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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그룹은 지금] 현대차

프리미엄 전략 본격 시동<br>‘제 값 받기’로 수익성 높인다

현대차는 늘 프리미엄 제품에 대한 높은 기대를 보인다. 빠르게 성장해 몸집을 키웠지만 2% 부족한 무언가가 더 이상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어서다. 현대차는 그 부족한 부분이 ‘프리미엄’이라고 진단한다. 현대차는 수입차에 대항할 프리미엄 신차를 내놓기 시작했다. 현대차는 내수는 물론,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더 확고한 위치를 굳히기 위해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하고 있다.
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지난 5월 초, 수입차 전시장이 몰려 있는 서울 강남 도산사거리에 현대자동차가 브랜드 체험관을 열었다. 이전에 이곳은 닛산의 고급차 인피니티 전시장이었다. 모던한 6층 건물 외벽에선 현대차 로고를 찾아볼 수 없다. 건물 출입구 옆에 ‘현대모터스튜디오’라는 작은 영문 간판만 걸려 있다. 문을 연 지 한 달 뒤인 6월 초, 기자임을 밝히지 않고 이곳을 찾아가 봤다. 안으로 들어서자 직원이 반갑게 맞았다. 큐레이터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현대모터스튜디오는 단순히 차를 파는 대리점이 아니라 고객이 자동차 문화를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복합 문화공간이니 편하게 구경하라”며 미소를 지었다. 매장 안은 예술 작품 전시공간(1층)을 비롯해 자동차 도서관과 커피전문점(2층), 프리미엄 라운지(3층), 어린이 놀이공간(4층), 튜닝 숍(5층) 등 각 층마다 테마형 공간으로 꾸며져 있었다. 수입 고급차 매장보다 볼거리가 많았다. 제네시스, 그랜저, 쏘나타, 싼타페 등 주요 모델을 전시해 놓고 있었다. 벽면 공중에 걸려 있는 제네시스 차량은 차체 하부를 보여주고 있었다.

현대모터스튜디오는 수입차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수입차 1번지로 불리는 도산대로에 문을 연 고급 전시장이다. 수입차 대표주자인 BMW, 코오롱모터스와 벤츠 한성자동차 전시장이 길 건너에 마주하고 있다. 수입차 업계도 현대차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수입 자동차 업체 관계자는 “현대차가 도산대로에 들어온 건 독일차와 브랜드 싸움을 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해 수입차 시장은 전년 대비 20% 성장했다. 반면 현대차 내수 판매는 5% 줄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현대차를 타던 고객 상당수가 수입차로 갈아탄 결과로 해석하고 있다. 현대차가 브랜드 체험관을 완성차 업계 최초로 연 데에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현대모터스튜디오는 현대차가 추구하는 ‘모던 프리미엄’을 고객에게 전하는 공간이다. 안내데스크에서 받아 본 안내서에는 “현대차는 이곳에서 고객과 함께 기존에 없었던 자동차 문화를 만들어 가고자 한다”는 현대차 김충호 사장의 말이 적혀 있었다.

수입차 공세 vs. 현대 모던 프리미엄

모던 프리미엄은 현대차가 2011년에 정한 새 브랜드 방향성이다. ‘대중 브랜드로서 현대차만의 프리미엄급 경험과 가치를 전달해 고객에게 자부심과 감동을 선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현대차 측은 “기존의 프리미엄이란 키워드에 ‘가격 합리성’을 더한 개념”이라며 “소비자가 제품을 소유함으로써 특별함을 느끼는 동시에 소비자가 부담할 수 있는 가격 접근성도 가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부연 설명했다.

현대차는 10년 전 ‘품질 경영’을 시작했다. 그동안 거둔 성과는 대단했다. 세계 5위 자동차 기업으로 고속 성장했다. 현대차는 업계 최고의 패스트 팔로어로 불렸다. 그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또 다시 달라져야 한다는 압박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더 높은 자리를 노리는 현대차에겐 과거와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다. 바로 현대차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차를 많이 파는 회사에서 가장 사랑 받는 브랜드로 변신하는 걸 목표로 삼았다. 현대차는 전 세계 시장에서 통용될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벤츠는 ‘최고’를, BMW는 ‘운전의 재미’를 볼보는 ‘안전’을 바로 떠올릴 수 있다. 현대차는 이를 위해 ‘브랜드 경영’을 시작했고, 브랜드 경영을 위한 큰 줄기로 ‘모던 프리미엄’을 내세웠다.

현대차는 지난해까지 브랜드 노출 극대화를 통한 인지도 향상을 글로벌 브랜드 전략으로 삼았다. 전략은 나름대로 성공했다. 이 기간 현대차의 브랜드 가치는 크게 상승했다. 세계 최대 브랜드 컨설팅업체 인터브랜드가 지난해 발표한 ‘2013 글로벌 100대 브랜드’에서 현대차는 2012년보다 10계단이나 뛰어오른 43위를 기록했다. 50위 이내 진입은 처음이었다.
현대차는 수입차들이 벌이는 거센 공세로 오랜 기간 고민했다. 올 들어 지난 4월까지 국내에 등록된 수입차는 총 6만1,146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6% 폭증했다. 같은 기간 현대차는 전년 동기 대비 6% 증가한 22만 6,609대를 국내시장에서 판매하며 점유율 방어에 힘쓰고 있지만, 수입차들의 폭풍적인 질주는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다.

현대차는 수입차 판매가 늘어나는 이유에 대해 “그랜저를 타던 고객이 제네시스나 에쿠스가 아닌, 수입차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해석을 내리고 있다.

과거 그랜저는 국산 고급 자동차의 대명사였다. 아무나 탈 수 없는 성공한 사람들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수입차들이 도로에 나타나면서 쏘나타 같은 보편적인 준대형 차종으로 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누구나 가질 수 있고 그냥 운행할 수 있는 정도의 차종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제네시스에 이어 AG 출시

현대차는 2008년 현대차 최초 후륜구동 럭셔리 세단인 제네시스를 내놓았다. 하지만 수입차를 막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지난해 말 1세대 제네시스를 완전히 탈바꿈시킨 신형 제네시스를 출시하며 프리미엄 자동차 시장에 선전포고를 했다. 신형 제네시스는 디자인과 주행, 안전 성능 등 모든 부문에서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말한다. “제네시스는 에쿠스와 더불어 현대차의 프리미엄급 대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10여 년 동안 독자적 프리미엄급 모델의 구축에 심혈을 기울인 덕분에 이제는 방향을 잡은 듯합니다.”

현대차는 5월 열린 부산모터쇼를 통해 전륜구동 플래그십 세단 ‘AG’를 공개했다. 제네시스가 신분 상승을 한 만큼, 그랜저는 하향 평준화되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 둘 사이에는 상당한 틈도 벌어졌다. 현대차 입장에서는 비어 있는 중간 영역의 틈새를 메울 차종이 필요했다. 현대차는 AG를 그랜저와 제네시스 틈새 차종으로 포지셔닝했다. 배기량은 3,000cc급에 가격은 4,000만 원대다. 현대차는 AG를 프리미엄 세단 라인업의 엔트리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곽진 현대차 국내영업본부장(부사장)은 부산모터쇼 기자간담회에서 “전륜구동 플래그십 세단 AG의 출시 시기는 오는 9월 이후로 잡고 있다”며 “그랜저보다 모든 사양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AG의 출시는 수입차로 빠져나가는 수요를 잡기 위한 대응책으로 볼 수 있다. 현대차가 AG를 내수 한정 모델로 잡은 것도 이 때문이다. 전략적으로 BMW 5시리즈나 벤츠 E클래스 등으로 옮겨가는 수요를 AG로 돌리겠다는 계산이다. 김필수 교수는 설명한다. “최근 BMW 같은 주요 수입 프리미엄 메이커는 소형 1시리즈부터 대형 7시리즈까지 빈 틈이 없을 만큼 다양한 차종을 선보이고 있어요. 다양한 모델이 출시되면서 소비자의 선택을 다양하게 한 점이 현대차에게 큰 자극이 되었을 겁니다.”

현대차의 AG 출시는 마케팅 전략의 근본적 변화라는 측면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그 동안 현대차는 수입차를 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가격할인 등을 단행했지만 수입차 업체들의 가격할인 폭이 워낙 커서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때문에 AG의 출시는 수입차를 향한 현대차의 공세가 본격적으로, 직접적으로 시작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차 출시로 정면 대응하는 현대차의 정공법에는 ‘더 이상 밀리면 안 된다’는 현대차의 절박함이 묻어 있다.

제값 받기로 수익성 극대화

현대차는 지난해 매출액 87조 3,080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보다 3.4% 늘었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8조 3,160억 원으로 1.5% 감소했다. 기아차의 경우 매출액은 47조 5,979억 원으로 0.8% 늘었으나 영업이익은 3조 1,771억 원으로 9.8% 감소했다. 현대기아차가 이처럼 ‘많이 팔고 적게 남긴’ 이유는 신흥시장과 소형차 위주로 판매를 이어왔기 때문으로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현대차는 올해도 글로벌시장의 불확실성 증대로 경영환경의 어려움이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 출구전략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과 중국의 저성장·안정화 정책으로 글로벌 주요 시장 자동차 판매 성장세는 둔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들어선 원·달러 환율도 큰 폭으로 하락하며 원화강세 기조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해외시장에선 업체들의 신차 출시 및 판촉 강화로 경쟁이 더욱 심화되는 상황이다.

현대차는 높아진 제품 및 브랜드 인지도를 바탕으로 현 위기상황을 극복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특히 ‘제값 받기’를 통한 내실경영을 더욱 강화하기로 했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기아차의 글로벌시장 대당 판매 가격은 1만 6,500달러 수준인 반면 상위권 업체들은 2만 5,000달러를 넘는다”며 “프리미엄 자동차로 선진시장을 공략하지 못하면 경영악화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글로벌시장에서 주요 차종의 판매가를 높이고 있다. 저렴한 가격을 장점으로 내세웠던 전략에서 벗어나 품질과 성능으로 인정받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제값 받기’로 수익성을 확보해 경쟁사와 차별화된 성과를 이뤄 나간다는 전략이다.

미국 시장에서 현대차는 신형 제네시스(3.8리터, 5리터 모델)의 가격을 기존 제네시스보다 3,000~4,000달러 정도 비싼 3만 8,000~5만 1,500달러로 책정했다. 이는 BMW 5시리즈나 벤츠 E클래스와 비교하면 1만 달러가량 낮지만, 렉서스나 링컨의 비슷한 차종과 비교하면 같거나 다소 높은 수준이다. 제네시스는 러시아에서도 벤츠 E클래스중 최상위 트림인 ‘E500 4매틱(285만 루블, 1억 1,010만 원)’ 모델을 제외한 나머지 모델 가격(195만~285만 루블, 5,818만~8,504만 원)과 거의 비슷하게 팔리고 있다.

현대차 측은 “더 이상 값 싼 브랜드라는 이미지만으론 성장할 수 없기 때문에 ‘프리미엄’ 브랜드로서의 이미지를 확립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제값 받기를 통해 시장점유율과 수익성을 동시에 끌어올려 최근의 원화 강세 등 어려운 시장환경을 극복하겠다”고 말했다. 국내 수입차 시장이 나날이 커지면서 그만큼 현대차 시장이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현대차의 응전도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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