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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교수, 딸 휴대폰 봤다가 '기겁'
명문대 교수가 초등학생 폭행한 이유 알고보니 ■ 언어폭력 이제 그만… 학생·교사와 함께하는 욕설 뿌리뽑기뻑이가요 "No" 반했어요 "Yes" 속뜻 가르치자 고운말 술술
박윤선기자 sepys@sed.co.kr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상관 없음
경일관광경영고등학교 언어 순화 동아리 '함초롬히' 부원들이 욕설 사용 설문조사 결과를 들어 보이고 있다. 조사에서 대부분의 학생은 욕설을 사용한다고 답했다. /사진제공=경일관광경영고
뜻도 모른채 습관적 사용… 학생 절반 언어폭력 피해
욕설 순화 사전·시 암송 등 학교마다 개선 활동 활발
"가정에서도 관심을" 지적
75초에 한 번꼴로 욕을 한다는 '요즘 학생'들이 작지만 의미 있는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무너진 학생 언어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학생 스스로 팔을 걷어붙여 바른말 쓰기 캠페인을 벌이고 대중가요 가사를 고운 말로 순화해 부르는 등 자정 노력이 잇따르고 있다.
2년 전 이 같은 새 바람에 본격적으로 불을 붙인 것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다. 교총은 언어교육 동영상을 제작해 보급하고 원격 직무연수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2011년부터 학생 언어 문화 개선사업을 추진해왔다. 지난달 27일에는 '학생 언어 문화 개선 우수 선도학교 및 학생동아리 시상식'을 열고 1년간 운영된 학생 언어 문화 개선 100개 선도학교와 100개 학생동아리 중 탁월한 성과를 거둔 9개 학교와 9개 동아리에 상을 수여했다. 각 학교에서는 학생과 교사들이 주체가 돼 욕설 실태 조사에서부터 언어 순화 프로젝트 수업, 바른말 쓰기 캠페인 등 다양하고 참신한 방법으로 새로운 언어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가장 흔하지만 심각한 괴롭힘 '언어폭력'=언어폭력의 경우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 폭력이라는 인식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때로는 신체폭력보다도 더한 정신적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지난달 29일에는 한 명문대 교수가 초등학생인 딸에게 욕설 문자메시지를 보낸 남학생을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50대 성인이 초등학생을 폭행했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지만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초등학생이 보낸 문자의 내용이었다. 문자를 보낸 김모군은 '또 씹었어 XX년' '너 죽여 버릴 수 있어요 자꾸 씹으면…' 등 과격한 표현의 메시지를 계속해서 보냈다. 피해 여학생은 급성스트레스 반응 진단을 받고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에는 모바일 메신저에서 집단 언어폭력을 당하다 16세 고등학생이 자살로 내몰린 사례도 있다. 조사 결과 피해 학생은 메신저 그룹 채팅에서 10여명의 학생들로부터 한 시간 동안 집단으로 욕설 메시지를 받았다.
언어폭력이 파괴적인 이유는 무엇보다 '흔하다'는 점이다. 지난해 3월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 학교폭력을 당했다고 답한 학생의 절반 이상인 51.2%가 언어폭력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학생은 교사를 상대로도 폭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교과부에 따르면 2011년 신고된 교권 침해 사례 4,801건 중 교사에 대한 폭언ㆍ욕설이 60.2%에 달하는 2,889건으로 가장 많았다.
◇욕 하는 이유? "습관이라서"=과연 학생들은 욕설의 뜻을 알면서도 자주 사용하는 걸까. 이번에 학생 언어 문화 개선 우수 학교로 선정된 충청남도 천안시 충남예술고등학교에서는 150명의 학생에게 설문한 결과 욕의 뜻을 모르고 사용하는 학생이 80명으로 절반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잘 안다고 답한 학생은 15명에 불과했다. 욕을 사용하는 이유로는 '평소 말투라서 습관적으로 사용한다'는 학생이 67명으로 가장 많았고 '기분이 나빠서 사용한다'는 학생이 56명으로 뒤를 이었다.
학생들은 욕을 사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욕설을 줄이고 싶어 했다. 학생 언어 문화 개선 우수 동아리로 선정된 경기도 안산시 경일관광경영고등학교의 '함초롬히'가 학생 4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한 거의 대부분의 학생이 욕설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86%의 학생이 이 같은 습관을 고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함초롬히를 지도하는 이동민 교사는 "학생들은 욕을 하면서도 잘못됐다는 것을 아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욕이 얼마나 문제인지를 인식하게 해주고 바른말을 자주 쓰는 환경을 조성해주면 얼마든지 언어 문화를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바른 언어 문화 정착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욕설의 심각성을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함초롬히 학생들은 갈구다ㆍ가오ㆍ발랑까지다 등 학생들이 교실에서 흔히 사용하는 말의 뜻을 조사해 사전을 제작했다. 욕설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위해 '양파'까지 길렀다. 두 개의 양파를 준비하고 한 쪽 양파에는 '칭찬 양파', 다른 한 쪽에는 '욕설 양파'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 쪽에는 지속적인 칭찬을, 한 쪽에는 부정적인 말을 한 결과 칭찬 양파는 파릇파릇 자라났지만 욕설 양파는 비교적 키가 작고 잎도 듬성듬성했다. 욕설의 심각성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뻑이가요' 대신 '반했어요'=노래 가사 속에, 코미디 프로그램 속에 일상으로 자리 잡은 욕설을 이제는 학생들이 바꿔나가고 있다. 또 다른 언어 문화 개선 우수 동아리인 서울시 동대문구 경희여자중학교 '너나들이'는 학생들이 가장 자주 접하는 대중가요에서 변화를 일으켰다. 인기 아이돌 그룹 빅뱅의 지디(GD)와 탑(TOP)이 부른 '뻑이가요'라는 곡을 '반했어요'로 바꿔 불렀다. 너나들이를 지도하는 강용철 교사는 "아무렇지 않게 부르는 노래 중에 자극적인 단어가 있다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한 것에 큰 의미가 있다"며 "특히 이런 아이디어 하나하나가 모두 학생들의 머릿속에서 나왔다는 사실도 희망적"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욕을 하는 학생이 있으면 벌점이나 꾸지람 대신 시를 외우게 했다. 복도ㆍ식당ㆍ매점 등에서 욕을 하는 학생을 발견하면 지도교사가 직접 해당 학생에게 시를 나누어주고 암송을 하게 하는 식이다. 단순한 방법이지만 결과는 효과적이었다. 교사는 학생에게 짜증보다는 애정과 관심을 느끼게 됐고 학생들 역시 시 암송을 벌로 생각하기보다는 왜 선생님이 자신에게 시 암송을 시켰는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강씨는 "욕을 자주 하는 학생은 사실은 표현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며 "그런 학생들에게는 단순한 시 암송이 굉장한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학교 현장에서 언어 순화 운동을 펼치고 있는 교사들은 언어폭력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학교의 모든 구성원들과 가정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강씨는 "한두 사람의 교사가 하기에는 정말 힘든 일"이라며 "학교에서 의지를 가지고 언어 순화를 지원해야 하며 학생의 정서적인 면도 관련이 있는 만큼 가정에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