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봉책만 되풀이하면 실기/대한투자·신뢰회복 큰도움/관계당국-금융계서 본격거론최근의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과감히 요청해야 한다는 주장이 본격 거론되고 있다.
16일 관계당국과 금융계에 따르면 외화 유동성의 경색 등 금융위기가 갈수록 심화되면서 하루라도 빨리 구제금융을 신청하는게 외국인투자가 및 외국 금융기관의 대한신뢰도를 높이는 최선책이라는 지적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관련기사 2면
수차례씩 반복한 금융시장 안정대책이 새삼 효과를 내리라고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미 정부의 대내외적인 신뢰성은 바닥에 떨어져 한국경제가 자체 능력만으로는 회생이 어려운 총체적 「부도위기」에 몰렸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실효없는 미봉책을 되풀이 하다 낭떠러지 직전에 몰려 구제금융을 구걸하기 보다는 아직 여유가 있을 때 나은 조건으로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한국을 외면하는 외국인의 시선을 되돌려놓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IMF의 구제금융을 통해 일단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구조조정을 마무리하면 한국 경제가 되살아날 길은 여전히 충분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최근 국내 경제계의 상당수 인사들도 이같은 지적에 공감의 뜻을 밝힐 정도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 있다.
그러나 재정경제원은 아직까지 『IMF의 구제금융은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다』고 일축하고 있다. 외환보유액이 우려할 수준이 아니고 경제체질도 금융위기를 극복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또 조만간 금융시장안정대책을 발표하면 현재의 금융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사실 IMF의 구제금융은 중앙은행의 특융과 같은 성격의 최종 대출이다. 따라서 IMF의 구제금융을 받는다는 것은 「파산위기」에 몰린 부실국가임을 자인하는 치욕적인 사건이다.
이 문제는 지난 6일 경제전문 블룸버그통신이 IMF 구제금융 신청 가능성을 보도하면서 불거졌다. 당시만 해도 이는 한국경제에 대한 악의적 보도로 치부됐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구제금융이 불가피하다는 시각이 의외로 만만찮다. 미국 국제경제연구소(IIE)의 프레드 버그스텐소장은 지난 13일 한국의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5백억달러의 IMF 구제금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독일의 경제전문지 한델스블라트도 지난 13일 『IMF가 한국에 5백억∼6백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실시할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또 미국계 퀀텀펀드 관계자들도 IMF 구제금융을 요청하면 한국시장에 다시 투자할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IMF 구제금융이 공돈이 아니라는 점. 한은 특융시 자구계획과 경영권포기각서를 요구하듯 IMF 구제금융도 금융개혁 등 자구노력과 거시경제정책 목표 제시 등 경제정책에의 간여를 전제로 하고 있다. 태국과 인도네시아의 경우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수십개 금융회사 영업정지 등 금융개혁을 단행했고 성장률, 외환보유 규모, 세율인상 등 경제전반에 걸친 내정간섭을 감수해야만 했다.
구제금융 불가피론자들은 이번주중 발표될 예정인 금융시장 안정대책에 IMF의 구제금융 조건과 맞먹을 정도의 자구계획(금융기관 구조조정 등 금융개혁)을 포함시키면서 구제금융을 요청할 경우 금융위기가 빨리 진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이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