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정몽구 회장의 선택


"지금부터는 물이 스미듯이 조용하게 시장을 넓혀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근 유럽 출장 중에 만난 김선영 기아차 유럽총괄법인장이 던진 말이다. 그 한마디에 올해, 그리고 앞으로 당분간 현대ㆍ기아차가 유지해야 할 전략의 기본이 담겨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것이 정몽구 회장의 선택이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지난 2010년 1월,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세계 자동차시장을 뒤흔들었던 도요타의 대량 리콜 사태. 무려 1,200만대가 넘는 자동차를 리콜한 도요타는 그 후 1년이 지난 올 초 미국시장 점유율이 2.5%나 떨어지는 위기를 겪어야 했다. 리콜 사태의 단초는 세계 정상만을 바라보며 '품질 제일'의 초심을 잃었던 도요타 내부에 있었다. 그러나 후폭풍의 이면에는 도요타의 성장 속에서 자연스럽게 '적(敵)'이 돼버린 쟁쟁한 완성차 업체들의 위기감이 깔려 있었다는 것도 공공연한 사실이다. 도요타 사태 후 자동차 기업들은 달라졌다. 특히 현대ㆍ기아차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금융위기로 촉발된 불황 속에서 기회를 잡았고 도요타 리콜 사태로 반사이익을 누렸음에도 현대ㆍ기아차는 서두르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올 초부터 현대ㆍ기아차가 1개 이상의 해외 공장을 추가로 건설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최고 경영자의 마지막 결제는 나지 않았다. 그렇게 2011년을 보낼 것 같았던 현대ㆍ기아차는 2일 '기아차 중국 3공장 건설'계획을 발표했다. "심각한 공급 부족을 겪고 있는 중국에서의 생산량 확대를 위한 결정"이라는 설명이다. 미국ㆍ유럽ㆍ중국 등 주요시장에서 거침없는 상승세가 계속되는 가운데 일부 시장에서는 가속 페달에 힘을 빼며 속도를 조절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한번 더 가속 페달을 밟는 식으로 완급을 조절하는 철저히 계산된 전략이다. 오는 2012년 세계 자동차시장 전망은 불투명하다. 유럽의 재정위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그래서 소비시장은 어떤 영향을 받을지 예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현대ㆍ기아차는 내년 세계 판매 목표를 올해 650만대보다 높게 설정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700만대 이상 충분히 가능하다고 전망한다. 이를 반증하듯 유럽에서 만난 현대ㆍ기아차 임직원들은 확실히 자신감에 차 있었다. "지금처럼 가다 보면 분명 경쟁 메이커를 제치는 날이 올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조용히 추이를 지켜본 후 승부수를 띄우는 정 회장의 선택이 빛을 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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