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몽마르뜨 언덕이 세계적인 관광명소이지만, 몽마르뜨 언덕의 약 두배 높이인 남산에서 바라보는 전망도 이에 못지않답니다. 우리의 산과 강이 너무 친숙해서 그 아름다움에 무덤덤하지만 한국의 건축미학은 건축물 자체의 아름다움보다 이를 감싸고 있는 자연 풍광과 공간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우리 건축미학을 이해하려면 지형지물에 대한 이해가 앞서야 합니다.”
7일 서울시교육청 구로도서관 시청각실에는 35도에 육박하는 폭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50여명의 시민들이 박희용(사진) 서울학연구소 수석연구원의 ‘시간과 공간으로 풀어낸 서울 건축문화사’에 참가했다. 첫 강의 주제는 ‘한양도성의 건설과 조선의 상징 공간’으로 우리의 땅에 도시와 궁궐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서울시교육청과 본지부설 백상경제연구원이 공동으로 운영하고 KT가 후원하는 고전 인문 아카데미 고인돌(고전인문학이돌아오다) 강좌로 마련된 이번 강의는 우리의 건축미학과 이를 발전시킨 철학과 사상이 서양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한·중·일 3국의 건축학적 차이를 소개한다.
박 수석은 ‘좋은 땅은 따로 있다’는 우리의 땅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강의를 풀어나갔다. 그는 여암 신경준이 우리나라의 산줄기를 15계보(대간 1개, 정맥 13개, 정간 1개)로 정리한 산경표(山經表)를 보면서 이 땅을 설명했다. “보통 산과 강은 별개의 객체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좋은 땅은 산과 강이 짝을 이루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바로 정맥입니다. 풍수에서는 이런 땅이 좋은 땅이라고 하죠. 그래서 아름다운 금수강산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랍니다. 마을은 대부분 산이 낮아지면서 평지가 되는 쪽에 생겨났고, 지금처럼 남향집이 최고가 아니라 뒤에 산을 두고 앞에 강이 흐르는 지형에 집을 짓는 배산임수((背山臨水)가 한국 건축의 원칙입니다. 한양도성을 정할 때에 한남정맥과 한북정맥이 만나는 곳으로 정한 것도 이해가 되죠?”
경복궁을 중심으로 내사산(낙산, 목멱산, 북악산, 인왕산)이 감싸고, 내수(청계천)가 흐르며 그 밖을 외사산(남-관악산, 북-북한산, 동-용마산, 서-덕양산)이 둘러싸고 외수(한강)가 흐르는 곳에 한양도성을 지었다는 설명으로 이어졌다.
그는 동양과 서양의 건축 철학의 차이도 비교해서 설명했다. 동양이 무(無)와 허공, 기(氣)의 변화를 중시하는 공간중심의 건축미학이라면 서양은 존재와 본질을 명확히 구분하는 형태의 형이상학이 핵심이라는 것. “동양은 건축물의 외관보다는 보이지는 않지만 건물 사이의 공간에 각자의 기능을 부여했다면, 서양은 벽과 지붕 그리고 마당 등 건축물 그 자체에 방점을 찍는 게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궁궐의 지형지물을 그린 동궐도의 경우 보이지 않는 공간까지 그려넣고 있어요. 이는 있는 그대로 보이는 대로 그리는 서양의 건축설계도와는 차이가 있지요.” 박 수석은 화려함과 장식이 강조된 중국건축과 인공미와 인위적 형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일본건축이 한국건축과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하며 설명했다.
방학을 맞아 참석한 초등학생들도 이해할 정도로 우리의 건축미학을 쉽게 설명하는 이번 강좌는 28일까지 다섯 번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다. 1강-한양도성의 건설과 조선의 상징 공간, 2강-태종과 박자청, 세계문화유산을 만들다, 3강-한양에서 태어난 조선 최초의 임금님 세종, 4강-구본신참(舊本新參)과 고종의 공간정치, 5강-답사(경복궁) 등으로 진행된다.
한편, 올해 3회째인 고인돌(고전인문학이돌아오다)은 서울시교육청 도서관 21곳과 서울시 중고등학교 30여 곳에서 12월까지 잇따라 열리고 있다. 세부 프로그램은 서울시교육청 평생교육포털 에버러닝(everlearning.sen.go.kr)을 참고하면 된다. 강좌는 무료이며 신청은 해당 도서관으로 문의하면 된다./장선화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