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대선주자에 듣는다] <4> 박근혜 前 한나라당 대표

■ 창간기획<br>"선거는 당 지도부 중심으로…" 신뢰·원칙 외치며 정중동 행보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지난 1969년 8월 초 전용 열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다 본 경북 청도군 청도읍 신도리의 모습에 감동해 새마을운동을 생각해냈다고 한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27일 당시 현장에 그대로 재현한 대통령 전용 열차 안에서 안내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청도=임세원기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나는 외모는 어머니, 속은 아버지를 닮았다"고 말한다. 그는 아버지에게 '정치수업'을 받았고 이제 아버지가 못다 이룬 꿈을 완성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어떤 국민들은 그가 아버지를 극복할 것인지에 주목한다. 지난 27일 경북 청도군 청도읍 새마을운동 성역화 사업 준공식장에서 박 전 대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을 보고 있다.

임세원 기자

[대선주자에 듣는다] 박근혜 前 한나라당 대표 '서울시장 재보선' 질문에 "나중에 해요…" 자리 떠나 동행 취재: 임세원 기자 why@sed.co.kr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지난 1969년 8월 초 전용 열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다 본 경북 청도군 청도읍 신도리의 모습에 감동해 새마을운동을 생각해냈다고 한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27일 당시 현장에 그대로 재현한 대통령 전용 열차 안에서 안내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청도=임세원기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나는 외모는 어머니, 속은 아버지를 닮았다"고 말한다. 그는 아버지에게 '정치수업'을 받았고 이제 아버지가 못다 이룬 꿈을 완성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어떤 국민들은 그가 아버지를 극복할 것인지에 주목한다. 지난 27일 경북 청도군 청도읍 새마을운동 성역화 사업 준공식장에서 박 전 대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을 보고 있다. 임세원 기자 18대 총선후 선거와는 '거리'… 지원 유세등 직접 안나서 "수첩속에 국민과 약속 기록"… 당직자에 꼼꼼히 질문하기도 중장년층서 '열성팬' 많지만 '젊은 안티' 포용 과제로 지적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새마을운동의 발상지인 경북 청도를 찾은 지난 27일, 기자는 국내 신문ㆍ방송매체 가운데 유일한 취재기자로 박 전 대표와 동행했다. 차기 대선주자 가운데 가장 유력하게 꼽히는 그는 항상 수십 명의 기자와 측근 의원들, 경호원,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나타난다. 이날이 토요일인 탓에 평소보다 적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를 취재할 수 있었다. 이날 그는 아버지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으켰고 자신도 참여했던 ‘새마을운동 성역화 사업 준공식’에 참석했다. 마치 고향을 찾은 듯 환호하는 주민들 속에서 손을 흔들던 던 박 전 대표는 ‘새마을운동에 계속 참여하셨는데 오늘 성역화 사업을 본 소회가 어떠세요’라는 질문에 “인사말에 다 들어 있잖아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가 행사를 마치고 나설 때 기자는 정말 묻고 싶은 질문을 던졌다. “당내에서 이번 서울시장 재보선에 지원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어떤 생각이세요.” 그러자 그는 “나중에 해요…지금은 시간이….(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개회식에 참석하러) 가야 하니까”라며 서둘러 차를 타고 자리를 떴다. 박 전 대표의 말에서 서울시장 선거 지원 여부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는 듯한 속내가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기자와 나눈 짤막한 대화는 대변인 격인 이정현 한나라당 의원을 통해 몇몇 언론에 전달돼 10ㆍ26 재보선 지원 가능성을 닫지 않았다는 식으로 비중 있게 보도됐다. 언론이 그의 두루뭉술한 말 한마디에도 무게를 싣는 것은 박 전 대표가 현재 정치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이면서 가장 접하기 힘든 취재원이라는 데 첫 번째 이유가 있다. 실제로 그는 2008년 3월 지역구인 대구의 지방신문과 한 인터뷰를 끝으로 어떤 언론과도 인터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2008년 이후 한번도 1위를 놓치지 않은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다. 그가 준비해 뱉은 짧은 말 한마디에 정국이 요동친 적도 여러 번이다. 박 전 대표는 늘 세간의 관심거리다. 하지만 언론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는 한나라당 의원이 있을 정도로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한 선망을 품기도 하지만 그의 소극적 행보를 ‘부자(富者) 몸조심’으로 치부하며 반감을 갖는 이도 적지 않다. 4년 동안 박 전 대표를 근접취재하며 기자가 듣고 본 ‘박근혜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선거의 여왕’이 선거판에 없다? 박 전 대표는 17대 대통령선거 이후, 더 정확히는 친박근혜계가 ‘공천 학살’이라고 일컫는 18대 국회의원 총선거 이후 선거 지원에 직접 나서지 않았다. “선거는 당 지도부가 중심이 돼 치르는 것”이라는 게 그가 밝힌 공식 이유다. 지난해 3월29일 기자가 박 전 대표가 고문으로 있는 평창올림픽 유치특위 일정으로 평창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마침 바로 옆에서 4ㆍ27 재보궐 선거 강원 도지사 한나라당 예비후보 합동연설회가 열리고 있었다. 한나라당은 내심 박 전 대표가 방문하기를 바라면서 아예 온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경기장으로 걸어서 3분 정도를 이동하는 동안 함께 따라가던 강원도 출신 한나라당 의원이 “건물 밖으로 지나가며 차창 밖으로 손만 한번 흔들어달라”고 거듭 청을 하자 “제가 다른 일정이 있어 안 된다고 말씀드렸는데…”라며 화난 표정을 지어 끈질기게 요청하던 의원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기자가 보기에도 박 전 대표는 자신의 방문이 강원도지사 선거 개입으로 비칠까 극도로 경계하는 듯했다. 그의 측근 의원들이 많은 영남권 중진의원의 물갈이론이 한나라당을 몰아쳤던 올해 8월9일. 그가 소속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회의실 앞에 기자들이 들끓었다. 그는 평소 말을 길게 하지 않는데다 그날은 그가 다소 회의시각에 늦은 터여서 기자들은 그가 평소처럼 “회의에 늦어서요”하며 들어갈 줄 알았다. 기자가 박 전 대표를 취재한 이후로 꽤 여러 번 박 전 대표는 야속할 만큼 말하지 않고 회의장에 들어가곤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나타난 박 전 대표는 서두르지 않았다. 기자들 틈바구니에서 걸어가며 말하던 그가 돌연 걸음을 멈추고 “어차피 늦은 거 (답변)하고 갈게요”라고 입을 열기 시작했다. 기자가 등 뒤에서 “영남 중진 물갈이론이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묻자 그가 고개를 돌리며 “뭐가요”라고 되물었다. “당내에서 영남 중진의원들이 스스로 물러나셔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는데요”라고 다시 설명하자 그는 “공천이라는 것이 개인적 차원이 아니고 공당에서의 공천은 국민이 납득할 기준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라고 답변했다. 이때다 싶어 마침 황우여 원내대표가 사흘 전 발표한 무상보육에 대해 묻고 싶었다. 그는 정치적 사안보다 경제적 사안에 상대적으로 편하게 답변하는 편이다. 그에게 질문할 때는 최대한 공격적이지 않게 전후 사정을 설명하게 된다.“예전부터 국가 재정건전성을 강조해오셨는데 최근 미국발 경제위기 여파가 국내에 몰아치면서 복지 포퓰리즘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은데요. 황 원내대표가 밝히신 전면적 무상보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박 전 대표의 답변은 짧았다. “아직 당론으로 확정된 것도 아니고 논의하겠죠.” 수첩공주 기자는 그의 젊은 시절이 궁금해 1989년 5월19일 그가 출연한 두 시간짜리 방송 대담 프로그램을 찾아봤다. 그는 자신이 적은 듯한 몇 장의 쪽지를 손에 쥐고 나왔다. 몰아치듯 이어지는 사회자의 질문에 그는 차분하게 답변했지만 몇 번은 손에 쥔 쪽지를 한참 쳐다본 후 말하기도 했다. 기자는 올 5월 말 박 전 대표가 유럽특사로 네덜란드와 그리스ㆍ포르투갈을 방문했을 때 함께 갔고 그가 그리스 동포간담회를 열 때는 유일하게 곁에 있던 기자였다. 동포간담회의 핵심은 재외국민 6~7명이 나와 외국에 살면서 어려운 점을 말하고 한국이 도와주기 바라는 ‘민원’이었다. 박 전 대표가 대선주자이다 보니 그에 대한 질문도 꼭 들어간다. 동포들은 아무래도 일반인인데다 고국에서 온 정치인을 만나다 보니 질문은 한정 없이 길어지거나 두서가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박 전 대표가 평소 잘 대답하지 않는 정치적 사안을 묻기도 한다. 기자가 보니 박 전 대표는 듣기에 거북할 경우 고개를 외면하거나 앞에 놓인 음식을 먹기도 했지만 그러면서도 질문자의 핵심 내용을 적는 모습이었다. 그러더니 답변할 차례가 되자 곧바로 뒷사람부터 빠짐없이 질문의 요지를 읊었다. 물론 대선주자와 관련한 일부 질문은 자연스럽게 제외하기는 했지만 민감한 현안인 재외국민 비례대표 문제를 비롯해 청년 일자리, 교육 등 자신의 관심사에는 상세하게 답변했다. 그를 지켜보면서 기자는 ‘수첩공주’ 습관이 정치인으로서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지금도 손가방 속에 직접 손으로 적은 쪽지를 들고 다닌다. 기자는 그가 소속한 상임위인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를 본 적이 있는데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손가방에서 연필로 자신의 질의내용을 쓴 쪽지를 꺼내 읽으며 준비했다. 세심함과 차가움 한번은 국회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기자들 속에 둘러싸여 있던 박 전 대표가 뒷걸음질을 치다 실수로 한 젊은 기자의 발을 밟았는데 그때 그는 손을 그 기자의 발에 갖다 댈 만치 몸을 굽히며 “다치지 않으셨어요”라며 미안해 했다. 그러자 사과받는 기자가 더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기자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생각이 대단하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반면 그의 작은 표정 변화에도 벽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그는 대화할 때 주로 듣는다.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는 박 전 대표의 습관상 대화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거절에 가깝다. 동남권 신공항 논란이 일었을 때 기자가 정부 입장에서 비판적으로 물었던 적이 있었는데 박 전 대표는 대답할 가치가 없다는 듯 굳게 입을 다문 채 시선을 거뒀었다. 광팬과 안티 박 전 대표는 기자가 본 정치인 중 열성팬이 가장 많은 사람이다. 지난 7월19일 박 전 대표가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의 첨단LED공장 기공식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한 할머니가 귀빈석에 앉아 있던 박 전 대표에게 다가갔다. 경호원은 혼비백산하며 말렸지만 그 할머니는 기어이 귀엣말을 한 뒤 돌아섰다. 그는 1950년 영남일보에 입사한 나이 여든 둘의 여기자 전경화씨였다. 그는 기자에게 “박 전 대표를 보려고 새벽부터 올라왔어”라며 “아까는 연설 잘했다고 말해줬지”라고 말했다. 매년 8월 15일 국립 현충원에서 열리는 고 육영수 여사 추모식에 온 거의 모든 사람이 박 전 대표의 팬이라고 보면 된다. 그들은 박 전 대표의 얼굴과 무궁화가 그려진 우산 등을 들고 나타나기도 한다. 주로 중장년층이나 고령의 노인도 있다. 지난 15일에도 추모객 2,000여명이 모였는데 그들은 박 전대표가 악수나 목례로 감사 인사를 하자 “근혜님이 우리 손을 잡아주셔”라며 반가워 했다. 기자가 박 전 대표 뒤에서 지켜보니 어떤 중년여성은 자신이 걸고 있는 목걸이를 박 전 대표에게 걸어주며 “평생 사치도 안하고…”라며 안타까워 했다. 곁에서는 친박계 의원들이 서 있었다. 한 의원이 애써 물 한잔을 가져왔지만 박 전 대표는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추모객 행렬을 기다리게 할 수 없었던 듯 “마시지 않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추모객 중 이런 목소리도 있었다. “여기는 전부 박근혜 찍을 건데 여기서 악수하면 뭐해. 젊은이들한테 가서 악수해야지” 기자는 박 전 대표가 대구 달성군 LED공장 기공식에 가던 길에서 봤던 두 명의 영남대 학생을 기억한다. 그들은 널빤지에 “영남학원 주인 박근혜의 복지는 영남대의료원 노조간부 해고자 복직부터다”라고 적혀 있었다. 박 전 대표는 그 학생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약력 ▦서울(59) ▦성심여고, 서강대 전자공학과 ▦퍼스트레이디 대행 ▦육영재단ㆍ영남대 이사장 ▦정수장학회 이사장 ▦한나라당 부총재 ▦미래연합 대표 ▦제15ㆍ16ㆍ17ㆍ18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대표 ▦한나라당 대선경선 후보 ▦한나라당 평창동계올림픽 유치특위 고문 결국 떠나버린 오세훈, 위기의 한나라 구세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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