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극도의 슬픔마저 억누르고… '침착한 일본'에 세계가 숙연

[日本 대지진]<br>철저한 체험교육·배려의 문화로 위기때 대응 방법 몸으로 체득<br>아비규환의 참사 슬기롭게 대처<br>시련 극복의 힘 우리도 배워야

'시련을 극복하는 인간의 힘은 어디까지일까? ' 탈진 상태에서 가까스로 헬기에 구조돼 가마이시(釜石) 대피소로 향하는 할머니의 첫 마디는 "죄송합니다.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였다. 뭐가 죄송하고 신세를 졌다는 것일까. 말을 마치고 대피소로 향하는 할머니의 뒷모습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규모 9.0의 대지진, 10m의 쓰나미, 그리고 원전 사고까지. 일본이 겪고 있는 시련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쓰나미가 휩쓸고 간 도시는 아무 것도 남은 게 없다. 아직도 일본 열도는 악몽 같은 기억과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자연의 폭력 앞에 떨고 있다. 하지만 세계의 눈은 일본 열도의 대재해를 안타깝게 바라보면서도 자연재해 앞에 무기력하지 않은 일본 국민들에게 찬사를 보내고 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대지진 앞에 보여준 일본인의 침착함에 대해 "일본의 시민의식은 인류의 정신이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시시각각 전해지는 뉴스 화면 속 일본 시민들의 모습은 소름 끼칠 정도로 차분하고 침착하다. 침착함 속에는 '나보다는 남에 대한 배려' , 그리고 '시련은 극복할 수 있다' 는 믿음이 보인다. 슬프지만 정신을 놓을 정도의 오열도 하지 않는다. 울음은 속으로 삼킨다. 아내를 구하러 마을로 돌아왔지만 아내를 발견하지 못하고 대신 이웃집 여학생을 구한 50대의 남자는 "아내가 살아 있을 것" 이라는 말과 함께 슬픔을 갈무리한다. 여러 이웃 중 혼자 구출됐다며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80세 할아버지도 슬픔을 억누른다. 극도의 슬픔마저 억누른 일본인은 생필품을 사러 나와 줄을 길게 서고 남을 위해 내가 당장 필요한 2병의 생수와 라면·기저귀만 사간다. 물론 수도권 일부에서 물·연료 등이 부족하며 사재기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지만 피해를 입은 지역은 단 10리터의 연료를 얻기 위해 아직도 100~200m 줄을 서고 기다린다. 지진에 도쿄의 지하철과 버스가 끊기고 이동통신이 안 됐지만 그들은 뛰지도 공중전화 근처에서 북새통을 이루지도 않았다. 3~4시간을 조용히 걷고 차분히 공중전화 앞에 줄을 섰다. 대지진의 아비규환 상황에서 일본 기업들의 행동도 놀랍다. 편의점 업체 로손은 지진과 동시에 지진피해가 난 동북 지역 점포에 대한 식품배송을 최우선으로 한다고 밝혔다. 로손은 다른 지역이 배송에 불편을 겪더라도 편의점의 사명(使命)은 가장 필요한 곳에 빨리 제품을 공급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생사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이렇게 무서울 정도의 침착함은 어디에서 나올까. 일본에서 10년간 근무해 '일본통' 으로 통하는 조준희 기업은행장은 "훈련과 남을 배려하는 마음 때문" 이라고 설명한다. 조 행장은 "일본 사람들은 유치원 때부터 지진 등에 대해 형식적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훈련을 받기 때문에 위기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몸으로 체득하고 있다" 며 "또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메이와쿠 가케루나)는 생각이 남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나타나고 있다" 고 말했다. 오랫동안의 학습 즉, 교육과 함께 일본의 역사 속에서 내려온 '집단의식' 도 위기에 대응하는 일본인의 힘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는 "엄청난 재난을 맞으면서 일본이라는 국가가 거대한 공동체이자 나카마(동료집단)로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자리잡으면서 동료에 대한 절대적인 의리와 배려로 나타나고 있다" 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대재앙에 대비하는 일본인의 시민의식은 어떠한 위기도 기본과 원칙이 우선돼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류시열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위기 상황에서 국격은 물론 그 나라의 국민의식이 드러난다" 며 "우리나라 국민과 정부도 예외는 아닐 것" 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위기상황에서 보여준 시민의식과 함께 위기극복 과정도 우리가 주목할 부분이다. 철저한 대비 속에서도 허점을 보인 정부의 정책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대비책을 어떻게 세워 나가는지는 눈여겨봐야 한다. 위기는 남의 일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급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교훈과 함께 복구과정에서 일본의 위기가 또 다른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1995년 고베 대지진이 일본의 경기부양에 촉매 역할을 했다는 분석도 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는 말이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일본 재정이 최악인 시점에 최악의 지진이 일어났다" 고 말한 것처럼 일본 경제가 1995년 당시와는 다른 상황이라는 점이다. 지진 복구비용을 중앙정부가 댈 것이고 이에 따른 일본의 국채급증은 세계 경제의 최대 뇌관 중 하나인 글로벌 재정위기를 자극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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