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글로벌 포커스] 세계 최대 원자재 트레이딩 기업 글렌코어

IPO로 베일 벗은 '상품시장 검은 손'… 향후 행보 촉각




창립 이후 신비주의 전략 고수
글로벌 원자재 시장 쥐락펴락
생산국들에 로비 가격 조종도 사업다각화 장밋빛 전망 불구
아프리카 내전국에 투자 집중
탈세 의혹 등 투명성은 걸림돌
지난 달 19일 베일에 꽁꽁 싸여있던 세계 최대 원자재 트레이딩 기업 글렌코어가 런던 및 홍콩증권거래소에서 기업공개(IPO)를 실시하며 속살을 드러냈다. 1974년 창립 이후 비공개 · 비상장 원칙을 고수하며 막후에서 세계 원자재 시장을 쥐락펴락한 글렌코어가 마침내 IPO를 통해 거대한 실체를 공개한 것이다. 그 동안 글렌코어는 상품 장외시장에서 실세로 군림해 왔다. 글렌코어는 스위스의 소도시 바르에 본사를 둔 채 기업 정보를 철저히 숨기며 글로벌 기업들을 상대로 '조용히' 원자재를 판매해 금고를 가득 채웠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 해 상품거래소를 제외한 제 3의 시장에서 글렌코어의 원자재 거래 점유율은 아연 60%, 알루미늄 38%, 구리는 50%에 달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상품 시장 곳곳에 마수를 뻗친 글렌코어는 원자재 가격도 조종한다는 의심을 받아 왔다. 이도 모자라 원자재 기업 사냥에 나서며 트레이딩 기업을 넘어 원자재 생산업체로 탈바꿈할 채비를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이번 IPO가 글렌코어 역사에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IPO를 통해 대규모 자금을 손에 쥘 수 있겠지만 그만큼 상당량의 정보 공개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미 IPO 이후 그 동안 추측만 난무했던 글렌코어의 실체가 양파 껍질처럼 한꺼풀씩 벗겨지고 있다. 시장은 글렌코어가 IPO 이후 어떤 행보를 걷게 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상품시장의 '검은 손' = 글렌코어가 상품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창립 이후 '신비주의' 전략을 철저히 고수했기 때문이다. 글렌코어는 비상장 원칙하에 주요 트레이더들의 신분도 철저히 숨기며 영업을 진행했다. 글렌코어는 전 세계 40여개국에 직원을 파견, 원자재 생산국 정계 및 재계로 로비 촉수를 뻗치며 자사에 유리한 정책이 나오도록 사력을 다했다. 실제로 글렌코어는 지난해 여름 러시아가 가뭄으로 작황 불황이 예상되자 밀과 옥수수를 대량으로 사들인 뒤 러시아 정부에 즉각 곡물 수출금지 조치를 내릴 것을 압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글렌코어가 원자재 가격을 조종한다는 사실도 공공연하게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시카고 및 런던 상품거래소의 트레이더들이 장에서 호가를 외치며 계약을 체결한다면 글렌코어의 트레이더들은 기업들과 밀실에서 원자재 실물을 거래한다. 글렌코어가 주도하는 장외 거래 물량이 많아질수록 거래소 가격도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이 밖에 글렌코어는 주주가 485명(IPO 이전)에 불과해 폐쇄적 경영 체제를 구축해 왔다. 미국에서 설립된 글렌코어가 본사를 스위스로 옮긴 것도 세금 추징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글렌코어는 온통 의문으로 가득 찬 기업"이라고 전했다. ◇IPO로 양지로 나와= 이렇듯 음지에서 활개를 치던 글렌코어가 갑자기 IPO를 통해 양지로 나온 것은 음지에 머무를 경우 사업 확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서다. 특히 글렌코어는 원자재 기업 M&A 실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IPO가 필수라고 판단했다. 글렌코어는 지난해부터 호주 광산업체 엑스트라타와 카자흐스탄 아연 생산업체인 카징크 인수에 눈독을 들여왔다. 이도 성이 차지 않았던 글렌코어는 최근 영국 광산기업 ENRC에도 120억 파운드 규모의 인수가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FT는 "트라피구라 등 라이벌 원자재 트레이딩 업체들이 채권발행을 통해 주로 자금을 모집한 것과 달리 글렌코어는 기업 위상을 내세워 자신있게 IPO에 도전했다"고 전했다. 예상대로 글렌코어는 지난 달 19일 IPO를 통해 100억달러를 조달하며 화끈한 신고식을 치렀다. 이는 올해 IPO를 단행한 기업 중 최대 규모다. 원자재값 상승을 반영하면 기업가치가 700억달러에 달한다는 전망도 나왔다. 글렌코어는 또 IPO 첫날 FTSE100지수(런던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100개의 우량주식으로 구성된 지수) 에 포함되는 기염을 토했다. ◇IPO 이후, 글렌코어 미래는=글렌코어가 100억달러라는 뭉칫돈을 끌어모으며 화려하게 주식시장에 입성했지만 글렌코어의 미래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글렌코어에 장밋빛 전망을 내놓는 투자자들을 무엇보다 상품시장의 랠리를 이유로 든다. 글렌코어 상장 이후 글렌코어의 주력 업종인 원유, 석탄, 금속 가격지수는 각각 4.0%, 1.7%, 0.7% 상승했다. 중동 민주화 시위와 동일본 대지진으로 원자재 가격이 요동치는 점도 글렌코어에는 호재다. 여기에 글렌코어가 직접 광산 경영 일선에 나서며 사업 다각화에 나서고 있다는 점도 글렌코어가 승승장구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을 보태고 있다. 하지만 암울한 전망도 적지 않다. 일부 전문가들은 지금의 상품시장 조만간 조정국면에 접어들어 하락세를 띨 것이라고 예상한다. 상품 가격 하락은 글렌코어에도 치명타가 될 수 밖에 없다. 글렌코어의 주요 광산 자산이 잠비아나 콩고 등 아프리카 내전 국가에 집중돼 있는 점도 마이너스 요인이다. 글렌코어의 최대 약점인 투명성도 IPO 이후 더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글렌코어는 현재 잠비아 모파니 구리광산에서 얻은 소득을 축소 신고해 탈세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유럽투자은행(EIB)은 글렌코어에 대출해주기로 했던 5,000억달러를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글렌코어는 그 동안 어떻게 수익을 창출하는 지 정확히 공개한 적이 없어 투자자들이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FT는 "IPO는 글렌코어에 또 다른 시험대"라며 "기업 공개 정보 요구가 봇물을 이뤄 또 다른 장벽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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