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무대에서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과 국가경쟁력은 높게 평가되고 있는 반면, 한국의 회계투명성 국가 순위는 2010년 이후 오히려 계속 하락해 2013년에는 최하위권에 위치하며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이 되고 있다.
2013년 세계경제포럼(WEF)의 글로벌 회계투명성 조사 발표를 보면 한국은 148개국 중에 91위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의 평가에 의하더라도 한국 국가 경쟁력은 60개국 중 22위인 반면 회계투명성은 58위에 불과했다. 외환위기 이후 금융감독당국이 전방위적 노력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15년이 지난 지금도 회계투명성이 바닥권에 머물고 있는 상태를 일시적 현상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물론 주관적 서베이에 의존하는 평가방법에 한계는 있지만 해외 투자가는 물론 IMD 등의 설문조사 대상자인 국내 최고경영자(CEO)ㆍ최고채무책임자(CFO)ㆍ회계담당자들마저 한국의 회계투명성에 대한 불신이 심각한 수준임을 인식해야 한다.
뉴욕 회계컨설팅기업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에서 기업들의 감사와 자문을 해온 필자의 과거 경험에 의하면 한국의 회계제도 및 지배구조는 지난 10여년 동안 많이 개선돼왔다. 특히 기업들의 회계정보 및 관리 전산시스템은 CEO와 CFO가 의도적으로 분식하지 않는 한 많은 부분이 투명하게 관리되도록 만들어져 있다. 회계투명성을 글로벌 수준으로 개선시키기 위해 금융당국은 1997년 이후 사외이사ㆍ감사위원회 등 여러 분야에 부족한 지배구조 제도를 개선해왔고 또한 2년 전에 한국형 국제회계기준(K-IFRS)을 도입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2년 사이에 더 큰 폭으로 글로벌 투명성 순위가 하락해 정부 관련자들을 당혹하게 하고 있다. 이처럼 감사위원회ㆍ이사회ㆍ내부감사 등 관련 제도와 회계 시스템을 국제기준에 부합하게 채택해도 운영하는 사람들의 의식구조와 직업 윤리에 따라 정책 당국의 의도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과거에 적용됐던 한국회계기준(KGAAP)은 세부적인 규칙을 명시한 반면, IFRS는 원칙과 개념을 폭넓게 적용하는 회계기준이어서 주관적 해석의 틈이 많이 존재한다. 즉 회계 재량권이 전보다 확대돼 CEO나 CFO가 단기실적 압박 등 이익 조정 유인이 있을 때 원칙에서 벗어나 무리한 회계처리를 할 함정이 될 수도 있다.
또한 회계투명성은 재무정보의 신뢰성뿐만 아니라 제반 법규와 규칙의 준수를 포함한다. 최근 여러 대기업들의 사법조사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아무리 기업 총수나 CEO들이 사심 없이 계열사들을 살리려고 했더라도 과거관행으로 해온 법규와 규칙 위반행위가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 시대에 와 있다.
지금 기업들에는 투명성과 신뢰성 확보는 필수조건이다. 소비자ㆍ주주ㆍ직원 모두 기업들의 정도경영을 요구하고 있다. 미래 시장에서는 제품과 경쟁력이 뛰어나도 기업의 도덕성이 무너지면 한순간에 쓰러질 수 있다. 기업 오너나 고위임원들은 현행 지배구조의 형식적인 운영에서 벗어나 정도경영으로 가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제도적 보안과 개선도 중요하지만 아는 것을 스스로 행해 나가는 것이 해결책의 근본이다.
최근 정부와 사법당국이 대기업을 포함한 여러 경제주체들에 대한 세금 및 불법 부당한 경제 행위 조사를 광범위하게 진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부 언론과 경제 인사들은 경제심리 위축을 우려해 비판적이다. 하지만 단기적으로 부작용이 있어도 예외 없는 공정한 법과 질서확립으로 기업에 정도경영 문화를 정착시켜야 그 위에 지속 가능한 선진형 경제도 쌓을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시대요구에 부흥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른 기업의 흥망성쇠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특히 기업오너와 CEO 등은 사회적 책임감을 깊이 인식하고 자발적으로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 정도경영의 대세에 맞춰나가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