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영수회담 이후 뚜렷한 입장표명 못해

◎재계 “노동법 묘안없다” 속앓이/춘투 연계경우 노사분규 확산 우려/일부선 복수노조 인정 온건론 부상『이런 상황에서 어떻게든 문제를 제기해야 하겠지만 뚜렷한 묘안이 없다』 개정 노동법을 국회에서 재론키로한 지난 21일 여야영수회담에 대한 전경련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전경련과 경총 등 노동법 파문의 한 쪽 당사자인 재계는 지난해 노동법 개정이후 집단파업·영수회담으로 이어지는 급박한 상황변화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입장을 표명하지 못한채 속앓이를 하고 있다. 아직 국회의 논의가 남아 있는 상태이긴 하지만 이번 영수회담 결과는 재계의 입장에서 볼때 지난해말 노동법 개정안이 확정된 후 「우려했던 것 중 최악의 결과」다. 「재론」은 곧 노동계의 의견이 더 반영되는 결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21세기에 대비한 경쟁력 강화를 위해 모처럼 맞은 기회가 물거품이 될 위기에 놓였다』는 전경련과 경총 관계자들의 말은 이같은 우려감을 잘 담고 있다. 상황이 악화됐다고 판단한 재계는 대책마련에 나섰다. 경총은 22일 특별파업대책반 4차회의를 열고 「기존입장 고수」를 재확인했다. 또 전경련은 23일 긴급 10대그룹 기조실장회의를 열어 후속대책을 논의하고 재계입장을 정리할 방침이다. 그러나 이같은 부산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재계는 지극히 입조심을 하고 있다.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경총의 특별파업대책반 회의에서도 참석자들은 ▲복수노조 불가 ▲정리해고제 도입 등 신노동법과 관련한 기존입장을 재확인하는 선에서 논의를 마쳤다.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노동법 재개정에 대해 드러내놓고 반발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도 없는 재계의 속사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동안 파업사태가 3주일 이상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정작 입을 다문채 속앓이만을 하고 있어야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노동법의 당사자이지만 노정관계로 치닫고 있는 파업사태에 잘 못 끼어들 경우 지난해 하반기부터 공들여 이루어 놓은 노동법 개정이 물거품이 될 소지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재계 입장에서 노동법은 많은 공을 들인 작품이다. 지난 80년대말 이후 극심한 노사분규에 밀려 그동안 사업구조조정과 같은 구조개선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최근 구조적 불황으로 야기된 사회적 분위기를 틈타 10년여 만에 정리해고와 변형근로제, 파견시간근로제 등 숙원사업의 해결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단계에서 그 꿈은 상당부분을 포기해야 할 상황이 된 것. 최종현전경련회장이 「5년간 임금동결을 위한 긴급명령 건의」라는 폭탄발언을 해가면서까지 정리해고제, 파견근로시간제, 노조전임자 임급지급금지 등을 이루어 놓았지만 그 결과는 아직도 불투명한 상태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목소리를 낮출 수만은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지고 있다. 정리해고제와 복수노조 허용 등 쟁점사항을 양보할 경우 발등의 불은 끌 수 있지만 우리경제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산업계의 노사분규와 고임금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잃게되기 때문이다. 특히 대학이 개학을 앞두고 있는데다 한달 가량 지나면 임·단협이 시작된다는 점도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아직 불씨가 꺼지지 않은 파업사태가 장기화돼 춘투와 연결될 경우 노사분규는 상반기까지 이어져 생산, 수출에 걷잡을 수 없는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해 지고 있다. 이에따라 재계는 노동법의 국회재론에 앞서 어떤 식으로든 입장표명을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또 한번 「초강수」를 선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란 견해도 많다. 재계 일각에서는 복수노조 문제의 양보는 어쩔 수 없는 상태라고 보고 대신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 금지와 회사의 조합비 징수대행을 금지하는 방안 등 온건론도 등장하는 등 강온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이에따라 23일 하오 롯데호텔에서 열리는 10대 그룹 기조실장회의가 주목을 끈다. 이날 재계는 「뜨거운 감자」인 노동법재론에 대한 입장을 논의, 밝힐 것으로 보인다. 이날 내릴 결론은 국회 재론을 남겨두고 있는 개정 노동법과 소강상태에 들어간 파업사태의 향배에 또 하나의 큰 변수로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민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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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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