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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회의 뿌리, 유럽 수도원을 가다] <상> 성 오틸리엔 수도원

금욕… 검소한 식사… 기도… 낭독… 노동… 성 베네딕도 정신 지금도 그대로<br>수도사 100여명 1,400년된 규칙서 지키며 생활<br>김대건 신부 유해 안치 등 한국과 인연도 각별

독일 바이에른주 수도인 뮌헨에서 고속도로를 한시간 가량 달리면 성 오틸리엔(Saint Ottilien) 수도원이 나온다. '유럽 수도회의 시조' 베네딕도(480~547) 성인의 정신에 따라 설립된 베네딕도 수도회의 대표 수도원 중 하나다.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상(像)을 성당의 성인으로 모시고 있을 정도로 한국과의 인연이 각별한 곳이기도 하다. 유럽문화의 근간은 사실상 중세 시대에 이뤄졌다. 현재 유럽문화를 이해하려면 중세 유럽의 종교를 이해해야 한다. 중세는 가톨릭의 시대였고 가톨릭 교회의 뿌리는 수도원이다. 중세 시대 수도원은 독일과 프랑스ㆍ영국ㆍ이탈리아 등 유럽의 신앙과 문화와 교육의 산실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고대부터 내려온 문화유산을 정리하고 보존하는 것, 학교를 설립해 아이들에게 읽고 쓰는 것을 가르쳤다. 또 농사를 지으며 농업기술을 증진시켰고 각종 공방도 운영해 기술 발달에 크게 기여했다. 의술을 베푸는 것도 수도원이어서 약초재배는 필수였다. 수도원은 담장 밖에 사는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사회단체이기도 했다. 가톨릭 수도원이 중세를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정착된 출발점은 베네딕도 성인이 활약한 서기 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전까지 수도원은 하나하나가 별개로 존재했고 수도사들은 지금처럼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떠돌았으며 수도생활 방식도 모두 달랐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어렵고 힘든 시기에 어떻게 살면 되느냐"는 질문은 베네딕도 성인에게 물었고 그는 은둔 수도만이 최선이 아니라고 깨닫게 돼 서기 540년 공동 수도 생활의 기본이 되는 유명한 베네딕도 규칙서를 만든 인물이다. 서론까지 포함해 총 74장으로 구성된 이 규칙서를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 '기도하고 일하라'(or et labora)다. 금욕을 우선으로 했고 검소한 식사, 그리고 기도와 낭독, 노동을 원칙으로 했다. 수도사들은 수도원을 벗어나지 말라고 했으므로 한곳에 정주(定住)하게 됐고, 노동의 원칙과 자급자족의 원칙이 연결되니 농사를 직접 지어야 됐다. 동행한 한국천주교주교회 이정주 신부는"유럽 수도원의 70~80%가 바로 이 베네딕도 수도회 소속"이라고 말했다. 1884년에 세워진 성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느낀 것은 100여명의 수도사들이 베네딕도 규칙서를 1,4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온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곳 수사들의 할 일과는 기도와 노동의 반복이었다. 순례자의 집과 성당, 학교, 정원, 밭과 농장, 180마리의 소를 키우는 축사(畜舍), 트랙터가 한곳에 공존했고 아침과 점심, 저녁 그리고 밤까지 이어지는 하루 5~6번의 수도사들의 미사가 있었다. 이곳에서 10년째 생활하고 있는 마우로 블로머(Mauro Blommer) 수사는 "우리는 수도사가 되기 전에 ▦가난하게 살겠다 ▦결혼하지 않겠다 ▦순종하겠다 등 3가지 서약을 하고 그것을 죽을 때까지 지킨다"고 말했다. 고독과 노동과 기도가 그의 얼굴에서도 묻어났다. 수도사들은 금욕적으로 생활하며 매일 기도하고 또 한가지 일을 맡아 해야 한다. 인쇄기가 도는 곳에서 만난 치릴 쉐퍼 수사는 "나의 경우 출판 일을 맡고 있다"고 소개했다. 중세 시대 수도원이 자리를 잡자 똑똑한 중세 영주들은 자신의 영토에 낙후된 곳이 있으면 수도원을 세우게 하고 땅을 넉넉히 할당해 주었다. 그러면 사제와 수녀들이 비옥한 땅으로 개간했고 인근을 아담한 마을로 바꾸어갔다. 유럽에 수도원이 없었다면 전쟁에 집중했던 왕들이 문화를 일굴 수 없었고 결국 현재 유럽의 학문과 예술은 지금과 다른 모습이 됐을 것이라는 게 유럽 전문가들의 얘기다. 이정주 신부는 "700여년간 유일했던 수도회인 베네딕도 수도회도 부유해지면서 부작용이 나타나자 수도회 내부에서 많은 수도원 운동이 일어났고 그 중 13세기에 출현해 '청빈한 삶'을 지향하는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유럽 수도원 문화의 또다른 분수령이 된다"고 설명했다. 유럽 종교와 문화의 뿌리인 수도원은 동시에 가톨릭의 쇄신과 개혁 중심지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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