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이 북핵에 대한 고삐를 더욱 죄면서도 조건부 대북 식량지원 재개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당근과 채찍의 대북 양면전략을 강화하면서 교착상태에 빠진 북핵 문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을지 주목된다.
한미 양국은 2일 북한 우라늄농축 프로그램(UEP)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성명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는 국제사회를 통한 북핵 압박의 강도를 높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대북정책 목표를 북한의 정권교체에 두고 있지 않다고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대북 식량지원 재개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도 이날 키리졸브 및 독수리 훈련과 관련해 연일 '핵 참화'로 위협하던 태도에서 한발 물러나 대화의 여지를 남겼다.
한미의 북핵 투트랙 전략이 속도를 내고 있는데다 북한이 대남 강경론 속에서도 다시 대화 의지를 피력하는 만큼 최근의 움직임은 미묘한 상황 변화를 점칠 수 있는 대목이다.
◇'채찍과 당근' 동시에 든 韓美=한미 원자력협정 개정과 대북제재 등을 논의하기 위해 방한 중인 로버트 아인혼 미 국무부 대북제재 조정관은 이날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의 면담 뒤 "북한 UEP가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고 9ㆍ19공동성명을 위반했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안보리 의장성명을 공동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인혼 조정관이 언급한 의장성명은 형식상으로는 법적 구속력을 갖는 '결의안'보다 낮은 안보리 대응조치지만 내용상으로는 안보리 이사국들이 사전 문안협의를 거쳐 형성되는 '컨센서스'를 기반으로 해 국제사회의 단합된 규탄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외교가에서는 한미의 이 같은 입장을 북핵에 대한 채찍으로 해석하고 있다. UEP에 대해 미 행정부가 견지하는 입장이 강경한 만큼 한국과 공조해 한동안 가라앉아 있던 북핵 이슈를 다자 차원에서 다시 논의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당연히 대북제재 강화와 연결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미국은 북한에 '당근'도 내밀었다. 스티븐 보즈워스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1일(현지시간) 미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조건부이기는 하나 대북 식량지원 관련 언급을 한 것. 보즈워스 대표의 발언은 기본적으로 오바마 정부의 기존 입장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발언의 전반적인 뉘앙스는 '지원'에 무게가 실린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보즈워스 대표는 "우리가 (식량 분배를) 신중히 모니터링할 수 있을 때 식량을 지원하고 그것이 아이들과 필요한 시설에 간다는 것을 우리가 안다면 그것(식량지원)은 해야 할 옳은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현재 북한 내부사정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고 있다며 앞으로 지원되는 식량의 투명성 감시를 위한 모니터링 문제와 관련해 북한과의 대화도 추진할 방침임을 밝혔다.
특히 보즈워스 대표는 "우리는 지난 수년간 북한 정권의 변화를 정책의 결과물로 고려하지 않고 있음을 강조해왔다. 다만 북한 정권의 행동변화가 근본적인 관계개선을 위해 필요하다고 본다"면서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 목표가 '정권교체'가 아니라 관계개선을 위한 '북한 지도부의 행동변화'라고 밝혔다고 해외 언론들이 이날 보도했다.
이는 북미 양측이 식량지원 재개 문제를 고리로 대화에 나서면서 큰 틀의 분위기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물론 청문회에 함께 참석한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았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아울러 군사적 긴장도를 한층 끌어올릴 수 있는 한반도 전술핵 배치에 대해서는 한국과 미국 정부 모두 입을 모아 강력히 부인했다.
◇北, 위협 일색에서 '대화' 여지 남겨=북한의 태도에도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북한 매체들은 1일에 이어 이날도 키리졸브 및 독수리 한미 합동군사연습의 중단을 촉구했지만 대화의 여지를 남겼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위험천만한 북침 핵시험 전쟁'이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범죄적인 전쟁소동을 당장 중지해야 한다"며 "지금으로 말하면 대화 쌍방이 군사적 행동을 자중하고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며 상호 신뢰를 도모하기 위해 힘써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물론 최근 북한의 잇따른 도발적 태도로 비춰볼 때 미국이 이른 시간 내에 대북 식량지원을 발표할 가능성은 작다. 그렇더라도 한국 정부와의 합의를 바탕으로 인도적 성격의 대북 지원 재개 방침이 확정되면 이를 위한 대화나 접촉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 최근 한미와 북한의 움직임은 주목된다. 무엇보다 보즈워스 대표가 "북한의 정권교체는 미국의 정책목표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힌 것은 김정은 권력세습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북한에 의미 있는 정치적 메시지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