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가 고공행진을 거듭하는 국제유가에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달 초만 하더라도 월가에서는 국제유가의 상승이 일시적인 것으로 글로벌 경제의 성장세에 큰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골드만삭스애셋매니지먼트의 짐 오닐 회장이 "석유 공급차질에 대한 우려는 과장된 것이며 유가가 오른다고 하더라도 세계 경제의 성장세는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 대지진이라는 새로운 복병이 등장하고 리비아 사태가 연합군의 공습과 카다피의 항전 등으로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국제유가가 상승세를 지속하자 상황이 바뀌고 있다. 월가의 주요 투자은행(IB)들은 유가와 글로벌 경제에 대한 전망치를 속속 수정하고 있다. 이들은 과거에 비해 글로벌 경제의 석유의존도가 크게 낮아진 만큼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를 웃돌 정도로 치솟지 않는다면 '오일쇼크'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글로벌 경제 성장의 하향 리스크와 인플레이션 압력이 동시에 커지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국제유가 전망 속속 상향= IB들은 최근 들어 국제유가 전망치를 속속 상향조정하고 있다. BOA메릴린치는 올해 서부텍사스산(WTI) 원유의 평균 가격 전망을 종전의 배럴당 87달러에서 101달러로, 브렌트유 전망은 88달러에서 108달러로 각각 올렸다. 특히 2ㆍ4분기의 경우 평균 유가는 WTI는 116달러, 브렌트유는 122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BOA메릴린치는 리비아 이외의 지역으로 생산중단이 확대되면 전망치를 추가 조정할 예정이다. 소시에떼 제네랄 역시 브렌트유의 올해 평균 가격을 배럴당 98달러에서 109달러로 올렸다. 소시에떼 제네랄은 만약 중동지역에서 중간규모의 산유국이 정정불안에 휩싸이면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125~150달러로 오르고, 세계 최대 석유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생산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에는 150~200달러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JP모건체이스는 이미 지난달 브렌트유 전망치를 95달러에서 104달러로 올린 바 있다. 골드만삭스도 최근 경제분석을 통해 국제 유가가 자신들의 예상보다 20% 이상 높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며 조만간 전망치를 수정할 예정임을 밝혔다. ◇"배럴당 10달러는 리스크 프리미엄"= 월가는 현재 형성돼 있는 국제유가 가운데 중동지역의 정정불안에 따른 석유 공급 차질 우려를 반영하는 리스크 프리미엄이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와 함께 가격 상승을 예상한 투기수요들이 몰리면서 유가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WTI 선물이 거래되는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투기적 매수잔고가 사상최고치인 3억9,000만 배럴에 달한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는 세계 하루 평균 석유소비량 8,700만 배럴의 4배를 넘는 수준이다. 골드만삭스는 "투기적 매수잔고는 튀니지에서 시작된 중동 및 북아프리카의 정정불안이 이집트, 리비아로 번져나가면서 1억배럴 이상 증가했다"며 "국제유가에서 배럴당 10달러는 리스크 프리미엄"이라고 진단했다. BOA메릴린치는 "연합군의 리비아 폭격, 일본의 원자로 재앙, 중동 및 북아프리카지역의 정정불안 확산 등 리스크 요인이 확대됨에 따라 리스크 프리미엄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소시에떼 제네랄도 배럴당 115달러에 달하는 브렌트유 가격 가운데 15~20달러가 지정학적 리스크 프리미엄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경제 '오일쇼크'는 없지만…"= 국제유가 상승이 일본의 대지진과 쓰나미, 원전재앙과 더불어 글로벌 경제의 성장세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문제는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치느냐는 것이다. 그 동안 월가는 세계경제의 석유의존도가 지속적으로 감소해왔다는 점에 근거해 국제유가 상승이 글로벌 경제 성장의 큰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란 진단을 내려왔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지난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초까지는 유가 10% 상승이 성장률을 0.5%포인트 떨어뜨리는 요인이 됐지만, 지금은 0.2% 포인트 미만의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와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글로벌 경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일본 지진으로 인해 올해 글로벌 성장률이 3.8%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기존 전망치보다 0.5%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바클레이즈 캐피탈은 국제유가가 지난해 이후 40% 이상 상승함에 따라 주요7개국(G7)의 성장률이 0.2%포인트에서 최대 0.4%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유가상승은 특히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한다. 국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유가가 25달러 추가 상승하면 회원국들의 인플레이션율은 0.75%포인트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BOA메릴린치도 올해 글로벌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4.3%로 0.1%포인트 낮춘 반면 인플레이션 전망치는 3.9%로 0.2%포인트 올렸다. 다만 유가 상승의 파급 영향은 지역별로 편차가 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BOA메릴린치는"대체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미국이 영향을 가장 덜 받는 반고 재정 여건이 건전한 이머징국가들은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반면, 유럽은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유가상승으로 인해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면 중국 등 이머징 국가들이 금리인상 등 적극적인 긴축에 나설 수밖에 없고, 이는 다시 세계경제를 위축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IB들은 제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