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대통령의 사과, 그리고 '복지의 대못'


우리 국민은 26일 대통령의 고개 숙인 모습을 또다시 보았다. 공약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 이유다. '약속'과 '신뢰'를 생명으로 여기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텔레비전을 통해 '죄송하다'는 수사(修辭)를 써가며 사과를 하는 것은 미안함에 앞서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가 사과의 대상으로 삼은 '노인'들은 분노와 짠한 마음이 동시에 치밀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켠에서 대통령의 발언을 촘촘히 되새김해보면 가슴 속에서 올라오는 울렁거림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대통령이 또다시 헛된 약속을 하는 것 아닌지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기초연금을 전부 주지 못하는 것이 공약의 포기는 아니다. 임기 내 반드시 실천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본인이 직접 주재해 의결한 내년 예산안을 보면 그의 약속에 얼마나 진정성이 담겨 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급증하는 복지 예산을 감당하기 위해 임기 동안 90조원에 육박하는 재정적자를 용인할 방침이다. 이 경우 나라 빚은 오는 2017년 600조원을 넘어선다. 국민 한 사람당 1,200만원 가까이 되고 짊어져야 할 세 부담은 당장 내년에 550만원에 이른다. 이것이 불어나는 빚을 지각하지 못하는 빚쟁이의 모럴해저드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상황이 이럴진 데 대통령은 복지 공약에 대한 맹목적 환상을 국민에게 남겨뒀다.

물론 약속을 지킬 수는 있다. 나라 곳간보다 국민에 대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한다면 노인 모두에게 기초연금을 주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 부담은 고스란히 중년 세대와 젊은이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것이야말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하면서 밝힌 '대못'과 다를 바 무엇인가. 다음 대통령은 전임자가 박아 놓은 '복지의 대못'을 뽑기 위해 또 한번의 엄청난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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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지방 분권이라는 명분 아래 만들어진 세종시의 기형적 운영에 고생하는 공무원들의 모습과는 비교할 수 없는 나라 전체의 생채기가 될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사과를 하려면 제대로 했어야 한다. 취임 7개월 만에 약속을 송두리째 버릴 수 없다는 정무적 판단에서 벗어날 수 없었겠지만, "임기 내 실천할 수 있다"는 말로 국민에게 희망을 남겨준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다. 무상보육부터 시작된 전국민의 공짜에 대한 환상을 언제까지 놓아둘 것인가. '보편적 복지' '증세 없는 복지'라는 허울 좋은 복지 환상을 왜 깨지 못하는가.

그렇다고 이제 와 대통령에게 다시 사과를 하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방법은 주무 부처와 정치권이 '증세 있는 복지'와 '차별적 복지'에 대한 공감대가 국민 전반에 스며들 수 있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나라 빚 때문에 한 사람당 이자만 40만원 넘게 지불해야 한다는 솔직한 현실을 국민 모두가 알 수 있게 하고 당장의 달콤한 열매가 아니라 우리의 아이들이 더 깊고 진한 향내를 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감성적 판단이 자리하도록 해야 한다.

이날 서울경제신문이 개최한 '대한민국미래컨퍼런스'에서 연사로 나선 김연희 보스턴컨설팅 아시아유통부문 대표는 "우리의 국민 소득이 외형적으로는 2만달러이지만 의료와 연금 등 개별 시스템으로 따지면 많은 부분이 훨씬 아래에 있다"고 했다. 이를 공공 부문이 다 채울 수 없고 결국 민간이 모자란 그릇을 메워야 한다고 김 대표는 얘기했고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답은 하나다. 우리 수준에 맞지 않는 복지의 옷을 당장이라도 버려야 한다. 경제 시스템에 맞는 현실적 복지의 그릇을 새로 만들고 모자란 부분을 누가 어떻게 채울 것인지 지금이라도 사회 전체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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