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재난 수준' 재난교육


"막 뛰어서 도망가면 돼요" 등굣길 초등학생들에게 '정답'을 찾으려 한 게 욕심이었을까. '지진이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돌아온 장난기 어린 답변이다. 그냥 천진난만함으로 보기에는 마음이 무겁다. 이웃나라에서 벌어진 재앙이 너무나 파괴적이기 때문이다. 기자의 시계를 초등학생 때로 돌려봐도 재난 대처 지식은 일천하다. 교육이라고 해봐야 민방위 훈련 시 책상 아래에서 선생님 눈치를 보며 떠들던 게 전부였다. 시간은 20년이나 흘렀건만 학교 현장에서 재난교육은 여전히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 실제로 현재 교육 당국 차원에서 재난교육 내용이나 교육 시기 및 기간ㆍ방식 등에 대해 제시하는 구체적 가이드라인은 없다. 대응 매뉴얼을 확실하게 갖춘 학교도 많지 않다. 그나마 교과부가 15일 '전국 초중고교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자연재난 발생 시 대처법 등에 대해 교육을 실시하게 하라'는 긴급공문을 시도교육청에 시달했지만 이 역시 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일시적인 계기교육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렇듯 부실한 재난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성인이 되면 '동네에 재난 대피소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가'라는 질문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일본의 경우 취학 전과 후 학교나 관련 기관에서 정기적으로 재난 체험 교육을 받는다. 지진발생 시 반사적으로 머리를 감싸고 책상 밑으로 들어가는 일사불란함과 고정되지 않은 물체로부터 몸을 피하고 헬멧을 챙겨 쓰는 침착함은 어린 학생부터 성인까지 이어지는 재난교육 덕에 가능한 것들이다. '한국은 지진이나 화산폭발 가능성이 낮은데 호들갑 떤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한번의 재난이 가져올 피해의 수준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만에 하나'에도 촉각을 곤두세우며 오랜 시간 대처해온 일본도 이번 대지진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쓰러지지 않았던가. 중국ㆍ아이티 지진 때에도, 지난해 연평도 포격사건 때에도 '재난 교육 강화'는 반짝 이슈로 부각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일본 대지진과 관련한 국내 재난교육의 부실함을 지적하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안전의식이 불감증에 빠져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진이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2~3년 후 등굣길 초등학생들에게 이 질문을 던졌을 때도 지금과 같은 답변이 돌아온다면 그 사실 자체가 재앙이다. 재난 교육의 정규 과목 편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체계화된 교육 프로그램으로 '만에 하나'에 대비하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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