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과 세상] 아버지 싫어했지만 점차 닮아가는 아들

■아버지의 오래된 숲(베른트 하인리히 지음, 이순 펴냄)


'현대의 소로'라고 불리고 있는 동물행동학자인 저자가 기록한 아버지와 자연에 관한 에세이다. 그는 자연과 생명의 신비를 파헤친 많은 과학 명저들을 저술해왔다. 이 생물학자가 이번에는 대학교수직을 그만둔 뒤 미국 북동부 메인 주 숲속에 직접 통나무집을 짓고 생물학자가 아닌 아들의 시선으로 그의 아버지를 탐구하고 기록했다. 아버지가 남긴 일기와 편지, 메모, 그리고 지인들의 증언 등을 바탕으로 아버지의 삶을 재구성한 것이다. 20세기 초 격변의 근현대 세계사와 함께 펼쳐지는 저자 가족의 2대에 걸친 이야기는 근현대 생물학의 100년 발자취를 보여준다는 평도 듣고 있다. 젊은 시절 저자의 아버지는 구시대와 낡은 것의 표상이었다. 저자의 아버지 게르트 하인리히는 맵시벌에 빠져 맵시벌을 수집, 분류하는데 평생을 바친 남자였다. 각종 곤충과 새 등에 대해 그가 가진 박물학적 지식은 당대의 그 누구보다 깊고 풍부했으나 세상은 대학 졸업장과 학위가 없는 그를 학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종전 이후 유럽의 경제사정이 어려워지자 아버지 게르트는 미국의 박물관에서 곤충과 동물 채집하는 일을 하며 좋아하는 맵시벌 연구도 계속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민을 갔으나 새로운 땅에서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먹고 살기 위해 벌목 노동을 했다. 아들은 사춘기를 지나 어른이 되면서 점점 아버지와 거리를 두려 애썼다. 자식들 대학에 보낼 돈 한 푼 없으면서도 막노동을 해서 번 돈을 맵시벌 연구에 쏟아붓는 고집불통 아버지. 아들은 이런 아버지가 답답하고 이해되지 않았다. 자신은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되지 않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아버지가 원하는 것은 일부러라도 피하고 반항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들도 아버지를 따라 대학에서 생물학을 연구하게 된다. 물론 아버지의 생물학과 아들의 생물학은 판이하게 달랐다. 아버지가 고전적 의미의 계통생물학, 즉 지는 학문에 매달려 있었다면 아들은 유전학, 생리생태학 등 신흥 학문의 세례 속에서 제도권 학자의 입지를 착실하게 다져나갔다. 아들은 눈부신 발전을 이루는 과학의 변화에 무관심한 아버지가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결국 아버지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식적으로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발버둥을 쳤던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아버지였다고 저자는 회고한다. 또 아버지에 관한 책을 쓰기 위해 아버지의 편지와 일기와 옛글을 읽으면서 비로소 아버지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자신은 아버지와 다른 세상에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저자가 생물학자가 된 것은 결국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고 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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