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제일銀 명퇴장면 담은 '눈물의 비디오' 촬영 이응준씨

"당시 퇴직한 동료중 잘된 이 없어 씁쓸"<br>우울한 국민들 감성 자극 기업체 등서 주문 줄이어…1만2,000개나 복사·배포

지난 2001년 8월26일 서울 여의도의 한 방송국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외환위기 ‘졸업’을 축하하는 성대한 음악회가 열렸다. 프로그램 중 하나로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후 명예퇴직한 제일은행 직원들의 생생한 육성을 담은 ‘눈물의 비디오(원제 ‘내일을 준비하며’)’가 상영되면서 관람석 이곳저곳이 흐느낌으로 들썩였다. 김 대통령 스스로도 IMF 당시 목격한 사회적 불안과 좌절을 회고하며 “거리로 나오는 실업자, 목숨을 끊는 사람들, 입대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잠을 못 이뤘다”고 말했다. IMF가 ‘I am fired(나는 해고됐다)’로 풍자되기 시작하던 98년. 당시 제일은행 대리였던 이응준 기업은행 문화홍보실 차장은 디지털캠코더를 들고 폐쇄를 앞둔 서울 테헤란로 지점의 마지막 모습을 담았다. 회사를 떠나는 이들의 흐느낌이 어두웠던 사회적 분위기와 맞아 떨어지면서 곧 학교와 기업체는 물론 청와대 등에서 주문이 쇄도했다. 그의 손에서만 총 1만2,000개의 복사본이 만들어져 세상에 퍼져나갔다. 눈물의 비디오에서 예고됐던 대량실업의 두려움은 곧 밥 한 그릇을 타기 위해 서울역 앞을 가득 메운 노숙자 행렬로, 아침부터 할 일 없이 남산공원을 어슬렁거리는 넥타이부대에서 처참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눈물의 비디오는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사내 교육용’으로 제작된 게 아니었다. ‘최고의 은행원이라는 자부심으로 가득했던 제일은행 직원들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자는 뜻’이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곧 다가올 위기극복의 한 시점에서 눈물의 비디오를 안줏거리삼아 “아, 그땐 그랬지”라고 얘기하는 풍경을 상상했던 것. 역설적이지만 눈물의 비디오는 하루빨리 현실의 고통이 사라지기를 염원하는 ‘희망의 비디오’이기도 했다. 그는 눈물의 비디오에 쏠렸던 사회적 관심의 배경을 ‘공포효과’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전쟁터에서는 발목지뢰를 밟은 동료를 보는 것만으로도 실제 외상을 입은 것과 같은 극도의 공포를 느끼게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무방비’ 상태에서 실직의 위험을 목도했기에 공포의 크기도 유난히 컸단다. 그는 “당시 정규직원 8,000명 중 4,500명 정도가 제일은행을 떠났다”며 “회사를 떠난 이들 중 상당수가 퇴직금을 가지고 통닭집 등을 차리거나 전업했지만 특별히 잘된 사람은 없는 듯하다”고 말했다. 대부분 IMF 체제 이전보다 삶의 질이 하향 평준화됐다는 씁쓸한 지적이었다. IMF와 함께 직장인들의 희망도 사라져갔다. 이씨는 “예전에는 신입 행원들에게 왜 은행에 들어왔느냐고 물으면 모두가 ‘은행장이 되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며 “지금은 ‘차장이라도 할 수 있을까’로 바뀌었다”고 못내 아쉬워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