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과 세상] 옛 그림으로 풀어낸 우리 역사와 문화

■ 한국학 그림과 만나다 (정민·김동준 외 지음, 태학사 펴냄)<br>'문헌과 해석' 한국학 연구자 27명 참여<br>한문학서 복식사까지 입체적으로 분석


'탐라순력도' 중 '귤림풍악'

제주 관아 단청그림. 당시로서는 귀한 과일인 귤을 던져 주며 여성들에게 자신을 과시하는 모습. 오렌지족의 옛 모습이라 할 만하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인기드라마 '성균관스캔들'은 조선조 정조임금 시절이 배경이었다. 드라마에서 정조는 성균관 유생들에게 과거시험을 보게 하고 성적이 좋은 유생들에게 귀한 감귤을 하사했다. '황감제(黃柑製)'라는 이 시험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내용이다. 그림을 따라 이 시절의 역사로 들어가 보자. 김남길이라는 18세기 화가가 남긴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의 한 장면인 '귤림풍악(橘林風樂)'이라는 그림이다. 감귤을 수확하는 제주 감사는 종묘(宗廟)에 진상할 준비에 음력 9월부터 속을 태웠다.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귤은 귀한 과일이었고 '문화적 네트워크'를 이룰 만큼 특별했기 때문이다. 그림의 배경은 제주 관아 북쪽의 북과원(北果園). 제주 목사 이형상(1653~1733)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중심으로 선비와 기녀들이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귤나무 사이로 선비들도 보이고 주변은 대나무가 방풍림처럼 둘러싸고 있다. 앞쪽에 위치한 두 건물의 현판이 눈에 띈다. 화면 왼쪽 망경루(望京樓)는 북쪽에 계신 왕을 사모한다는 뜻이고 그 옆 귤림당(橘林堂)은 국토 남쪽 끝에서 맑은 과일을 바친다는 '충정'을 상징한다. 그림 하단에는 1702년 임오년 제주 고원에서 수확한 귤의 수량이 상세하게 적혀있다. 한국한문학을 전공한 김동준 이화여대 교수는 옛 시와 그림 속에 등장하는 귤을 좇아 정조 임금이 하사한 '귤 술잔', 이른바 귤배(橘杯)의 정체를 찾아간다. 김 교수는 "툭하면 귤배를 하사한 정조의 의도는 맑은 향기를 품은 귤을 닮으라는 의도일 수도, 껍질까지도 아끼는 재활용의 슬기가 배어든 것일 수도 있다"고 풀이한다. 뿐만 아니라 정조는 귤잔에 새긴 잠언이라는 뜻의 귤배명(橘杯銘)이라는 독특한 글을 통해 제왕의 여유와 포용을 아끼는 신하에게 전했다. 비록 귤배의 모습을 그린 그림은 없으나 저자는 다양한 문헌을 통해 그 모양은 물론 향기까지 머릿 속에 그려낼 수 있게 해 준다. 이 책은 학술단체인 '문헌과 해석'에서 활동 중인 젊은 한국학 연구자 27명이 필자로 참여해 완성했다. 계간지 '문헌과 해석'의 50호 발간을 기념해 기획된 것이니 13년의 이상의 내공이 응축된 것이다. 한국학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필진들은 한문학ㆍ역사학ㆍ언어학ㆍ미술사학은 물론 군사학ㆍ연극사ㆍ복식사 등을 고루 아우른다. 가령 정조의 화성 행차를 기록한 '화성성역의궤' 와 '화성능행도병'은 역사학(김문식)과 미술사(유재빈), 서지학(옥영정)의 다각도 분석을 통해 입체적이고 풍성한 역사를 보여준다. 고려시대 수월관음도의 투명성(김선영)에서 지혜와 담(淡)의 미학을 볼 수 있는가 하면 다산 정약용이 부정(父情)으로 그린 매조도(梅鳥圖) 두 폭(정민), 고문서를 통해 본 조선시대 외무고시(정승혜), 400년 전 화가의 눈에 비친 북악과 숙정문(진준헌) 등 시대와 주제를 넘나드는 이야기들이 종횡무진 펼쳐진다. 학문 간 통섭을 추구한 학술 논문이되 일반인이 읽기 편하게 분량은 짧게, 소재는 참신한 것으로 엄선해 대중과 소통할 접점을 잘 잡아냈다. 3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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