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이 만난 사람] 최규복 유한킴벌리 대표이사

실버산업 육성은 성장·고령화·복지 해결 일석삼조 효과

고령화시대 '액티브 시니어'가 새 먹거리… 2020년 산업규모 124조

사회문제 기여하며 새로운 성장기회 창출하는 CSV사례 기대

폐기저귀 재활용 사업 통해 자원낭비·환경 훼손 예방 나설 것



"시니어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올해로 31년째 유한킴벌리에 다니고 있어요. 은퇴하면 그간 쌓아온 엄청난 경험과 노하우가 사장되는 거지요. 너무 아깝지 않나요. 이제 1년에 100만명씩 은퇴자가 나옵니다. 저 같은 시니어들은 큰 인력자원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시니어가 은퇴했다고 뒷방에만 가둬두지 말고 활발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액티브 시니어'로 거듭날 수 있도록 우리 사회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유한킴벌리 본사에서 만난 최규복(사진) 유한킴벌리 대표는 한국 나이 59세다. 기업마다 은퇴나이는 다르지만 이 정도면 현직에서 물러나고 남을 나이다. 예순을 앞뒀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에너지가 넘쳤고 끊임없는 아이디어로 30대 청년 못잖은 건재함을 과시했다. 2010년 시니어 비즈니스 비전을 세우면서 2012년 11월 액티브 시니어라는 용어와 함께 관련 비즈니스를 유한킴벌리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채택한 것도 그다. 유아용품 부문이 전체 매출의 35%를 차지하는 와중에 '저출산 고령화'라는 위기에서 기회를 찾았다. 지금처럼 모든 산업 부문이 성숙한 시장에서 미래 먹거리는 '시니어'라는 점에 주안점을 둔 것이다.

시니어는 경제활동이 불가능한 저소득층 고령자와 최 대표처럼 경제활동으로 소비가 가능한 장년층으로 나눌 수 있는데 유한킴벌리는 후자에 주목했다. 시니어 사업의 성장을 위해서는 시니어를 역동적인(active) 삶과 행복을 추구하면서 생산자이자 소비의 주체인 액티브 시니어로 만들어 주는 한편 사회의 인식전환이 수반돼야 한다는 데서 뜻을 모았다. 소외계층인 시니어에게 시선을 돌려 기업성장의 기회를 찾으면서 동시에 고령화 문제해결에 기여하는 1석2조의 비즈니스 형태가 바로 최근 기업들 사이에 화두가 된 '공유가치경영(Creating Shared Value·CSV)'이라는 게 최 대표의 설명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제 기업 대다수의 성장은 멈춰 있습니다. 그러나 시장이 성숙했다는 기준도 이익을 만들어낼 수 있는 소비층으로만 국한했기 때문이죠. 소득이 없다고 포기한 계층, 지역 등 취약 부분을 비즈니스 타깃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겁니다.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 시니어가 됩니다. 결국 시니어 비즈니스 산업 육성은 우리 미래를 위한 투자인 셈이죠."

최 대표는 CSV의 구체적인 예로 △빈곤과 식량 문제를 해결하면서 식품이나 유통 사업 같은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는 일 △지역 환경 문제를 해결하면서 신재생에너지나 기존 산업을 대체하는 청정산업의 기회를 만들어내는 일 △고령화 문제 해결에 기여하면서 기존에 없던 새로운 시니어 사업 기회를 모색하는 일 등을 들었다.

이 가운데서도 최 대표가 주목한 시니어 산업은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2012년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시니어 생활용품 시장 규모는 2010년 1조9,600억원에서 2020년 2조8,700억원, 시니어 연관 산업 규모는 같은 기간 33조2,000억원에서 124조9,000억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체 산업에서 시니어 산업 비중이 현재 5%에 불과하지만 2020년에는 10%대를 넘어설 것이라는 예측이다.

실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별 인구통계 및 노동력 조사자료를 보면 2000년 총인구 대비 55세 비중이 15.3%였던 한국은 2050년 48.3%로 절반에 육박한다. 더욱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추세로 젊은 층의 부양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통계청은 노년부양비가 2010년 15.2명에서 베이비붐 세대의 고령인구 진입 및 기대수명 증가로 2030년 38.6명, 2060년 80.6명 수준으로 급증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곧 정부의 복지와 부양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 노인 부양부담 증가와 사회보장지출 확대에 따른 국가 재정부담이 가중되며 2043년부터 국민연금은 재정적자 돌입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후세대 부양 부담이 급증함에 따라 세대 간 갈등심화 가능성도 커질 게 뻔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시니어 비즈니스 산업 육성에 한국의 미래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 대표는 "55~79세 고령층의 59%, 특히 72.5%에 달하는 남성이 취업을 열망(2012년 통계청 조사)했는데 생계비 마련(50.5%)과 더불어 일하는 즐거움(40.3%)이 대표적 이유로 꼽혔다"며 "양질의 실버 일자리 제공은 사회 문제도 해결하며 경제 성장잠재력도 높이고 정부의 복지비용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유한킴벌리는 사내 시니어기금운영위원회를 구성해 시니어 관련 소기업을 발굴, 육성하고 있다. 아이디어는 있지만 자금·마케팅·이노베이션 능력이 부족한 기업들이 대상이다. '함께일하는재단' 주관으로 공모한다. 유한킴벌리는 중소업체가 제품을 만들 때 시니어 채용을 전제조건으로 내세워 시니어 채용을 독려하고 있다. 이로써 '시니어의, 시니어에 의한, 시니어를 위한' 제품을 탄생시키고 있다. 지난해 '폴랑폴랑(치유동물을 통한 시니어 치유)' '제타랩(시니어 인생 재설계 아카데미)' '오지오(시니어 초경량 기능성 신발 개발)' '리움(RFID 기술 기반 분실방지 시계 개발)' '이플루비(시니어 패션 돋보기)' '해피인터내셔널(시니어 기능성 언더웨어)' 등 12개 기업이 선정됐고 27건의 시니어 아이템이 개발됐다. 올해 역시 22개 기업을 육성해 47건의 아이템 및 서비스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울러 유한킴벌리가 아웃소싱한 효성아이티엑스 콜센터에서도 시니어 제품 상담을 시니어 8명이 맡고 있다.

2012년 10월 리뉴얼한 '디펜드 스타일 팬티(요실금 팬티)'는 CSV 활동의 대표 상품. 나이가 들면서 자연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인 요실금에 특별한 대안이 없던 현실에서 팬티 대신 입을 수 있도록 고안된 이 제품은 속옷을 입은 듯 겉으로 표시가 나지 않고 활동성이 뛰어나다. 얼마 전에는 품질개선을 위해 요실금 제품 기기에 200억원을 투자했다.

유한킴벌리는 이런 시니어 제품을 맘 편하게 살 수 있는 공간도 만들었다. 2012년 10월부터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생활용품 판매점인 '골든프렌즈'를 종로와 안산에 있는 실버영화관 2곳에서 시범 운영하고 있다. 실버영화관 운영도 지원하고 있는데 연간 20만명 이상이 이용한다. 이로써 유한킴벌리는 올해 신규 선정된 시니어 제품 개발 소기업과 골든프렌즈를 비롯해 오는 10월 문을 여는 시니어 제품 복합몰 '10년 젊은 가게(가칭)' 등을 통해 최대 180명가량의 실버 일자리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


고작 180명의 시니어가 일을 한다고 해서 세상이 변할까. 최 대표는 유한킴벌리라는 작은 나비의 날갯짓으로 한국 사회가 시니어에 대한 인식변화를 촉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사회공헌활동(CSR) 캠페인을 통해 나무를 심었고 국민, 정부, 많은 기업들이 숲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같은 의미에서 CSV가 확산되고 시니어에게 국민과 정부가 관심을 갖기를 바라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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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대표는 요즘 1980년대 유아 기저귀 하기스 마케팅본부장 당시 고생했던 시절을 자주 떠올리며 마음을 다스린다. 천 기저귀가 보편화돼 일회용 기저귀에 대해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던 그때도 지금처럼 힘들었다. "너무 힘든 나머지 회사를 몇 차례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그는 "그러나 순식간에 일회용 기저귀 시장은 급성장했으므로 시니어 산업도 그렇게 되지 않겠냐"며 웃었다.

환경 문제도 놓치지 않고 있다. 폐기저귀 재활용 사업은 또 다른 CSV 아이템이다. 쓰레기 매립장소가 부족하고 매립지에서 나오는 악취와 침출수 같은 심각한 환경 문제가 발생하는 현실에서 폐기저귀 재활용은 자원낭비와 환경 문제 해결, 개발비용 감소 등 여러 가지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폐기저귀 재처리 기술은 확보했지만 역시 소비자 인식변화가 관건이라라는 지적이다. 통일에 대비해 황폐한 북한에 숲을 조성하는 작업도 구상하고 있다. 이미 올해로 27년째 '여고생 대상 숲 체험 여름학교'를 통해 4,000여명의 환경친화적 감성을 지닌 여성 환경 리더를 배출하는 캠페인을 이어온 대한민국 환경경영의 롤모델 유한킴벌리답다. 최 대표는 숲을 가꾸는 데서 나아가 도시인들이 숲과 가까이 지낼 수 있도록 도시 숲을 확대하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1사 1CSV를 하면 사회가 얼마나 건강해질까요. 기업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CSV에 대해 학계에서도 사례를 많이 연구해 알리고 정부도 세제혜택을 제공함으로써 CSV가 모두 함께 잘사는 사회로 가는 태풍의 핵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 중심에 지속 가능한 기업 유한킴벌리가 존재하는 것이 저의 최고 목표이며 꿈입니다."

He is…

△1956년 서울 △1975년 한성고 △1983년 숭실대 경영학과 졸업, 유한킴벌리 입사 △2000년 유한킴벌리 유아용품사업개발담당 상무 △2002년 연세대 경영대학원 졸업(마케팅·국제경영학) △2003년 유한킴벌리 유아용품 사업 및 신규 사업 전무, 킴벌리클라크 북아시아유아용품 사업본부장(겸임) △2007년 유한킴벌리 유아·아동용품 사업 총괄부사장 △2010년∼ 유한킴벌리 대표이사 사장



스마트워크·수평적 기업문화로 꾸준한 성장

■ 유한킴벌리는
개인 자리·칸막이 없애고 집 가까운 사무실서 업무


유한킴벌리 직원들에게는 개인별 자리 개념이 없다. 팀별로 층만 구분돼 있을 뿐 칸막이 없는 탁 트인 사무공간에서 원하는 곳에 그때그때 앉으면 된다. 30여명에 이르는 임원조차 별도 공간이 없기는 마찬가지. 어떤 때는 내 옆 사람이 인사팀장일 수도, 대외협력본부장일 수도 있다. 지난 2011년 시작한 '오픈 좌석 시스템'은 어느덧 유한킴벌리의 성장 촉매제로 자리 잡았다. 칸막이 사무공간에서보다 임직원 간에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이 빈번해졌고 이는 곧 기업 성장을 견인하는 창의적·획기적 사고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꼭 본사가 자리한 서울 대치동을 찾지 않아도 자신의 집이 경기도 죽전·군포에 각각 마련한 '스마트워크센터'와 가깝다면 그곳에서 업무를 봐도 된다. 자녀 돌보기 등으로 신경 쓸 게 많은 직원들에게는 제약 없이 자유롭게 근무할 수 있는 더없이 유연한 시스템이다.

'조직원이 행복한 회사'가 지속 가능 경영의 첫 단추임을 강조하는 유한킴벌리는 가족친화경영의 선두주자로 손꼽힌다. 대표적 가족친화경영의 시작은 고민 없는 편안한 출산과 육아다. 최규복 대표는 "회사 내 출산율이 1.8명으로 국가통계(지난해 기준 한국 출산율 1.19명)보다 훨씬 높다"며 "임산부의 애로사항을 듣고 업무조정을 논의하는 임산부간담회 개최, 임산부 지정좌석제 운영, 91%를 넘는 여성 육아휴직 사용 등 기본적으로 출산·육아에 대한 큰 어려움 없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족친화경영이 비단 여성만을 위한 정책으로 국한되지는 않는다. 유한킴벌리는 국내 최초로 가족관계와 문화를 진단하는 '패밀리인게이지먼트 조사'를 실시해 세대별 문제를 진단하고 아버지를 대상으로 한 '아버지칭찬학교'를 2012년부터 연 2회 개최해왔다. 이 밖에도 '생명사랑신혼부부학교'를 운영하고 올해는 은퇴자를 위해 '이모작학교'를 구상하는 등 다양한 가족친화 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최 대표는 "단순히 돈을 버는 이익집단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에 필요한 변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자는 경영방침을 바탕으로 일과 삶의 균형을 잘 잡을 수 있는 회사 메커니즘을 구축하는 데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사진=권욱기자

대담=홍준석 생활산업부장 jsho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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