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형편 어려워 대출 받는데… 보증 없으면 연수도 못갈 판"

■ '든든학자금' 대학생에 연대보증 요구<br>연체율 낮은데도 5600명 신불자 처리하기도<br>재단선 "정부 재원으로 운영… 엄격 적용 불가피"

정부가 친서민 대책이라며 내세웠던 학자금 대출이 정부의 '보증 놀이'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 중구 한국장학재단에서 관련 직원들이 전화로 대출신청관련 상담을 하고 있는 모습. /서울경제 DB


대학생 K씨(23)는 1년 전 해외 경험과 영어공부를 위해 워킹홀리데이를 결심했다. 한창 꿈에 부풀어 출국 준비를 하던 K씨의 발목을 잡은 것은 학자금대출이었다. 한국장학재단에서 취업 후 상환조건(든든학자금)으로 학자금을 대출 받았던 K씨는 재단 측으로부터 '해외에 체류했다 귀국하지 않을 소지가 있기 때문에 연대보증인이 필요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당황한 K씨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학교 동기를 연대보증인으로 세웠지만 찜찜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이에 그는 최근 귀국을 하자마자 재단에 쫓아가 연대보증 입보를 해지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연대보증 입보 해지에 대한 규정이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K씨는 "연대보증이 얼마나 무서운 제도인지 차후에 알았다"며 "연대보증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학생들에게 정부가 이를 요구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난 2009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인 '든든학자금'이 일부 학생에게 연대보증 입보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서울경제 취재 결과 확인됐다. 친서민 정책을 표방한 정부의 학자금 대출 제도의 의미가 퇴색한 셈이다. 시중 은행권은 공익적 성격 강화를 위해 이미 2008년 개인에 대한 연대보증을 폐지하고 이달부터는 기업 간 보증도 없앴으면서 정작 힘없고 돈 없는 대학생에게는 보증의 족쇄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신용보증기금과 기술신용보증기금 등 보증공기업이 여전히 개인 보증의 사슬로 옥죄고 있는 것보다 질적으로 더 좋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증 설 여력 없으면 해외 연수도 가지 말라니…=정부 당국에 따르면 한국장학재단의 학자금대출 이용 대학생 중 연대보증 입보 건수는 198건. 재단 측은 2009년 재단 설립시부터 해외 유학(6개월 이상) 및 해외 이주 학생에 대해 연대입보 요구를 규정화하고 있다. 든든학자금 대출을 받은 학생 중 해외 출국 계획이 있는 학생은 출국 3개월(해외 이주의 경우)이나 출국 40일(해외 유학) 전까지 재단 측에 신고를 해야 한다. 신고 후 연대보증인이나 담보를 세워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출국 전 대출금을 전액 상환해야 하는 조건이다. 신고를 하지 않고 해외 유학 및 이주를 가거나 단순 여행 목적으로 출국했다 하더라도 1년 이상 입국하지 않을 경우 원리금 전액을 일시 상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재단 측도 할 말은 있다. 재단 관계자는 "뉴질랜드나 해외 선진국에서 정부가 운영하는 학자금 대출의 문제점을 분석해 해당 제도를 도입했다"며 "정부 재원으로 운영되는 만큼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학생들의 시각은 다르다. 든든학자금을 이용하고 있는 한 학생은 "학자금 대출을 이용하는 학생들 대부분이 가정형편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연대보증인이나 담보를 설정할 만한 여력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는 반론이다. 보증설 능력이 없으면 해외 연수도 가지 말라는 얘기다. 더욱이 대학생들 사이에서 스펙(SPEC)을 쌓기 위해 해외 연수나 단기 유학이 선택이 아닌 '필수'로 여겨지는 상황과도 동떨어진다. ◇학자금 대출자 연체율 낮은데도 무더기 신용불량자 신세=재단 측은 재단 설립 직후인 2009년 2학기부터 현재까지 일반학자금대출(재학 중 이자 및 원금상환 제도)의 이자나 원금을 6개월 이상 연체한 대학생 5,600명을 신용불량자로 등록했다. 재단 설립 이전에 정부 보증으로 시중은행에서 학자금대출을 지원해주던 당시에는 연체 학생의 신용불량자 등록을 유예해주는 제도가 있었다. 비난 여론이 일자 재단은 관련 규정을 고쳐 오는 12월부터 신용불량자 등록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뒤늦게 나섰다. 재단 측은 "학자금 대출의 경우 소득수준이 낮은 학생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연체 등의 위험이 높고 정부 재원으로 운영되는 만큼 엄격한 제도 운영이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상은 재단의 설명과 다르다. 3월 말 기준 학자금 대출의 연체율은 2.98%로 시중은행의 연체율인 2.17%를 약간 웃도는 수준으로 조사됐다. 주로 저신용자들이 이용하는 저축은행 연체율인 11.79%보다는 훨씬 양호한 수준이다. 한국 YMCA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학자금대출제도를 직접 운영하겠다고 나섰을 때는 공적인 영역에서 등록금과 관련된 학생들의 고통을 덜어주겠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면서도 "정작 현행 학자금 대출 제도가 대학생을 대상으로 리스크 헤지에만 열을 올리며 시중 금융권보다 더 야속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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