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6월 11일] 한국은행이 '해야 할 일'

얼마 전 한국은행 창립 60주년 기념 국제 콘퍼런스가 있었다.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와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원인과 위기재발 방지를 위한 국제공조 등 중앙은행이 직면하고 있는 도전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다. 특히 중앙은행의 새로운 역할에 관한 논의도 있었다. 이번 금융위기를 계기로 중앙은행의 역할이 물가ㆍ금융 안정을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것으로 바뀌게 됐다는 것이다. 물가·금융안정 '두토끼' 잡기 영란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위원회가 그렇듯 중앙은행은 원래 금융위기 방지를 위해 설립됐다. 물가안정은 그 후 금융안정의 책무 위에 접목된 것이었다. 그런데 왜 그동안 중앙은행들은 물가안정에만 주력해왔을까. 2차대전 후 세계적 물가앙등 때문에 중앙은행들이 물가안정을 중요한 책무로 인식하게 된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이들은 지난 1980년대 들어 세계적인 저물가체제가 시작된 이후에도 통화정책 목표를 물가안정으로 단일화했다. 경험상 중앙은행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물가안정이고 여러 목적을 수행할 정책 수단도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중앙은행이 '해야 할 일'보다 '할 수 있는 일'에만 주력한다는 것은 지극히 소극적인 자세다. 중앙은행이 금융시장을 떠나 거시경제라는 갈라파고스로 도피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오늘날 중앙은행이 직면하고 있는 도전은 다분히 자업자득인 셈이다. 우리의 경우도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물가안정이 최우선 목표로 설정됐고 규제감독 업무는 통합 금융감독기구로 이관됐다. 한국은행이 금융시장을 떠나 갈라파고스로 들어가는 배경이다. 한국은행은 그동안 물가안정이 통화정책의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공언하면서도 실제로는 환율안정에 주력했으며 금융시장 조성자로서의 역할은 거의 수행하지 못했다. 물가안정목표제 도입으로 그동안 진전된 투명성ㆍ책임성,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등이 통화정책의 신뢰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고 물가안정 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결과 한국은행은 국민들로부터 과거 어느 때보다도 높은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다. 그러나 물가안정이 금융안정을 반드시 보장하지는 못한다. 일반물가가 낮은 수준에 안정돼 있는 시기에는 금리도 낮은 수준에 있기 때문에 과다한 신용확대로 자산가격 거품이 발생, 붕괴되는 과정에서 금융위기가 생길 수 있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가 바로 그 전형적인 예다. 한국은행이 창립 60주년을 맞이한 뜻깊은 이 시점에 중앙은행의 역할이 다시 넓어지고 있다. 중앙은행이 물가ㆍ금융 안정이라는 두 가지 책무를 효과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앞으로 정책수단 확충, 금융감독당국과의 긴밀한 협력, 중앙은행 간 상호 협력을 위한 노력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중앙은행이 금융시장으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지급결제제도를 비롯한 금융시장의 제도적 인프라를 끊임없이 조성함으로써 금융시장 전체의 질서를 건전하게 유지하는 가운데 중앙은행의 정책이 유효하게 연결될 수 있는 인센티브 고리를 가다듬어야 한다. 일찍이 벤 프리드먼은 "이러한 추세가 지속될 경우 중앙은행은 멀지 않은 장래에 통화정책을 통해 경제활동에 영향을 전혀 미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도래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세계 금융시장 분석력 극대화를 이러한 방향에서 한국은행은 앞으로 첫째, 금융시장을 면밀히 분석해 흐름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국내외 금융기관과 국제 금융기구에 직원을 파견해 비전ㆍ리더십ㆍ전문지식을 겸비한 유능한 금융전문가를 많이 양성해야 한다. 둘째, 중앙은행 내부에 한국개발연구원(KDI)이나 금융연구원 수준에 버금가는 금융시장 전문연구기관을 둬 거시경제뿐만 아니라 금융 및 외환 시장 관련 연구를 심도 있게 수행할 필요가 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