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대형 시중은행은 최근 서울 반포의 아파트단지 부녀회를 대상으로 '산나물 뜯기 행사'를 진행했다. 본점에서 지원한 버스에 '사모님' 20명을 모시고 경기도의 한 산을 찾았다. 점심시간에는 프라이빗뱅킹(PB) 팀장의 재테크 설명회가 마련됐다. 주부 5명이 PB 서비스 계약을 할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이날 행사에 들어간 비용은 100만원. 이 은행은 주변 아파트단지의 테니스동호회ㆍ골프동호회 등으로 행사를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 또 다른 시중은행 PB는 최근 지인의 소개를 받은 한 대기업 임원으로부터 억대의 예금을 유치하기 위해 직접 컴퓨터를 들고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그는 최근 금융시장 흐름 등에 대해 20여분간 브리핑을 한 뒤 지수연동예금(ELD) 등 다양한 상품들을 소개했다. 당시 인기를 모았던 하이일드펀드에 2억원 규모를 가입하는 내용의 상품가입서를 작성하는 순간 이 임원은 비밀번호를 말하기가 꺼림칙해 결국 가입을 미뤘다. 최종 계약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이른바 '포터블브랜치'가 조만간 대중화할 것임을 보여준다.
PB서비스가 진화하고 있다. 지난 10년 사이 PB시장의 영업 패턴이 유럽ㆍ미국 등 금융선진국을 모방한 '집사형' PB서비스 형태로 발전해왔다면 최근 들어서는 고객 한 명이라도 더 모집하기 위한 '세일즈맨형' PB서비스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다.
인터넷뱅킹과 스마트폰뱅킹 등 'IT뱅킹' 확산에 이어 금융회사의 수익성까지 악화하면서 영업 패턴의 경직성이 강한 PB서비스마저 바꿔놓은 셈이다. 포화단계에 접어든 PB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금융회사 간 일대경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PB들의 '발로 뛰는 영업'은 양상도 다양하다.
시중은행 중 PB 경쟁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하나은행. 하나은행의 PB거래 중 찾아오는 손님, 즉 인바운드 영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초반까지만 해도 90%였지만 최근에는 6대4 비율로 축소됐다. 책상 앞에 앉아 내방고객을 기다리던 영업 패턴에서 적극적인 PB고객 발굴로 전략을 바꾼 결과다. 하나은행은 조만간 아웃바운드 비중이 인바운드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김종준 하나은행장은 "PB라고 해서 언제까지나 고객을 기다리는 영업을 고수해서는 안 된다"며 "하나은행 PB들은 나가서 직접 고객을 찾아오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하나은행 WM(웰스매니지먼트)본부는 2,000억원의 예금 및 MMDA를 단 한번에 유치했는데 이는 세일즈맨형 PB영업이 이뤄낸 결과물이다. WM본부는 A기업이 지분매각을 추진한다는 정보를 듣고 다양한 루트를 통해 포트폴리오 제안서를 제시했고 결국 해당자금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PB센터 투자설명회도 발로 뛰는 PB영업 중 하나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각 시중은행 PB센터들은 상반기와 하반기에 한 차례씩 기존 VIP고객을 대상으로 투자설명회를 개최했다. 그러나 신규 PB고객 유치가 어려워짐에 따라 고객 접촉빈도를 늘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여기에 정부의 증세의지가 강화되면서 잠재고객들의 설명회 개최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
이영아 기업은행 PB고객부 과장은 "PB시장이 포화되면서 신규 고객 발굴 자체가 어려워졌다"며 "더욱이 옛날처럼 금리경쟁력 하나로 영업하는 시대가 저물면서 고객을 만나 그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식으로 PB영업이 전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점은 공격적인 PB영업이 수익성의 역순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권 중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증권사는 그야말로 PB영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
최근 한 증권사는 PB고객 모집을 위한 전화 마케팅을 시작했다. 매달 10만~20만원씩 적립식펀드에 투자하는 직장인에게도 PB서비스 이용을 권하는 것이다. 해당 증권사 PB들은 고객의 요청이 있으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직접 방문해 대면 PB서비스를 하고 있다.
한 대형증권사 관계자는 "VIP 또는 VVIP에 한정돼 있던 PB서비스가 일반 직장인들에게까지 확대됐다는 것은 그만큼 금융사의 수익성이 좋지 않다는 뜻"이라며 "과거처럼 기존의 PB고객이 지인을 소개하는 식의 영업에는 한계가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금융사의 영업 패턴이 인터넷뱅킹과 스마트폰뱅킹 등의 확산에 따라 빠른 속도로 달라졌다고 보고 있다. 한 시중은행장은 "은행원이 더 이상 창구에 앉아 있을 필요가 없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인사와 점포전략 등도 이에 맞춰 다시 짜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일례로 포터블브랜치만 해도 지금은 여수신 규모가 비교적 큰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지만 비밀번호 문제 등만 해결되면 머지않은 시간에 범용화할 것이라고 금융계 인사들은 말한다.
결국 정보기술(IT) 혁명과 금융시장의 변화 흐름이 맞물리면서 영업 패턴은 물론 금융감독 당국의 감독방향까지 빠르게 바꿔놓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