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의 숙원사업” 천명 차기정부서 해결 포석/통산부선 “서류제출때 검토” 원칙 되풀이현대그룹이 제철사업을 재추진하겠다는 방침을 공론화하기로 한 것은 당장 제철사업에 뛰어들겠다는 뜻이 아니라 그 의지를 재천명, 제철사업의 불씨를 계속 사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다시말해 현 정권에서 뜻을 관철시키기는 어렵기 때문에 제철사업을 「YS정부의 미결과제」로 남겨놓음으로써 차기정부에서 그룹의 숙원사업을 해결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또 강경식 부총리를 비롯한 현 경제팀이 시장원리를 강조하고 있는 것과도 무관치 않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신규사업은 시장원리에 따라 해당기업이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경제팀의 정서가 현대제철소 추진논리와도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통상산업부는 지난해 11월 공업발전심의회를 통해 현대의 제철사업추진에 제동을 걸었다는 지적을 받았었다. 따라서 현대는 정부가 뚜렷한 명분을 찾지 못하고 상황이 개선되면 그때가서 강도높게 제철프로젝트를 밀어붙인다는 전략이다.
그동안 사회·경제적으로 문제가 됐던 한보철강의 제3자인수문제나 기아사태가 점차 가닥을 잡아가고 있는 점도 현대의 제철사업재추진의사를 표명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한보철강이 포항제철동국제강 컨소시엄에 의해 인수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고 정부당국자들도 『현 정부에서는 기아자동차의 3자 인수를 추진않겠다』고 밝힘에 따라 홀가분하게 「숙원사업」을 추진할 여유가 생겼다는 분석이다.
현대는 올초 부도난 한보철강이 새 주인을 못찾고 표류하고 있는 판에 『새로운 제철소를 건설하겠다』고 나설 명분이 없었고 특히 기아사태 후 「기아 경영권 방어를 위한 십자군」으로 나서면서 일관제철사업 추진을 잠시 보류했다.
현대는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새로운 논리를 개발해 정부의 정책담당자들과 포철측을 설득할 방침이다. 사업주체가 될 인천제철의 관계자는 『경쟁체제도입이 국내유일의 고로업체인 포철에게도 크게 도움이 된다는 논리를 개발해 현대제철소의 당위성을 널리 알리는데 중점을 둘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입장은 종전과 달라진게 없다. 통상산업부 당국자는 『현대가 일관제철사업에 진출할 경우 공급과잉의 우려가 높지만 사업계획을 제출하면 그때가서 검토해보겠다』는 원칙적인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업계는 현대가 제철사업을 공론화한 뒤 대통령선거란 정치일정 부담 때문에 올해에 성사되지 않을 경우 내년초 사업계획서를 정부에 제출하고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한상복 기자>
◎현대 제철사업 추진일지
▲77년 9월=현대, 현대제철주식회사(가칭) 설립안 정부에 제출
▲78년 3월=포철과 현대, 각각 제2제철사업 계획서 정부에 제출
▲78년 10월=정부, 제2제철 실수요자로 포철 확정
▲84년=제2제철 예정부지로 광양 확정
▲94년 7월=현대, 철강공업발전민간협의회에서 제3제철 건설의사 발표
▲95년 5월=박재윤 통산부장관, 포철에 고로 1기(광양 5고로) 신설 요청
▲95년 9월=현대, 철강공업발전 민간협의회에서 제철사업 참여 발표
▲96년 1월=정몽구 현대그룹회장 취임사에서 제철사업 진출 시사
▲96년 10월=포철, 광양 5고로 착공
▲96년 11월=통산부 현대제철 불허방침 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