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송현칼럼] 과잉고용과 서비스업 개방

우리나라에서 차를 몰고 백화점에 가서 주차장에 들어가면 주차권 자동발매기 옆에 여종업원이 서서 상냥하게 인사를 하며 주차권을 뽑아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매우 신기한 현상이다. 주차권 자동발매기는 바로 주차권을 건네주는 그 여종업원을 해고하기 위해 만든 기계인데 그 기계와 종업원이 같이 서서 일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백화점 주차장뿐만이 아니다. 많은 슈퍼마켓의 경우 종업원이 계산대에 서서 물건을 비닐봉지에 담아준다. 선진국 슈퍼에서도 몸이 불편한 사람이나 어린아이가 있는 사람을 위해 종업원이 물건을 담아주는 경우는 있지만 모든 고객에게 이런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슈퍼는 물건을 진열대에서 내리고 봉지에 담는 등 과거 종업원이 하던 일의 일부를 고객에게 맡겨 비용을 절감하는 곳이므로 종업원이 물건을 담아주는 것은 슈퍼를 만든 취지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이러한 현상은 이윤극대화의 기준으로 볼 때 꼭 필요하지 않은 ‘과잉고용’이 우리나라 서비스업에 얼마나 많은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사실 과잉고용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서비스업 부문에 종업원이 많으면 기업의 이윤에는 불리할지 몰라도 그만큼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건비가 비싼 선진국 점포에는 종업원이 적어 고객이 서비스를 받기까지 오래 기다려야 하는 일이 많은 반면, 한국의 경우 종업원이 많아 신속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종업원 1인당 매출액은 선진국 점포가 훨씬 높겠지만 판매 ‘서비스’의 질을 따지면 한국이 더 질 좋은 ‘제품’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소비자 불편 신고 측면에서도 한국은 신고를 접수하는 종업원이 많아 금방 처리되지만 선진국은 신고센터 종업원이 적어 전화를 붙잡고 몇 십분씩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단순히 종업원 1인당 매출액을 기준으로 할 때 우리나라 서비스업의 생산성은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지만 고객의 불편과 기다리느라 낭비한 시간을 고려하면 사회적 차원에서 생산성의 차이는 그만큼 크지 않다. 그러나 서비스의 질이라는 요소를 감안하더라도 우리나라 서비스업 부문에 엄청난 과잉고용이 존재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복지제도가 취약해 실업자가 되면 당장 생계유지가 어렵기 때문에 효율성을 따질 겨를도 없이 영세한 자영 서비스업체라도 운영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업체를 운영하는 사람들도 선진국 기준으로는 과잉고용자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서비스업의 과잉고용이 심각한 상황에서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대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서비스 시장이 급격히 개방되면 엄청난 실업문제가 닥칠 것이다. 서비스의 질보다는 인건비 절감에 중점을 두는 선진국 서비스업체들이 대규모로 들어오면 우리나라의 서비스업체들도 그에 따라 경쟁하지 않을 수 없게 돼 대규모 감원이 불가피하다. 또 경쟁이 심화하면서 많은 수의 영세 소매업체가 도산하게 되고 그에 따라 많은 자영업자들이 실직하게 될 것이다. 서비스 개방론자들은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업자들은 더 생산적인 일자리를 찾을 것으로 가정하고 개방의 이득만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부분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생산성이 더 높은 업종으로 전직할 만한 기술이 없기 때문에 서비스업이 개방되면 실업자가 될 확률이 높다. 이렇게 볼 때 교육 등 공공성 문제 때문에 개방을 하는 것 자체가 문제인 서비스업은 일단 논외로 한다고 하더라도 과잉고용 문제가 먼저 해결되지 않으면 서비스업 개방은 많은 사람들을 해치게 될 것이다. 서비스업 과잉고용의 근본 원인 중 하나가 복지제도의 미비라는 점을 감안해 복지, 특히 실업보험을 강화해 생산성이 낮은 자기착취형 영세 서비스업체는 퇴장하고 대형 서비스업체가 감원하는 것을 쉽게 해줘야 한다. 동시에 서비스업에서 방출된 사람들이 더 생산성 높은 일자리로 옮겨가기 쉽도록 직업 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우리 서비스 산업의 생산성이 낮은 것이 단순히 경쟁부족에 기인한다면 개방이 해답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서비스의 생산성 문제는 좁은 국토로 인한 대형매장 설치의 어려움, 복지제도의 미비로 인한 과잉고용 압력 등 구조적 특성에 기인한 점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복지제도나 교육훈련제도 등을 정비하지 않고 개방만 서두르는 것은 경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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