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가 일명 '슈퍼 마리오'로 통하는 마리오 드라기(사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를 다시 한번 주시하고 있다.
그리스가 연립정부 구성에 성공해 일단 최악의 사태는 막았지만 시간 벌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은 상황에서 또 다른 위기국인 스페인의 국채금리가 위험 수준인 7%선을 수시로 오르내리자 시장을 빠르게 진정시킬 소방수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ECB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의 '최종 대부자'로 나설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제외한 대다수의 지도자급 인사들은 ECB의 역할확대를 너나 할 것 없이 재촉하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21일(현지시간) 룩셈부르크에서 유로존 재무장관들과 회의를 연 뒤 "유럽에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통화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ECB가 국채매입을 재개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ECB는 지난해 12월과 올 2월 두 차례에 걸쳐 저금리장기대출(LTRO)을 통해 시중에 1조유로를 푼 뒤 12주 연속 국채를 전혀 사들이지 않아 국채시장 혼란을 방관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만일 ECB가 끝내 국채매입에 나서지 않을 경우 유일한 대안은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이나 유럽안정화기구(ESM) 등 유럽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구제금융기금으로 위기국 국채를 매입해 금리를 끌어내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전체 회원국의 의견을 모아야 해 절차가 복잡하고 실탄도 부족해 큰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FSF가 소총이라면 ECB 개입은 '바주카포'라는 얘기다.
스페인 등 유럽과 국제사회의 아우성이 거세지면서 LTRO 시행 이후 극도로 보수적인 태도를 유지해온 ECB도 입장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ECB는 이날 이사회를 열어 역내은행이 ECB에서 돈을 빌릴 때 담보로 잡는 자산유동화증권(ABS)이나 모기지담보증권(MBS)의 신용등급 최소 요건을 기존 A-에서 BBB-로 낮추는 데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 버블 붕괴에 따른 부실대출 증가로 신음하는 역내은행의 자금사정에 숨통을 틔워주겠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스페인과 이탈리아 주요 은행의 위험자산 비율은 45~55%나 돼 유럽 금융시장에서 돈을 빌리기 어려운 처지로 몰리고 있으며 스페인의 경우 금융권이 껴안은 부실자산이 1,527억유로에 달한다. 스페인 중앙은행은 금융권 스트레스테스트(회계감사) 결과 은행 구제금융에 필요한 자금이 최대 620억유로로 나타났으며 조만간 이 결과를 바탕으로 유럽연합(EU)에 정식 구제금융을 신청할 것이라고 이날 발표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ECB가 시장에서 요구하는 화끈한 대책을 내놓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ECB에 강력한 입김을 불어넣고 있는 유럽 최대 경제대국 독일 변수 때문이다. 실제로 ECB가 활발하게 국채를 매입했던 지난해 독일 출신 집행이사인 위르겐 슈타르크는 "ECB가 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다"며 스스로 이사 자리를 내놓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