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연말 축제/유재용 소설가(로터리)

한해의 끝, 12월말의 며칠은 덤 같은 느낌을 안겨준다. 이미 12월에 들어서면 사람들의 마음은 들뜨기 시작한다. 무엇인가 인정받을 만한 업적을 이루어놓은 사람은 자신에게 유급휴가를 주고 싶은 심정으로, 실패를 거듭했던 사람은 좌절감을 털어버리고 싶은 심정으로, 또 특별한 계획도 포부도 없이 그럭저럭 한해를 보낸 사람은 그 타성에서 뛰쳐나가고 싶은 심정으로 들뜸에 동참하려 한다.그것은 소용돌이나 물결을 이룬다. 소용돌이는 흡입력이 제법 강하고, 물결은 만만히 보면 안될 만큼 거칠 수도 있다. 그러나 소용돌이에 휘말려들어가 질식할까봐, 물결에 휩쓸려 쓰러질까봐 기우할 필요는 없다. 우리의 생활은 때때로 일탈을 필요로 한다. 우리 삶은 알게 모르게 크고 작은 조직과 규범 속에 묶여 있다. 그 조직과 규범은 우리 삶에 꼭 필요하되 때때로 억압이 되어 숨을 막히게 하기도 한다. 따라서 어쩌다가 하는 일탈은 지치고 고단한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휴식과 통한다. 축제의 필요성과 존재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 이렇다 할 축제가 없다. 온국민의 관심을 모으고, 신들린 듯 열중하게 하고, 의식의 갈피갈피에 때처럼 끼고 오물처럼 고인 찌꺼기를 말끔하게 태워 없애 정신을 단단하고 순수한 쇠나 정금으로 만들어내는 큰 용광로 같은 축제가 없다. 지난번 어느 지방도시에서는 욕대회가 열렸다고 한다. 욕은 정신의 찌꺼기다. 정신의 구석구석에 쌓여가는 찌꺼기를 욕으로 토해내는 것이다. 우리 전통문화로 인정된 탈출마당놀이에는 천민이 중과 양반을 희롱하고 욕하는 장면이 있다. 양반과 서민의 구별이 엄격하던 왕정시대에 공인된 서민들의 축제였다. 일탈에 대한 사회적 수용이었다. 연말의 며칠은 어차피 쓰고 남은 날들과 같다는 느낌을 안겨준다. 연말을 조용하게, 반성하는 마음가짐으로 지내자고 아무리 강조해봤자 사람들의 들뜨는 마음에 별다른 호소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럴 바에야 추수 끝난 논바닥에서 주운 이삭을 모아 떡을 만들어 먹듯 연말의 며칠을 건전한 일탈의 축제로 꾸미면 어떨까. 더욱이 올해와 같은 우울한 연말에는 침체한 국민정신을 일깨워 일으킬 수 있는 건전한 한마당축제가 신나게 벌어졌으면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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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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