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에너지 특집/기고] 서울대 경제학부 이승훈 교수

2000년 1월 초가되면 전력거래소가 가동하고 있어야 하는데 관련법 개정은 아직도 지지부진하다. 가장 기본적인 법적 토대도 마련되지 못한 터에 무슨 가시적 개편조치가 가능할까? 민영화가 국부유출로 귀결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상당수의 의원들이 주저한다고 한다. 또는 구조개편 뒤 전력요금 인상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염려도 없지 않다고 들린다.발전자회사의 민영화에 외자의 참여가 불가피한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이미 외자는 참여하고 있다. 외국인 주주는 차치하더라도 한전은 100억달러에 가까운 외채를 들여와서 발전소를 건설해 왔다. 일부 발전자회사의 민영화는 외채로 건설한 발전소를 직접투자형태로 바꾸는 작업에 지나지 않는다. 새삼 국부 유출을 걱정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별 문제 없이 잘 운영되는 전력산업에 새삼 경쟁이 필요한 까닭이 뭔가라는 것이 적지 않은 사람들의 인식인 것 같다. 현재의 한전체제는 과연 잘 운영되고 있는가? 쓰는데 큰 불편이 없고 요금도 크게 비싸지 않으면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별 다른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한전은 일단 합격점수를 받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원자력과 수화력 등 다양한 발전기를 사용해 경제급전(經濟給電)을 하면 소요연료비를 최소화한다. 수시로 변하는 부하와 조류형편에 맞게 그때그때 계통을 관리하여야 계통안전이 보장된다. 이 두가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지휘체계를 일원화한 것이 현재의 한전체제이다. 과거의 기술로는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컴퓨터와 통신기술의 발달은 전력산업에도 혁신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독점아닌 경쟁체제에서도 경제급전과 계통관리가 가능해 진 것이다. 잦은 정전, 그리고 불안정한 전압과 주파수는 금방 눈에 띈다. 그러므로 어느 체제에서나 계통운영자는 계통관리에 만전을 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경제급전의 성과는 이만큼 가시적이지 못하다. 실제로 현실의 독점사업자가 반드시 경제급전하는 것은 아니다. 독점사업자인 한전의 전력요금은 정부 규제의 대상이다. 6%를 밑도는 투자보수율만을 보장하는 수준의 전기요금이 허가되어 있다. 경제급전을 하고 경영효율을 도모하면 단기적으로 이윤을 남길 것이다. 그러나 이 이윤이 허용된 투자보수율을 넘치는 순간 요금은 인하되고 만다. 반대로 눈에 띠지 않는 방만한 경영으로 손실이 발생한다고 하자. 일정한 이윤이 보장되려면 결국 요금에 전가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시스템 속에서 한전이 무엇 때문에 경영효율 향상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는가? 경제급전을 하려면 번거로운 작업이 많이 따른다. 전력사용량이 급속히 증가하는 시간대에는 아무리 급하더라도 가장 경제적인 발전기를 찾아서 기동시켜야 하는데 그 시점의 조류형편을 고려하여야 한다. 동시에 정기적으로 발전기의 열효율곡선을 점검함으로써 관련 기술자료를 정확하게 상비하고 있어야 한다. 노력의 결과 절감한 비용이 나의 이윤으로 된다면 누구나 기를 쓰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애쓴 성과가 나의 이윤과 무관하면 어느 누구도 사서 고생하려 할 유인이 없다. 각국의 구조개편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은 놀랍게도 모든 나라에서 전통적 독점사업자의 계통운영방식은 경제급전과 거리가 멀었다는 점이다. 한전이라고 다를까? 경제급전을 실시하면 분명히 발전원가를 절감한다. 그러나 현재의 제도는 한전이 경제급전할 유인을 원천적으로 박탈해 놓은 상태인 것이다. 이윤도모가 목적인 경쟁체제라면 모든 발전사업자가 스스로 경제급전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강도 높은 경제급전과 안전관리를 추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6%에도 못미치는 투자보수율에 묶여 있는 현행 전력요금은 부당하게 낮다. 경쟁체제의 보수율은 명백히 이보다 더 높게 결정될 것이므로 구조개편 뒤에 요금이 인상될 것이라고 우려할 만하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경영혁신은 훨씬 더 큰 비용절감의 효과를 불러 온다는 것이 각국의 선례이다. 전력산업구조개편은 올바른 방향을 지향하는 개혁이다. 더 이상의 지연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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