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의식해 이익단체의 눈치를 보느라 나라 곳간을 채우는 세법개정안을 줄줄이 후퇴시키고 있다. 반면 씀씀이를 키우는 '퍼주기' 법안은 속속 처리하기로 해 내년 국가재정에 벌써부터 경고등이 들어왔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는 26일까지 상정된 세법개정안 180여개 논의를 사실상 마치고 일부 핵심법안에 대한 막판 협상만을 남겨두고 있다. 그런데 여야가 처리에 합의한 법안을 살펴보면 세입을 늘리는 법안은 대부분이 정부안보다 후퇴했다. 예를 들어 신용카드 소득공제율을 축소(15→10%)하는 법안은 시행시기를 내년에서 2015년으로 1년간 유예해버렸으며 1만원 이하 상품권에 대한 부과되는 인지세는 100원에서 50원으로 반토막났다. '유리지갑'이라며 반발하는 중산층과 내수 축소가 우려된다는 기업들의 반발을 의식한 탓이다.
또 개별소비세 과세 대상이 되는 장기 렌터카의 기준을 '30일 초과'로 대폭 강화하는 방안은 '6개월 초과'로 완화됐으며 강원랜드 입장료를 오는 2018년까지 100% 인상하는 방안도 '2016년까지 80% 인상'으로 후퇴했다.
사회적인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았다며 아예 내년으로 미뤄버린 법안도 많다.
2016년부터 목사·승려 등 종교인의 소득에 세금을 부과하는 안은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시행 시기, 세금 부과 방식에 대한 논의가 충분하지 않았다"며 처리를 보류했다. 세무당국의 편의를 위해 전자신고에 인센티브를 줬던 '전자신고세액공제'제도를 폐지하겠다는 법안도 세무업계의 반발로 '계류법안'으로 분류됐다.
반면 세제혜택을 늘리는 법안은 슬며시 원안보다 강화됐다. 매출 2,000억원 이하 기업에 적용되는 가업상속세 공제는 정부안(매출 3,000억원 이하)보다 규모가 큰 매출 5,000억원 이하 기업까지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재건축·재개발지구(뉴타운) 사업 매몰비용을 비용처리(손금산입)할 수 있게 해 건설사들의 '출구전략'을 마련해주기 위한 조세특례제한법도 여당안보다 세제혜택 규모가 큰 야당안으로 처리하기로 했다.
편법 증여수단으로 변질된 '일감 몰아주기' 과세 대상을 축소하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도 일부 의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중견기업까지 빠지는 쪽으로 결론 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여기에 경남은행 매각을 연기시키기 위해 조세특례제한법 통과를 미뤄달라는 새누리당 경남 지역 의원들의 방문까지 이어지면서 조세소위는 이해관계의 전쟁터로 변모됐다.
경남은행을 지역에 환원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는 경은사랑컨소시엄에 불리한 방향으로 매각 분위기가 흐르자 이날 새누리당 경남지역 의원들이 '실력행사'에 나선 것이다.
경남 의원들은 조세소위 위원들과 간담회를 통해 "개정안을 내년 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시켜도 우리금융지주 민영화에는 당장 영향이 없다"며 "사안에 정무적 판단을 더해 법안 처리에 시간을 둬달라"고 요청했다.
현재 경남은행 매각 본입찰에서는 부산에 뿌리를 두고 있는 BS금융지주가 가장 높은 입찰가인 1조2,000억원을 써낸 것으로 알려져 가장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다양한 이권개입으로 세법심사의 원칙이 크게 흔들리면서 내년 세입예산은 당초 계획한 목표치를 채우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 정보위원회를 제외한 15개 상임위원회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요구한 내년도 예산증액 규모는 11조5,000억원에 달해 적자재정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