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3류 서비스 산업] <2> 발목 잡힌 의료산업

생산유발 수십조인데… 이해관계 얽혀 영리병원 번번이 무산<br>10년 걸려 법 만들고도 시민단체 등 반대하고 정치권 눈치보기에 표류<br>미래 먹거리 원격진료도 의료계 반발로 입법연기

한 러시아인 환자가 서울성모병원 검진센터에서 협심증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운동심부하검사를 받고 있다. 국내 의료 서비스의 질을 한 단계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되는 영리병원 설립은 국내 병원들의 반대와 정치권의 눈치보기로 요원한 상황이다. /서울경제DB


인천국제공항으로 가기 위해 인천대교고속도로 송도IC에 진입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왼쪽으로 아파트 숲과 맞닿아 있는 잡초 가득한 공터가 보인다. 원래는 이 자리에 올해 600병상 규모의 송도국제병원이 들어서 국내 영리병원 시대를 열 계획이었다. 하지만 영리병원 설립 세부규정 법안 마련이 지연되고 다른 병원들과 시민단체들이 일반병원의 의료 서비스가 낮아질 것이라며 반발하자 인천시가 영리병원 설립방침을 철회하면서 결국 백지화됐다. 인천시는 이 자리에 비영리국제병원을 지을 계획이지만 지역주민들은 여전히 영리병원을 원하고 주변의 다른 병원들은 새로운 경쟁자 탄생을 어떻게든 막으려 해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지난 8월에는 중국계 자본의 '싼얼병원'이 제주국제자유도시 내 설립허가를 받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또 다른 국내 1호 영리병원이 탄생하는 듯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가 "싼얼병원의 줄기세포 시술에 대한 관리ㆍ감독이 어려워 사업계획서를 더 검토해야 한다"며 승인을 잠정 보류하면서 국내 영리병원 도입은 다시 한번 무산됐다. 정부는 표면적으로 시술방법을 문제 삼았지만 영리병원 도입에 대한 해당 업계의 반발에 대한 부담이 직접적인 이유로 작용하고 있어 영리병원 탄생은 여전히 멀기만 한 상황이다.


글로벌 경기침체 등으로 우리나라의 성장동력이 갈수록 떨어지는 상황에서 부가가치가 높고 고용창출 효과가 큰 서비스 산업이 앞으로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이끌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의료산업은 금융과 법률ㆍ컨설팅 등과 더불어 서비스 산업의 중심축으로 꼽힌다. 의료산업 발전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영리병원) 도입과 원격의료다. 하지만 높은 규제장벽과 기존 병원들의 반대에 부딪히며 새로운 성장동력이 표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영리병원은 외국자본에 한해 외국인 전용 영리병원 설립을 허용하는 경제자유구역법이 2002년 12월 제정되며 처음으로 도입근거가 마련됐다. 현행 의료법에 따라 병원은 의사나 비영리법인ㆍ정부 등만 차릴 수 있지만 예외규정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영리병원의 개설요건과 절차 등을 규정하는 추가 법안 제정작업이 국회에서 장기간 표류하며 법 제정 10년 만인 지난해 10월29일이 돼서야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 의료기관의 개설허가 절차 등에 관한 규칙'이 시행돼 인천 송도나 제주도 등지에 외국인 투자비율 50% 이상인 영리병원 설립이 실질적으로 가능해졌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법령정비까지 끝났지만 앞선 사례처럼 다른 국내 병원 등의 반대와 이들의 눈치를 보는 정치권ㆍ지방자치단체 때문에 여전히 영리병원 설립은 멀기만 한 상황이다.


영리병원은 다양한 자본을 의료산업에 끌어들여 의료기관들끼리 경쟁을 촉발시킴으로써 국내 의료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다. 특히 의료관광 산업을 활성화해 외국인 환자들을 집중적으로 유치함으로써 경제성장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됐다.

관련기사



우리나라는 의료인력이 우수한데다 의료체계의 효율성도 높고 건강검진과 성형, 척추ㆍ관절, 간이식 부문은 기술이 선진국 수준에 도달해 있다. 또 한류 열풍을 타고 관광객까지 증가하는 상황이라 의료관광 산업 육성에 좋은 조건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부의 올해 외국인 환자 유치목표는 20만명. 이로 인한 일자리 창출규모는 7,235명이며 진료수익 3,805억원, 관광수익 599억원을 얻을 것으로 분석됐다. 우리나라가 영리병원을 도입할 경우 부가가치와 고용창출 효과는 눈에 띄게 커진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외국인 환자를 주로 다루는 영리병원을 육성한다면 생산유발 규모는 10조9,000억원, 일자리 창출효과는 10만2,000개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영리병원을 도입해 의료산업을 핵심 산업화할 경우 생산유발 규모는 26조7,000억원, 고용창출 효과는 18만7,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예상한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비의료인의 의료업 진입을 제한하는 현행법에 따라 국내 의료기관의 자본ㆍ시설 확대가 더뎌 외국인 환자 유치에 선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며 "우선 외국인 의료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병ㆍ의원에 대한 영리자본 참여부터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격의료 역시 창조경제를 이끌 핵심 산업으로 꼽힌다. 구글ㆍ마이크로소프트ㆍ삼성전자ㆍ제너럴일렉트릭(GE)ㆍ지멘스ㆍ인텔 등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앞다퉈 원격의료시장에 뛰어드는 점도 이를 방증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원격진료 이용률이 전체 인구의 20%로만 커도 시장규모는 2조3,653억원에 이르고 관련장비시장은 4,021억원으로 성장한다. 고용창출 효과도 3만370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원격의료가 구현되면 환자의 혈압이나 체온ㆍ심전도ㆍ맥박ㆍ영양상태 등 온갖 정보가 병원에 전송되고 의사가 미리 문제를 찾아내 주의사항을 알려준다. 건강검진이나 특수 정밀촬영 등도 원격으로 가능해진다. 이처럼 원격의료는 대표적 미래산업으로 주목을 받지만 의료계의 반대에 부딪쳐 좀처럼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2002년 의료법 개정으로 의료인 간 부분적인 원격진료가 허용된 후 10년이 넘도록 의사와 환자 간의 원격진료에 걸린 빗장은 단단하다. 11일에도 복지부가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개정안 입법을 예고했으나 의료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잠정 연기했다.

의료계는 ▦의료비 급증 ▦지역 동네병원의 경쟁력 약화 ▦원격진료의 전통적 대면진료 대체불가 등을 내세워 원격의료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도입 초기 의료비는 늘어날 수 있지만 기술발전에 따라 점차 비용은 감소하는 만큼 도입 자체를 거부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복지부가 이달 안에 내놓을 예정인 의료법 개정안은 1차 의료기관의 경쟁력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실제 시행 대상도 동네병원 중심이다. 운용의 묘에 따라 충분히 동네병원의 경쟁력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고혈압ㆍ당뇨병 등 만성질환자의 재진처럼 원격진료에 적합한 진료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도 도입 필요성을 뒷받침한다. 김창배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원격의료를 비롯한 U헬스 분야는 전세계적으로 미래 성장동력으로 꼽는 핵심 산업"이라며 "이해관계자들의 우려로 이 분야에 대한 발걸음조차 못 떼다가는 주도권을 잃고 뒤처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송대웅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