 필요 없다. 미 항공우주국(NASA)이 이미 빛의 고에너지 폭발을 관측할 수 있는 ‘페르미 우주망원경’을 보유하고 있는 덕분이다.
사실 우주복사의 흔적을 관측했다는 자극적 주장이 담긴 과학 논문은 지금도 넘쳐난다. 지난 수년 동안에만 다수의 연구팀이 페르미 우주망원경을 활용, 기존에 알려진 지식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감마선 신호를 적어도 4종류나 탐지했다고 주장했다. 언뜻 암흑 물질의 존재를 입증하는 작은 증거처럼 보이지만 이런 주장을 담은 보고서들은 세부 내용에서 서로 일치하지 않았다. 또한 이들이 봤다는 신호는 너무 약해서 기계적 영향이나 무작위적으로 들어오는 다른 우주선(宇宙線)과 구분하기 어려웠고, 이들 중 일부는 기존의 암흑 물질 이론에 의거하면 검출되서는 안 되는 것들이었다.
하버드대학 더글러스 핑크바이너 교수는 2012년 대부분을 암흑 물질의 것일지도 모르는 이러한 신호들 중 하나의 타당성을 조사하면서 보냈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정말 힘들었어요. 한마디로 말하면 관측 당시 상황이 혼란스러웠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그런 혼란 속에서도 그는 더 깊은 진실을 향한 진전을 이뤘다. 실험 결과들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건 어쩌면 암흑 물질이라는 퍼즐의 정답이 하나가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른 것.
“지금의 저는 암흑 물질이 입자 1개로 이뤄져 있고, 서로 떨어져서 아무런 상호작용도 하지 않는 외톨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이중 디스크 암흑 물질
핑크바이너 박사의 연구실은 하버드 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학 센터에 있다. 우주 관측 연구자들에게는 성채와도 같은 장소다. 이곳에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제퍼슨 연구소로 찾아가 하버드대학 물리학자인 리사 랜들 박사의 연구실 문을 두드리면 이론물리학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다. 여기서 그녀는 퍼즐을 맞추듯 작은 조각들을 짜맞춰서 하나의 일관성 있는 그림을 그려낸다.
“엄청나게 새로운 개념이에요. 정말로 연구할 맛이 난다니까요.”
랜들 박사는 자신이 올 여름 처음 주창한 ‘이중 디스크 암흑 물질(double-disk dark matter)’이라는 새 이론에 대해 이렇게 운을 뗐다. 이 이론은 기존 이론을 부정하면서 시작한다. 랜들 박사팀은 천문학자들과 물리학자들이 암흑 물질에 대해 세워왔던 가정들, 그중에서도 연구의 복잡함을 해소하기 위해 세웠던 상당수의 가정들을 무시했다.
많은 과학자들은 암흑 물질이 하나의 입자라고 가정하지만 그녀는 2개 이상의 입자가 뭉쳐 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또 다수의 학자들은 암흑 물질이 눈에 보이는 입자들과 거의 상호작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활성 상태로 본다. 반면 그녀는 암흑 물질끼리는 다양하고 빈번하게 상호작용할 수도 있다는 가정을 세웠다. 아예 암흑 물질의 종류가 여러 가지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암흑 물질이 원자를 갖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들만의 화학적 세계가 있을수도 있죠. 그리고 이들은 뭔가가 응축된 산물일수도, 붕괴된 산물일수도 있습니다. 암흑물질은 우리 세계의 빛에 비하면 어둡지만 그들 세계의 빛에서는 밝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녀의 새로운 시각에 따르면 대다수 암흑 물질 성분은 별다른 형태 없이 폭넓게 분포돼 있으면서 우리가 암흑 물질의 존재 증거라고 생각하는 현상들을 일으킨다.
하지만 또 다른 종류의 암흑 물질인 상호작용 성분은 이와 다르다. 일반적인 물질들처럼 붕괘돼 우리 은하의 눈에 보이는 디스크 속에 끼워진 암흑 디스크 형태로 존재한다. 이중 디스크 암흑 물질이라는 작명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
이 암흑 디스크는 스스로 지닌 상호작용 능력과 힘에 의해 움직인다. 이론상 이런 암흑 물리학을 통해 암흑 항성과 암흑 행성, 심지어 암흑 생명체를 발견해 낼 수도 있다.
“이것보다 더 말도 안되는 이론도 있어요. 저희는 그런 것들을 연구합니다.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죠.”
최근 랜들 박사팀은 특정 암흑 물질이 예상보다 밀도가 높을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이는 LUX 등의 지하 검출기로는 확인이 불가능한 것으로서 다음의 두 가지를 설명할 수 있다.
우선 암흑 디스크는 스스로 뭉쳐서 밀도 높고 납작한 디스크 형상이 되지만 마치 회전목마처럼 지구를 포함한 우리 은하 전체와 발맞춰서 회전한다. 그래서 암흑 디스크 속의 입자는 우리 입장에서 볼 때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고로 LUX 같은 장비로 암흑 물질을 관찰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아직 세상에 발표되지 않은 이중 디스크 이론에 관한 논문에서 랜들 박사와 MIT의 매튜 맥컬로우 교수는 어떤 지하 검출기는 암흑 물질을 검출하는 데 다른 것들은 그렇지 못한 이유도 설명해놓았다.
물론 게이츠켈 박사와 같이 철저히 데이터 지향적인 연구자에게 이런 이론은 다소 멍청한 소리로 들린다.
“TV 드라마 ‘닥터 하우스’의 대사를 빌자면 2개의 이론이 있을 때 현상을 설명하지 못하는 이론에는 반대해야 합니다.”
COUPP팀의 후안 칼라는 그보다는 다소 개방적이다.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우주만 해도 이렇게 풍요로운데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가 그 이상으로 풍요롭지 말라는 법도 없죠.”
또한 라이켄 박사와 같은 입자 과학자들에겐 이중 디스크 암흑 물질은 가능성을 넘어 충분한 타당성을 갖춘 이론이다.
다행히 랜들 박사의 이론은 실험으로 충분히 확인이 가능하다. 그리고 앞으로 몇 년 후면 답이 나올 것이다. 어쩌면 LUX, LHC, AMS가 뭔가를 하기도 전에 이중 디스크 암흑 물질 이론이 증명될 수도 있다.
만일 우리 은하의 눈에 보이는 디스크 곁에 암흑 디스크가 있다면 지구 주변 항성의 움직임에 측정 가능한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이에 11월 중 유럽우주기구(ESA)의 최신 우주망원경 ‘가이아(Gaia)’가 발사되면 그러한 암흑 디스크의 영향을 측정할 것이다. 이를 통해 프리츠 츠비키 박사가 80년 전 처음으로 암흑 물질의 존재를 떠올렸듯 가이아는 암흑 물질의 세상 전체를 우리에게 보여줄 수도 있다.
암흑 물질 존재의 증거
아직 누구도 암흑 물질 입자를 분리해내지 못했다. 하지만 암흑 물질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확고한 천문학적 증거가 있다. 때문에 그 존재를 확증해내겠다는 물리학자들의 결의는 흔들림이 없으며, 다양한 검출기를 동원해 암흑 물질을 추적 중이다.
우주 형성 시뮬레이션 같은 거대구조 컴퓨터 모델들을 통해 암흑 물질이 빅뱅 이후 은하의 형성에 미친 영향을 알 수 있다. 암흑 물질 없이는 은하단과 항성을 탄생시킬 만큼 충분한 중력의 존재를 설명할 길이 없다.
중력 렌즈
허블망원경이 촬영한 ‘아벨 2218’[위] 같은 은하단 내의 물질은 마치 렌즈처럼 더 멀리 떨어진 은하들의 빛을 휘고, 집중시킨다. 이렇게 왜곡되는 양을 분석, 은하단의 질량을 파악할 수 있는데 측정된 질량은 눈에 보이는 은하단이 가질만한 질량을 훌쩍 넘어선다. 또한 이 미지의 물질은 항성이나 뜨거운 가스와는 분포양상도 다르다.
은하의 회전
은하는 회전을 한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항성과 기체가 전부라면 은하가 분해돼 버려야할 만큼 회전속도가 빠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큰 질량의 소유자가 이들을 붙잡아 주고 있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한 이론들 중 모든 증거와 부합하는 것은 암흑 물질 뿐이다.
우주 극초단파 배경복사
빅뱅 이후 남겨진 복사선은 초기 우주를 진동시킨 압력파에 의해 밀려나면서 온도에 따라 밀도가 높거나 낮은 곳을 만들어냈다. 이는 우주에 일반적인 물질과 암흑 물질이 섞여 있음을 입증하는 증거다. 구성 비율도 다른 계산법으로 도출한 결과와 매우 유사하다.
암흑 물질 숨바꼭질
입자 물리학자들은 LHC 내부에서 암흑 물질이 생성됐을 때 어떤 모습일지를 시뮬레이션했다. 동그라미 부분 안에서 광속에 가깝게 가속된 양성자 빔들이 충돌하면 다양한 입자들이 방출된다. 이때 암흑 물질도 생성될 수 있다. 암흑 물질 자체는 직접 검출이 어렵지만 생성된 암흑 물질에 상응하는 에너지[적색 화살표]가 사라지기 때문에 이를 통해 생성 여부의 추론이 가능하다.
암흑 물질 지도
우주배경복사 관측위성 ‘플랑크(Planck)’가 수집한 자료로 만든 우주의 암흑 물질 분포도. 물리학자들은 암흑 물질의 중력이 우주 극초단파 배경복사를 왜곡시키는 것을 보고 암흑 물질의 분포량을 파악한다. 짙은 청색일수록 암흑 물질의 밀도가 높고, 옅은 청색일수록 낮다. 회색은 우리 은하의 밝은 빛에 영향을 받아 플랑크 위성이 암흑 물질의 분포를 측정하기 어려운 곳이다.
LUX Large Underground Xenon의 약자. 주류 학계는 암흑물질이 ‘윔프(WIMP)’라는 소립자로 이뤄져 있다고 추정하고 있는데 LUX는 액체 크세논(Xe)을 이용해 윔프를 찾는 장치다.
1구(溝) 숫자 단위. 10의 30승, 즉 1,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을 뜻한다.
초순수 (ultrapure water)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불순물 함량을 최소화한 극도로 순수한 물.
초대칭 이론 (supersymmetry theory) 표준 모델에서 언급되는 모든 입자에는 그와 짝을 이루는 초대칭 입자가 존재한다는 이론.
AMS Alpha Magnetic Spectrometer의 약자.
중력렌즈 (gravitational lens) 지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천체에서 나온 빛이 은하, 은하단 등 거대 천체들의 중력장 영향을 받아 굴절돼 보이는 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