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과세상] 조선은 개천서 용 나던 사회

■ 과거, 출세의 사다리(한영우 지음, 지식산업사 펴냄)


조선시대 문종 즉위년에 문과에 급제한 홍우성은 세조 때 영의정 자리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회인 홍씨인 그의 집안엔 직계 3대조까지 벼슬 근처에 가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평민 출신의 그가 출세할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출세의 지렛대 역할을 했던 과거에 있다.

이처럼 조선시대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역동적인 시대였다. 조선사 전문가인 한영우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조선시대 문과급제자 전체를 통계적으로 분석한 후 펴낸 신간 '과거, 출세의 사다리'를 통해 조선시대에 양반 신분이 세습됐다는 기존 학계의 통념에 이의를 제기했다.


저자는 5년에 걸친 방대한 연구 작업을 통해 조선 500년을 이끌어간 정치엘리트인 문과급제자 1만 4,615명 전원의 신분을 조사했다. 이번 책은 1차로 중기까지인 태조~선조까지 다루고 있다. 결과는 놀라웠다. 평민 등 신분이 낮은 급제자가 전체 급제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태조~정종 40.4% ▦태종 50.0% ▦세종 33.5% ▦문종∼단종 34.6% ▦세조 30.4% ▦예종~성종 22.2% ▦연산군 17.1% ▦중종 20.9% ▦명종 19.8% ▦선조 16.7% 등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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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학계에서는 조선 초기부터 권력 세습에 의한 문벌이 형성됐다는 게 통설이 됐다. 이는 과거 합격자 명단인 방목 연구에 한정해 특정 가문의 과거 합격 비율이 높게 나오자 이를 확대 해석한 오류 탓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반면 한 교수는 방목은 물론 급제자 집안의 족보, 실록에 기록된 급제자의 벼슬과 신분에 관한 자료 등을 일일이 찾아내 조선시대 문과급제자 전원의 신분을 확인했다. 그 결과 조선 시대 양반의 신분과 특권이 세습됐다는 기존 학계의 통념과는 달리 보잘 것 없는 집안 출신도 과거에 대거 합격했던 것이다.

저자는 "조선 시대 신분 상승이 가능했던 것은 서얼과 노비를 제외하고 평민 이상에게 과거 응시 기회가 개방된 덕분"이라며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었던 과거 제도의 전통이 오늘날 역동적인 한국 사회를 만든 토대가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양반들이 권력을 세습하는 현상은 조선 중기에 국한해 나타났던 것"이라며 "조선 초기만 해도 신분이 낮은 급제자의 비율은 40~50%나 됐으며 18세기 후반이 되면 신분제가 무너져 고종 때는 이 비율이 58%로 다시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1권 '태조-선조' 편을 펴낸 한 교수는 2권 '광해군-영조' 편, 3권 '정조-철종' 편, 4권 '고종' 편을 차례로 발간할 계획이다. 3만 5,000원.

정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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