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시장경제의 전제조건/이규억 산업연구원장(시론)

작금 부실대기업들의 처리를 둘러싸고 정부와 시장의 역할분담에 대한 논의가 비등하고 있다. 원론적 수준에서는 이론의 여지가 별로 없으나 최근의 경험에서 본 바와 같이 구체적인 사안에 부딪치면 사정은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정부가 개입하여야 할 시장실패의 범위와 개입의 정도 등에 관한 확연한 논리가 없거나 이해당사자들의 입장이 첨예하게 상충되어 정책방향에 대한 광범한 합의를 도출하기가 쉽지 않다.차제에 우리는 자유자본주의적 시장기구의 기능과 한계 등에 대하여 제대로 이해를 하여야 한다. 이것은 이미 정부주도에서 민간자율로 옮겨가고 있는 우리 경제의 패러다임 변화를 계속하여 올바른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하여서도 매우 긴요한 일이다. 우선 확인하여야 할 것은 시장기구는 인간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행위중 일부에만 관련되며 더욱이 만능이 아니라는 점이다. 게리 베커류의 시카고학파에서는 인간의 애정과 자살까지도 모두 상품화하여 경제적 시각에서의 분석을 시도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인간사회는 경제적 동기와 경제외적 동기가 어우러져 움직인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또한 일견 경제적 행위라도 그것을 인식하고 평가할 때는 경제외적인 요소도 고려하게 마련이다. 예컨대 도산이나 해고의 경우, 그것을 시장기구의 불가피한 작용이라고만 하기에는 사회적인 정서에 어딘가 맞지 않는 구석이 있다. 결국 각 사회마다 그 구성원들이 평균적으로 갖고 있는 시장적 속성과 비시장적 속성의 오묘한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게 된다. 이론적으로야 시장과 비시장을 구분하여 각각의 논리로 접근할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이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우열승패의 시장원리에 덜 익숙해 온 사회에서는 단기간에 구미식의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체제를 확립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회성원들이 시장경제적 사고와 행동양식을 체득하면서 진화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사회에서 민주적 과정을 중시하면서 성공적으로 정책을 운용하려면 조급한 이상주의보다는 끈기있는 개량주의가 더욱 효과적인 한편 대중의 따뜻한 감성은 존중하되 냉철한 이성과 잘 조화해 나가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 점에서 정책기조의 논리적 타당성과 일관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여 모든 경제주체들이 합리적 기대속에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긴요하다. 또한 시장기구가 바람직한 성과를 거두기 위하여는 시장주체들이 경쟁적으로 행동하여야 함은 물론 시장이 충분하고 완전하여야 한다. 미숙한 경제에서는 재화가 매매될 수 있는 시장이 충분히 형성되어 있지 않거나 그러한 시장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시장외적 요인, 예컨대 정치적 압력이 영향력을 미칠 수있다. 이 경우에 기업이 시장의 허점을 보완하거나 혹은 시장외적 힘을 동원하려면 단순한 경영능력 이외의 수완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재벌을 탄생시킨 주요한 원인중 하나인 것이다. 이러한 시장결합은 흔히 교과서에서 말하는 자연독점이나 외부효과 등에 따른 시장실패와는 다른 것으로서 우리나라에서도 향후 시장경제제도의 미미한 부분을 완성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유공정경쟁이 시장경제의 가장 본질적인 요건이라는 점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다만 실제로 정부나 기업, 그리고 일반 소비자들이 이를 실행하는데는 많은 심리적 불안을 갖고 있다. 경쟁은 각 경제주체의 독립적 자신감과 책임감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나 집단에 의존하는 성향이 강한 사회일수록 경쟁하려는 의지가 사회전반에 확산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것 역시 철저한 사익추구의 이기심에만 의존하여서는 안된다. 애덤 스미스 이래의 지혜이지만 경쟁적 시장기구가 바람직한 기능을 발휘하려면 최소한의 애타심도 필요한 것이다. 결국 경쟁메커니즘, 경제제도와 규범, 경제윤리가 주어진 경제사회의 특성위에서 발전적으로 조화를 이루어야만 시장경제 체제는 완결된다고 하겠다. 우리나라의 정부, 기업, 일반국민 모두 이에 대한 심원한 사고의 바탕위에서 선진국에 걸맞는 경제질서를 정착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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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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