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컨설팅] 시그나의 리엔지니어링 전쟁

약 200여년의 기업 역사를 가지고 있는 시그나는 생명보험, 손해보험을 모두 취급하는 보험 전문 그룹이다. 1997년말 기준 총자산 1,110억 달러, 연간 보험 매출이 150억 달러에 달하며, 3,700여 기업이 경쟁하는 미국 보험업계에서 5위안에 드는 거대 기업이다. 98년 현재 보험관련 13개 사업부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5만5,000여명의 종업원이 70개이상의 국가에서 보험 상품과 관련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시그나의 기원은 17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792년에 선박·화물 보험회사로 출발한 INSURANCE COMPANY OF NORTH AMERICA가 그것이다. 이후 1865년에 설립된 생명보험 전문회사인 CONNETICUT GENERAL과 합병함으로써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한다. 시그나란 명칭이 사용된 것은 두 기업이 합병한 1982년부터다. 이후 미국 경제의 성장과 함께 수많은 인수 합병과 건강, 연금보험 등 신규 시장 진입으로 사업 규모를 확장하여 왔다. 하지만 시그나의 성장 과정 역시 순조로웠던 것만은 아니었다. 1980년대 후반들어 미국 경제가 전반적 불황에 빠져들면서 회사의 전체 수익이 수년간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가 지속되었던 것이다. 특히 테일러(W.H. TAYLOR)가 최고경영자(CEO)로 부임했을 때인 1988년에는 전년도에 비해 수익이 11%나 격감하는 위기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는 1987년을 기점으로 보험 시장의 주기적인 수익성 흐름이 하향 곡선을 타고 있는데도 일부 기인했지만 더 큰 문제는 시그나 내부에 있었다. 제1차 리엔지니어링 회사 전체적으로 과거의 성장 실적에 도취되어 고객 니즈나 시장 움직임에 대한 파악을 게을리하고 있었다. 본사 스탭 조직은 잉여 인력으로 넘쳐 났으나 현장 영업조직은 왜소해져만 가는 등 비대해진 조직의 전형적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를 해결하고자 진행된 빈번한 조직 개편으로 핵심 언더라이팅(UNDERWRITING) 인력들이 경쟁업체로 빠져나가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더욱이 보험영업의 핵심 프로세스인 보험 대리점 관리, 언더라이팅, 클레임 처리 영역에서 치명적인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었다. 수익성 있는 고객 확보, 보험 계약 유지를 위해서는 우수한 보험대리인을 선택하고, 개발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시그나는 매출 중심의 외형성장 전략으로 보험 대리인의 질보다는 양적 확대에 치중해 수익성 없는 보험대리인들로 넘쳐났다. 언더라이팅의 질은 보험업의 주요 성과 지표인 결합비율(COMBINED RATIO)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이었지만 시그나에서는 위험에 대한 평가없이 단순히 보험계약을 심의하는 선에서 언더라이팅이 이루어졌다. 이로 인해 보험 매출은 증가되었지만 클레임의 빈도 역시 증가하게 되어, 회사 전체의 수익은 악화되고 있었다. 클레임 서비스의 경우에도 담당자들의 역량 부족으로 인해 또는 고객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 과다한 보상금을 지급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때마침 미국 전역에 불어닥친 리엔지니어링 열풍과 함께 시그나도 리엔지니어링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군살빼기 경영 1989년 시그나는 각 사업부문의 리엔지니어링을 추진하기 위해 시그나 내에서 5~10년간의 다양한 경험을 소유한 10여명의 핵심 인재로 리엔지니어링 그룹을 조직했다. 이들의 지원아래 우선 재보험 사업부문인 CIGNA REINSURANCE의 리엔지니어링을 실시했다. 벤치마킹 결과에 의하면 경쟁사는 동일한 인력을 가지고 10배의 사업 규모를 운영하고 있었다. 리엔지니어링의 방향은 업무 프로세스를 효율화하고, 조직 구조를 개선하며, 관리 시스템을 자동화함으로써 조직의 군살을 제거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이에 따라 관리 업무 부서를 고객 서비스팀으로 재구축하고, 운영 시스템의 수를 17개에서 5개로 대폭 축소하였다. 그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스탭의 수를 50% 감축하고, 운영 비용을 40% 절감하는 성과를 보인 것이다. 이러한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 영업법인인 CIGNA INTERNATIONAL도 영국을 시작으로 칠레, 일본 등 대부분의 지역으로 리엔지니어링을 확산시켜 나갔다. 특히 영국의 경우 관리업무, 클레임, 회계, 마케팅, 세일즈, 언더라이팅 등 6개의 주요 프로세스를 판매전, 판매후 프로세스로 통합하고 각각을 담당하는 자율 경영팀을 구축하였다. 의사결정 권한을 자율 경영팀으로 이관하여 이들이 고객 서비스의 시작과 끝을 모두 담당하도록 했다. 그 결과 비용절감 30%, 고객 만족도 50% 향상, 보험 증권 송부일수 단축(17일→2일), 일인당 클레임 처리건수 증대(35건→80건) 등의 성과를 올렸다. 이같은 소규모 사업부문의 성공을 바탕으로 1989년부터 1993년까지 모든 사업부문이 제1차 리엔지니어링을 실시하여 비대해진 조직의 군살을 제거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시그나 자체 평가에 의하면 리엔지니어링을 통해 전사적으로 1억달러이상의 비용절감 효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제2차 리엔지니어링 그러나 전 사업부문에 걸친 리엔지니어링 노력과 뛰어난 성과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업부문의 수익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그것은 리엔지니어링 노력이 소규모 사업부문과 지원부문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며, 개선 내용이 비용 절감과 서비스 향상 등과 같은 운영상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화재, 선박 보험 등 손해보험을 담당하는 사업부문인 CIGNA PROPERTY & CASUALITY(이하 시그나 P&C)의 경우 1989년부터 1993년까지 누적 적자가 10억달러에 달했으며, S&P의 기업평가도 A에서 BBB+로 하향 조정되는 수모를 겪고 있었다. 또 대규모 자연재해와 1992년의 LA 폭동 등으로 화재보험의 주요 성과지표인 결합비율이 140%에 이르러 회사의 손익 구조가 심각한 위기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결합 비율이 140%라는 것은 100원의 보험료를 받아 보험금과 제반 비용으로 140원을 지출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응하여 진행한 비용 절감, 다운사이징 등 제1차 리엔지니어링 시도는 오히려 경쟁업체로 우수한 대리점과 인력들을 빼앗기게 되고, 전체 구성원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시그나는 사업의 성장과 수익성을 제고하기 위해 새로운 차원의 리엔지니어링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위기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 경쟁업체로부터 제럴드 아이솜(GERALD ISOM)을 스카우트하여 1993년말부터 제2차 리엔지니어링에 돌입하였다. 이는 핵심 역량 확보, 매니지먼트 프로세스 재구축 등을 통해 근본적인 「조직 변신(TRANSFORMATION)」을 시도하는 과정이었다. 핵심 역량 확보 시그나 P&C의 최고경영자로 부임한 제럴드 아이솜은 우선 「최고 수준의 전문 손해보험사가 된다」는 비전을 설정하고 사업 영역을 재정의하는 데서 출발했다. 지금까지 모든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제네럴리스트(GENERALIST)형 영업에서 탈피하여 18~20여개의 특정 고객 세그먼트를 대상으로 하는 스페셜리스트(SPECIALIST)형 영업패턴으로 전환하였다. 즉 매출 확대 등 외형 중심의 사고 대신에 수익성 중심으로 활동의 초점을 바꾼 것이다. 동시에 고성과 전문조직이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역량이 무엇인지, 비전을 실현시킬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를 찾아내고자 했다. 광범위한 산업분석 및 경영진단을 통해 가격 경쟁력, 언더라이팅 역량, 계약·클레임 서비스, 대리점 관리, 운영 효율성 등의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판단에 근거하여 시그나 P&C는 기존의 대리점에 대해 손해율, 미래 수익 잠재성 등을 평가하여 4,000여개의 보험대리점을 1,000개로 감축하고, 우수 대리점과의 협력적 관계를 높이는데 주력하였다. 특히 언더라이팅의 질을 사업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역량으로 인식하고 언더라이팅 역량 강화를 위해 모든 노력을 집중했다. 이를 위해 위험을 평가하고 적정 보험료를 결정하기까지의 29단계의 바람직한 언더라이팅 프로세스 맵을 작성하고 이를 표준화했다. 일선의 언더라이팅 담당자들이 보험 계약이 이 표준에 맞는지를 스스로 평가하는 과정에서 언더라이팅 역량을 높이도록 했다. 또 고객 클레임 처리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이를 리얼타임으로 피드백함으로써 언더라이터의 위험 평가능력을 향상시켰다. 매니지먼트 프로세스 재구축 시그나 P&C의 제2차 리엔지니어링의 핵심은 매니지먼트 프로세스(MANAGEMENT PROCESS)를 재구축한 데 있다. 매니지먼트 프로세스는 앞서 설정된 비전과 전략이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지, 모든 사업 단위와 구성원들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경영관리 메카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시그나 P&C는 하버드대학의 카플란(KAPLAN) 교수와 르네상스 솔루션의 노턴(NORTON) 박사가 공동으로 개발한 BALANCED SCORECARD(이하 BSC)를 적용하였다. 이를 활용하여 최고경영자 또는 조직 단위장이 현재의 사업 진행상황에 대해 반드시 체크해야 하는 경영관리 포인트를 명확히 설정하였다. 이와 연계하여 각 사업단위와 구성원들에 대한 성과평가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조직의 장기적 비전, 전략과 개인적 목표를 정합성있게 연결짓도록 했다. 시그나 P&C는 BSC의 구축을 위해 비전과 전략으로부터 「재무적 수익성 향상」, 「보험 계약자 만족」, 「수익성 있는 보험 계약」, 「직원 역량 증진」 등 재무, 고객, 내부 프로세스, 학습의 네가지 측면에서 전략적 목표를 설정하였다. 다음에는 「우리가 이 목표를 달성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각 목표를 측정할 수 있는 성과지표를 산출해냈다. 특히 보험업은 보험계약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시점과 사고가 발생하여 보험금이 지급되는 시점사이의 긴 지연 시간이 주요한 특징의 하나이다. 이를 반영하여 시그나 P&C는 전략적 목표의 최종 결과로 나타나는 성과지표(LAG INDICATORS) 뿐만 아니라 미래의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성과 동인에 대한 지표(LEAD INDICATORS)를 동시에 도출하였다. 이처럼 재무-고객-내부-학습간의, 결과-성과 동인간의 「균형 잡힌」 시각으로 조직을 관리함으로써 단기적인 재무 성과에 얽매이지 않고 장기적인 기업 성장을 추구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개발된 BSC를 사업계획 수립 및 보상 시스템과도 연결시켜 하부 사업 단위 및 구성원들이 조직 전체의 전략적 목표를 위해 전념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와 함께 BSC상의 목표 달성도에 대한 지속적인 점검이 가능하도록 정보지원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성과 평가 시스템이 비전 실현의 효과적인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같은 1년6개월에 걸친 제2차 리엔리지어링의 결과는 시그나 P&C의 재무적인 성과로 곧바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1993년 140%이던 결합비율이 1994년 121%로, 1996년부터는 110%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해 목표인 100%에 다가서고 있다. 투자수익을 포함한 경상이익 역시 1993년 5억달러, 1994년 2억달러의 적자를 보이다가, 1996년부터는 2억달러이상의 흑자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A.M. BEST의 평가에서도 1995년 BB+에서 A-로 평가등급이 상향 조정되었다. 이 기간 동안에 CONTINENTAL CORPORATION, HOME HOLDINGS INC. 등과 같은 타 보험사들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흡수 합병되거나 파산한 것과 대비하면 눈부신 성과였다. 시사점 이처럼 시그나는 비용 절감이나 다운사이징 같은 운영상의 개선을 넘어 기업의 근본적인 체질을 바꾸는 조직 변신 과정을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위기를 무난히 극복할 수 있었다. 시그나의 사례는 IMF라는 유례없는 경영 위기상황에 직면하여 가혹한 구조조정을 실행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기업의 성장과 함께 한번쯤 보험이외의 타 사업영역으로의 진출을 고려해보았음직도 하지만 시그나는 보험업에만 몰두해 왔다. 보험업의 특성으로 치부될지는 모르지만 올곧게 한 우물을 팠다는 얘기다. 아울러 현재 수행하고 있는 사업에서의 성공요인이 무엇인지를 밝혀내고 여기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생존과 성장의 기본 조건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둘째, 핵심역량 확보를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가진 지식(KNOWLEDGE)을 공유하게끔 학습 조직을 구축하는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그나가 클레임 처리 관련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여 언더라이터의 위험관리 역량을 높인 것은 좋은 예이다. 이렇게 고객과 최일선에서 접하는 조직 구성원의 학습 역량을 배양함으로써 시장, 고객의 니즈 변화에 발빠른 대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조직 변신의 과정은 일시적인 유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업이 생존하고, 장기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고, 지속적으로 수행되는 과정이어야 한다. 시그나가 제1차 리엔지니어링의 성과에 만족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성공은 보장받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시그나는 제1, 2차 리엔지니어링에서 승리함으로써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러나 시그나에서의 리엔지니어링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재무담당 임원 짐 스튜어트(JIM STEWART)의 말은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朴仁浩 서울대 경영학과 서울대 경영대학원 LG경제연구원 컨설턴트(현)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