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어린 아기와 미사일의 창조경제

민군기술협력 없이 도약 불가능… 미국·영국·독일 고속성장 비결

어뢰 응용한 반값 의료장비서 군통신기술 활용 5G 인터넷까지

민간 활용 가능한 군 기술 가득… 단기업적 주의는 경계해야


고성능 미사일 시스템이 갓난아기를 추적한다. 섬뜩하지만 가자 지구와 시리아에서 벌어지는 참극 상황이 아니다. 장소는 대한민국. 목적도 살상과 파괴와 정반대다. 오히려 평화적이고 효율적이며 가치 창조적이다. 미사일의 목표 추적 알고리즘을 이용해 어린 아기를 돌보는 육아용 원격 헬스케어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으니까.

지난 23일 판교 테크노밸리에 있는 삼성테크윈 1층 대회의실. 국방과학연구소의 '육아용 원격 헬스케어 시스템'을 접하는 순간 개념마저도 모호하다는 '창조경제'가 머릿속으로 쏙 들어왔다. 우선 발상이 신선하다. 미사일을 영아와 연결하다니. 신뢰도 역시 높아 보인다. 미사일의 표적 추적 알고리즘에 기반한 감시 카메라가 아기들의 체온을 따라 움직이며 이상 여부를 감지해낸다. 아기가 고온이거나 계단 같은 위험지대를 향할 경우 경고를 발동한다. 확장성도 뛰어나다. 미사일의 다중목표 추적 시스템을 활용하면 요양원이나 어린이집에서도 활용이 가능하다.

얇은 귀에 들어온 군사기술 목록은 함정의 전투관리 체계를 응용한 온라인 해상전 게임에서 군사통신기술의 알고리즘을 재해석한 4G·5G 통신망까지 다양했다. 어뢰의 초음파 기술을 활용하면 시판제품의 절반 가격으로 교육·연구·의료용 액체물질 검색장비 개발이 가능하단다. 이런 것이 '창조경제'다.


민군기술 교류는 비단 창조경제를 위한 수단을 넘어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일찍이 선진화에 성공한 국가치고 민군기술 교류 및 융합을 등한시 나라는 없다. 군사기술을 통해 열강으로 부상하려는 프로이센의 열망은 2차 산업혁명(화학·철강)의 씨를 뿌리고 제조업의 절대 강자 독일을 탄생시켰다. 미국이 주도한 포디즘(대량생산 체제)도 19세기 중반 미 육군에 부품 간 호환이 가능한 소총을 납품하려던 엘리 휘트니(면화에서 씨앗을 골라내는 조면기 발명자로도 유명)로부터 싹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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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선박의 정확한 위치를 측정하는 해상시계를 개발하려는 경도위원회를 1714년에 설치하고 끈질긴 시계공 존 해리슨의 노력으로 1765년에야 이룬 결실을 해군과 상선대에 공유시킨 결과는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으로 나타났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마저 해상시계를 무려 22개나 장비한 체로키급 측량함(비글호)에 민간 전문가를 태웠던 영국 해군의 선진성과 개방성이 아니었다면 다른 나라의 다른 학자에 의해 소개됐을지도 모른다.

군사기술은 현대인의 생활에도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다. 설렁탕과 햄버거·샤부샤부는 몽골군의 야전 전투식량에서 나왔다. 하루가 바쁘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인터넷도 핵전쟁 상황을 대비하려고 구축한 다중 통신망을 미 국방성이 민간에 개방한 덕에 빛을 보고 퍼졌다.

한국도 국방기술에 의존해 제조업이 도약한 시기가 있었다. 안보와 수출, 산업구조 고도화를 위해 방위산업 육성책이 본격 시작된 1970년대 중반 이후 봉제와 의류를 주로 하는 경공업에 머물렀던 기업들은 방산물자를 생산하며 습득하게 된 엄격한 품질관리, 신뢰성 확보를 기반으로 품질 향상에 나선 결과 1980년대 3저 호황기를 내달렸다. 문제는 이후부터 암흑기에 들어섰다는 점. 민간기업의 기술이 축적되고 정부 주도형 개발이 상대적으로 힘을 잃은데다 국방 관련 연구기관의 정원이 묶이고 위상까지 떨어진 탓이다.

민군기술 협력의 시너지를 다시금 발현할 길은 장기투자와 인식 변화 두 가지에 있다. 단기 업적주의에서 벗어나 오랫동안 기다릴 수 있는지와 민군이 얼마나 제대로 협력할 수 있을지에 달렸다. 마침 환경은 좋은 편이다. 인터넷 환경이 뛰어나고 젊은 엔니지어들은 의욕에 넘친다. 융합과 소통을 위한 지원을 늘릴 때다. 서 말의 구슬을 꿸 기회다.

권홍우 선임기자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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