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국가신뢰도 회복 급하다/차동세 한국개발연구원장(송현칼럼)

우리는 드디어 새 대통령을 뽑았다. 나라경제가 워낙 어려운지라 국민이 새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도 그만큼 크다.새 대통령은 국가부도의 위기에 몰린 한국경제를 추스려 다시 정상궤도에 올려놓아야 한다는 정말 무거운 짐을 지고 출발하게 되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지원으로 우선 급한 불은 끄고 있지만 지금부터가 일의 시작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 정부도 무척 바쁘게 움직였고 IMF 요구사항을 들어주기 위해 많은 애를 쓰고 있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도 없던 조치들을 과감하게 취한 것이 사실이다. 부실 종금사를 영업정지시키고, 금융기관의 부실자산 처분을 위해 성업공사를 통해 엄청난 자금을 지원하고 있고, 환율변동폭을 없애고, 심지어는 은행 한두 개를 외국자본의 손에 넘겨주겠다고까지 발표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제금융시장의 반응은 아직 냉담할 뿐이다. IMF와 클린턴 대통령은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국제금융기관들은 끊어버린 크레디트 라인(Credit Line)을 회복시켜주지 않고 있다. 아니 오히려 더 죄어오고 있다는 것이 금융기관 종사자들의 의견이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국제금융시장이 왜 한국이 그동안 열심히 취해온 구조조정 노력을 높이 평가해주지 않는가를 겸손한 마음으로 생각해봐야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 정부가 그동안 취해온 정책들이 왜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는가를 반성해 봐야 한다. 구조조정, 즉 부실 금융기관과 부실기업을 정리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신속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시장원리에 따라 처리하는 방법이다. 은행이든, 대재벌이든 문을 닫아야 하면 냉혹하게 닫게 하고, 확실히 살 수 있는 것만 골라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국민경제에 엄청나게 큰 충격을 주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반면에 얻는 것은 국제사회에서의 한국경제에 대한 신뢰감을 이른 시일 내에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의 현실을 고려하여 점진적으로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IMF 요구조건을 최소한 충족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이 경우의 장점은 국민경제에 주는 충격을 최소화해가면서 서서히 구조조정을 함으로써 국가경제의 대내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경우의 단점은 국제사회로부터의 한국에 대한 국가불신을 해소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최근 만난 한 국제금융기관의 임원은 한국이 두번째 대안을 택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 우리 정부는 IMF의 요구조건을 최대한 충족시키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외국의 금융기관들은 그보다 훨씬 더 냉혹한 구조조정이 없다면 한국에 대한 국가신뢰을 회복시킬 수 없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종금사의 영업정지가 아니라 이른 시일 내에 완전한 정리를 해야 하고, 또 종금사들이 해외에 진 빚은 정부가 갚아줄 이유가 없음을 천명해야 하며, 살아남을 수 없는 은행을 정부가 떠안고 갈 것이 아니라 과감히 청산하고, 대재벌이라도 부도를 내거나 인수·합병시킬 것은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방법은 엄청난 충격과 고통을 수반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가 만족시켜야 할 상대는 IMF뿐만 아니라 수많은 국제금융기관들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IMF가 반대하지 않는다고 해서 국제금융기관들이 다 잘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보다 과감한 결단과 행동, 그리고 고통 감내의 용기를 전세계에 보여줌으로써 국가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첫째, 종금사와 은행의 정리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몇달 시간을 벌어서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더 많다. 둘째, 재정긴축을 훨씬 더 강도높게 실시하여야 한다. 정부는 4조원의 예산절감을 계획하고 있으나 금융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출 축소와 세수 증대를 통해 10조원 이상이 재정에서 나와야 한다. 이것은 정부와 정치권으로서는 엄청난 부담이 되지만 국가부도를 막기 위해서는 그만한 희생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된다. 셋째, 정리해고에 대해 아직도 미적거리고 있지만 해답은 명확하다. 즉각 정리해고를 허용할 일이다. 정리해고 없이 금융기관과 기업의 구조조정은 불가능하다. 국제금융기관들은 우리가 노동시장의 개혁을 어떻게 추진하는가를 다 보고 있다. 이상과 같은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하면서 IMF 지원금융을 효율적으로 활용해나간다면 국제사회로부터의 한국에 대한 신뢰는 이른 시일 내에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국제사회도 한국의 성장잠재력, 인적자본, 기업가 정신 등에 대해서는 대단히 높이 평가하고 있다. 국가신뢰만 회복한다면 우리에게 이번 위기는 진정 하나의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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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동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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