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기봉 지음, 농촌의 풋풋함과 고단함 노래"포도나무는 내 어머니이고 누이이고 처이며, 내 자식이다." 포도 농사꾼이며 시인인 류기봉은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의 시 '포도의 아이'에서도 "포도나무는 내 계집이고 몸이고."라며 포도와 자신의 숙명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포도나무는 또한 아무 것도 아니고.내 뒤통수"라고 쓴다. 뜨겁지만 무덤덤하게.
시인은 인생을 지혜롭게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 듯하다. 199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시인은 가업을 이어받아 벌써 십 수년째 포도농사를 짓고 있다. 그래선지 그의 시에는 농촌의 풋풋함과 함께 고단함이 짙게 배어있다.
"간밤에 내린 눈은 비틀거리는 저 소나무 바라보면 내가 소나무로 휘청이고."('겨울 장현리에서') 이처럼 눈의 무게에 못이기는 소나무의 무게 만큼이나 시인을 포함한 농촌의 삶의 중압은 육중한 것이다.
그래도 류기봉은 희망의 끈을 절대로 놓지 않는다. 왜? "그 여자의 몸(포도나무) 속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가 내 아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으니까. 이제 한 해 포도농사를 끝낸 시점, 시인은 새 희망을 키우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