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행정기관에 대한 감사원 회계검사기능 이관과 재정제도 개혁을 추진하면서 감사원ㆍ행정부ㆍ지방자치단체 등과 갈등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는 헌법에 명시된 입법ㆍ행정ㆍ사법 등 3권 분립의 권력구조에 대한 논란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있어 논의과정이 주목되고 있다.
국회는 23일 기자회견을 갖고 오는 9월 관련 법 개정을 목표로 감사원 회계검사 이관과 재정제도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회는 이를 위해 각 준비기획단을 발족, 구체적인 실무검토와 법안 마련에 착수했다. 국회의 감사원 회계검사 이관 추진은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국회의장ㆍ여야대표 등과의 청와대 만찬모임에 이어 지난 2일 국회 국정연설에서 재차 약속한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직속 기관인 감사원과 행정부, 지방자치단체들은 국회의 이 같은 움직임에 공식적인 입장표명을 유보하고 있지만 각 기관들의 조직ㆍ예산ㆍ위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일부 기관의 경우 국회가 현실을 도외시한 채 명분만 앞세워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나타내거나 불쾌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특히 자체 의회를 두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지방자치제 정착에 배치된다며 국회 국정감사를 거부해온 점을 고려할 경우 국회의 행정기관 또는 예산 통제권 강화는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는 감사원 회계검사 기능의 완전한 국회이관은 헌법개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현 단계에서는 현행 법의 테두리 내에서 국회 결산심사와 국정감사ㆍ조사의 내실화를 위한 회계검사 기능을 수행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이를 위해 국회법을 개정, 국회가 안건심의 등을 위해 필요한 경우 `특정사안`과 관련된 계에 대한 조사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국회의 상임위원회는 그 의결로 국회 소속 공무원이 회계조사를 하되 결산심사를 위한 경우에는 정례적으로 회계조사를 실시하는 방안을 강구하기로 했다.
또 회계조사시 감사원에 대해 직원파견을 요청할 수 있고 필요시 경험있는 전문가를 조사보조자로 위촉할 수 있도록 해 이들과 공동으로 회계조사를 실시하는 한편 공인회계사 등 자체 전문인력 충원을 연차적으로 확대해 나간다는 구상이다. 감사원법도 개정, 감사원이 정부산하기관을 비롯한 모든 감사대상기관의 회계에 대한 검사결과와 국가 중요사업에 대한 감사결과를 국회에 보고토록 의무화할 계획이다.
정진용 국회 사무처 입법처장은 “회계검사기능은 감사원에 전속된 사항으로 보기 어렵고 국회도 결산심의권과 국정감사ㆍ조사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기 위한 보조수단으로 특정사안에 대한 회계검사를 할 수 있다”며 “지난 94년 국회 내무위의 공직자 세정비리사건 국정조사 때 회계검사를 한 사례도 있다”고 주장했다.
감사원은 이에 대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중 대부분이 감사원을 독립기관화하고 있고 8~9개국이 법 규정에서 형식적으로 의회소속으로 두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조직과 예산, 감사에서 독립성을 확보하고 있다”며 “감사원을 대통령 직속 또는 국회소속으로 두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독립성을 확보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우리나라는 직무감찰기관과 회계검사기관이 분리운영돼오다 업무효율성을 고려, 지난 63년 감사원으로 통합됐다”며 “회계검사는 국회, 직무감찰은 감사원이 맡는 이원 감사체계가 될 경우 중복감사에 따른 업무부담 가중으로 일선기관들의 반발이 거세질 것”이라고 밝혔다. 감사원은 대안으로 올해부터 도입된 감사원에 대한 국회 감사청구권을 확대하고 감사원의 공공기관 및 그 소속기관 감사결과 전면 공개, 보강된 결삼심사 보고서의 국회 제출 등을 통해 국회 의정활동을 적극 돕는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국회는 국회 감사청권 확대는 권위주의 정권시절 산물로 국회에 대한 행정부 우위 폐단을 없애기 위해 감사의 주체를 감사원에서 국회로 옮긴다는 취지에 어긋난다며 반대하고 있다.
<회계검사란>
행정 각 부처와 그 산하기관이 세입ㆍ세출을 제대로 집행하고 있는지 전반적으로 감사하는 것을 말한다. 현행 헌법 97조에는 `국가의 세입세출의 결산, 국가 및 법률이 정한 단체의 회계검사와 행정기관 및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감찰을 하기 위하여 대통령 소속하게 감사원을 둔다`고 규정, 회계검사와 직무감찰은 대통령 직속의 감사원이 전담하도록 명문화하고 있다. 그러나 감사원 회계검사는 행정부 예산집행을 자체 감사하는 것으로 과거 행정부 우위의 권위주의 정권 유물이라며 민주주의 기본원칙인 3권 분립 정신에 입각, 국회가 정부의 예산집행에 대한 실질적인 견제기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회계검사 기능을 감사원에서 국회로 이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왔다. 국회가 정부의 세입ㆍ세출 집행을 감독하도록 함으로써 국회가 명실상부하게 국가예산 심사ㆍ통제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국회가 회계검사권을 갖게 되면 정부의 예산낭비를 줄일 수 있고 국회 결산심사 기능을 강화, 주먹구구 예산편성을 막을 수 있다.
<구동본기자 dbkoo@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