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라면 이야기


물만 끓일 수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간편한 음식. 입안 가득 침을 고이게 만드는 자극적 향내. 온 국민의 대표 간식 라면이다. 싼값에 한 끼를 해결하며 한번 맛 들이면 벗어나지 못할 치명적 유혹을 가진 경외의 대상이다. 소설가 김훈이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를 통해 "그 맛의 놀라움이 장님의 눈뜸과 같았고 불의 발견과 맞먹을 만했다"고 극찬한 것이나 이문열이 소설 '변경'에서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맛난 음식을 먹고 있는 듯했다"는 평가도 어색하지 않다. 그러니 국민 한 명이 매년 라면을 74개나 흡입하겠지….

라면이 처음 소개된 것은 1963년. 고(故) 전중윤 삼양식품 회장이 일본에서 들여오면서부터다. 처음 내놓았을 때의 가격은 단돈 10원. 당시 버스요금이 8원이었으니 가난한 사람들도 충분히 먹을 만한 값이었다. 게다가 맛도 있으니 스타 상품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 생산 첫해 980만원이었던 매출액은 10년 뒤인 1973년 220억원으로 2,200배 이상 뛰었다. 김훈의 말처럼 '식량사의 전환'이라고 할 만한 수준이다.

라면이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산업화 때문이었다. 라면은 우리나라에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처음 시작된 시기에 '제2의 쌀'이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등장했다. 산업화로 농촌에서 도시로 노동력이 몰려왔지만 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쌀은 태부족인 상황. 이때 미국 원조로 차고 넘치는 밀을 이용해 식량 문제를 해결했으니 정부로서는 반가울밖에. '쌀보다 간편하고 영양소가 많아 칼로리가 높은 식품'이라고 치켜세우고 7만4,000달러의 국제개발처(AID) 차관을 삼양에 제공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런 라면이 최근 모습을 바꾸고 있단다. 짜장라면·비빔면 같은 국물 없는 라면이 26% 이상 치고 올라온 반면 기존 국물라면 비중은 줄어들고 있다는 것. 라면을 요리로 취급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프리미엄 라면을 찾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시대에 따라 취향도 입맛도 변하는 모양이다. 그래도 한밤중에 뜨겁고 칼칼한 국물과 꼬불꼬불한 면발을 후후 불면서 먹는 기존 라면은 여전히 없어서는 안 될 친근한 벗이다.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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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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