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외압의 실체를 밝혀라(사설)

한보철강 부도의 핵심의혹은 5조7천억원의 부실대출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외압이 있었느냐 하는 점이다. 이 외압의 실체를 밝히는 것은 금융계의 오랜 고질인 관치금융, 정치금융의 고리를 끊는 첫걸음이 된다는데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그런데 한보사건의 핵심적인 위치에 있는 인사들이 27일 약속이나 한듯 일제히 입을 열었다. 한보그룹의 정태수 총회장과 한승수 경제부총리, 이석채 청와대경제수석, 이수휴 은행감독원장 등이 그들이다. 이들의 발언은 대출과정에 외압은 없었고, 한보는 국가기간산업으로 부도를 내서는 안될 기업이었으며, 현재도 담보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도대체 한보의 부도가 왜 발생했는지 헷갈린다. 먼저 정총회장은 한보철강의 담보가치가 충분해 빚을 갚고도 남는다면서 재산권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도가 난 것은 산업은행이 약속한 시설자금 3천억원을 대주지 않은 것과 한보철강을 차지하려는 세력의 음해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정경유착설에 대해서는 『천만의 말씀』이라고 한마디로 일축했다. 이 사건의 장본인이므로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한부총리는 『지난 25일자로 한보철강의 후취담보를 조사해본 결과 대출액보다 1천3백여억원이나 초과했다』면서 『담보가 남는다고 할 때 외압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운게 아니냐』고 했다. 그는 『담보가 남는 상태라면 한보에 대한 대출이 정상적인 것이 아니냐』고 반문까지 했다. 이수석은 정부가 의도적으로 부도를 낸 것이 아니라 투금사들이 백지어음을 돌려 은행들이 부도를 낼 수밖에 없었다고 부도의 직접적인 원인을 투금사에 돌렸다. 그는 『개인적으로 압력을 넣은 사람이 있다면 수사결과 나올 것』이라고 여운을 남기면서 정부차원에서 개입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보철강의 인가를 현정부에서 내준 것이 아님을 강조하면서 현정부에서 대출이 집중적으로 이뤄진 부분에 대해서는 철강경기에 대한 은행들의 낙관적인 전망 탓으로 돌렸다. 이 원장은 『은행들에 국가기간 산업에 대한 자금지원이 헛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정도의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고, 제일은행의 신광식행장은 『철강산업이 유망하다는 전망에 따라 외화대출 실적도 올릴 겸해서 금융기관들이 경쟁적으로 대출에 나섰다』고 말했다. 이들 금융정책 핵심 공직자들의 발언이 정씨의 주장을 결과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다. 또한 이 사건에 쏠려 있는 국민적인 의혹이나 은행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외압주장과도 동떨어진 것이다. 이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한보에 대한 대출압력이 정부쪽이 아닌 제3의 세력에 의한 것이거나, 아니면 은행의 자체판단에 의한 것으로 책임도 은행이 져야 한다는 결론이다. 다만 금융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정부의 핵심관료들이 기간산업이므로 도와야 한다거나, 부도가 난 현재에도 담보력에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면 그들의 평시 한보대출에 대한 시각이 어떠했으며 정부에 인사권이 있는 은행관계자들이 어떻게 대응했으리라는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바로 이런 금융메커니즘의 허점이 파헤쳐지고 재발방지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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