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기적인 투자성향의 외국인 자금이 국내 증시로 물꼬를 틀고 있다. 이들이 국내 증시로 속속 들어오는 것은 ▦국내 경기의 개선 움직임 ▦원ㆍ달러 환율 안정 ▦지나칠 정도로 떨어진 한국투자 비중 등이 한 데 어우러진 결과다. IT 업종 등 주요 국내 기업의 펀더멘털 개선 움직임과 헤지펀드의 위축 등을 고려할 때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하는 자금의 비중이 크게 늘어났다는 게 증권업계의 분석이다. ◇한국 관련 해외펀드로 자금 속속 유입=외국인은 지난 3월 이후 이달 10일까지 국내 증시에서 모두 2조7,000억원 규모의 주식을 사들였다. 특히 코스피지수가 기존의 박스권 상단(1,230포인트)을 상향 돌파한 지난달 30일부터 외국인의 순매수세는 더욱 강화됐다. 이때부터 10일까지의 순매수 규모는 모두 1조1,000억원에 달했다. 이처럼 외국인이 적극적으로 국내 주식을 사들이는 것은 한국에 투자할 수 있는 펀드에 돈이 다시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관련 해외 주요 4대 펀드에 4주 연속 자금이 유입된 것은 물론 오로지 한국만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 투자펀드에도 지난달 25일 이후 이달 8일까지 3주 연속 자금이 들어왔다. 노무라증권 홍콩법인의 한 관계자는 “외국인들의 움직임을 보면 올해부터 이달 초까지 아시아지역에서는 주식을 팔고 자금이 나갔지만 한국은 오히려 자금이 유입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장기투자 겨냥한 자금 유입=최근의 국내 상황도 장기 투자의 매력을 높여주는 요인으로 꼽힌다. 환율 안정과 경기선행지수 상향 조정, IT 등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업종의 턴어라운드 조짐 등은 이머징마켓 중에서 한국의 장기투자 메리트를 높이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외국인의 시가총액 비중이 이머징마켓 평균치인 27% 수준까지 떨어진 것을 감안할 때 한국주식을 포트폴리오에 더 채워넣어야 할 필요성도 높아졌다. 12개월 주당순이익(EPS) 증감률도 인도(4%), 대만(-28%)과는 달리 국내 증시는 15%로 아주 높은 수준이다. 유재성 삼성증권 해외부문 센터장은 “현재 해외의 장기투자자들은 지난해 한국의 주식비중을 너무 줄여놓은 상황이라 IT와 자동차 부문 등의 실적이 개선될 조짐을 보이자 서둘러 한국 증시로 들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헤지펀드의 위세가 크게 약화된데다 지난해 10월부터 국내에서 공매도제도가 금지된 것도 장기투자자의 비중이 늘어난 또 다른 배경으로 꼽힌다. 헤지펀드 리서치(HFR)에 따르면 지난해 4ㆍ4분기 사상최대 수준인 778개 헤지펀드가 청산됐고 전체 자산도 현재 1조3,600억달러(2월 말 현재)로 지난해 6월에 비해 6,000억달러나 줄었다. 외국계 증권사의 한 고위관계자는 “지난해 3ㆍ4분기부터 헤지펀드들이 대거 무너진 것을 고려할 때 최근 유입되는 외국인 자금은 장기투자 성격이 짙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직은 신중할 때” 지적도=일부에서는 시장 상황이 다시 악화될 경우 외국인 자금이 언제든지 빠져나갈 수 있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따라서 외국인 순매수세가 지속될지 여부에 대한 판단도 경기개선 정도를 어느 정도 확인한 후로 미뤄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이창희 다이와증권 상무는 “아직은 위험에서 벗어났다고 이야기하기에는 이르다”며 “좀더 멀리 보고 들어왔던 자금일지라도 경제 여건이 나빠지면 바로 빠져나갈 수 있는 유동적인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소장호 삼성증권 연구원도 “최근 외국인 자금이 중장기적 관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지속성 여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라며 “올해 국내 주요 500대 기업의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줄어들 가능성이 큰 상황이어서 외국인 자금이 꾸준히 들어오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