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자유무역협정(FTA) 정국을 둘러싼 여야 간 대치 구도가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자 야권은 ‘쇠고기 공조’ 균열현상을 보이고 있다. 수세에 몰렸던 여당은 한미 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거듭 요구하며 대반격에 나설 채비다.
◇민주 vs 선진당, 청와대 회유설 공방=야3당 쇠고기 공조의 한 축이었던 자유선진당의 김창수 대변인은 이날 해임건의안 부결 직후 기자와 만나 “쇠고기 문제를 빨리 매듭짓고 한미 FTA (비준동의안의) 처리를 위해 한나라당과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또 한미 쇠고기협정 파문 대응방안에 대해서는 “가두시위나 농성 같은 물리적 행동은 하지 않겠다.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의회 내에서 풀어가겠다”고 못박았다.
이는 쇠고기 공조를 주도했던 통합민주당ㆍ민주노동당의 입장과는 상충되는 발언이다. 민주당은 최근 쇠고기 문제가 풀려도 미국 의회가 먼저 FTA 비준 움직임을 보이지 않으면 우리 국회가 나서서 FTA를 비준해서는 안 된다는 강경입장을 보여왔다. 또 쇠고기 문제는 국회를 벗어나 장외투쟁을 벌여서라도 미국과의 재협상을 이끌어내겠다는 방침이었다. 민노당 역시 장외투쟁도 불사할 수 있다는 분위기였다. 민주당 지도부의 한 핵심 관계자는 선진당의 입장을 전해듣자 “뒤통수를 맞았다”며 “앞으로 18대 국회에서는 여대야소가 될 텐데 우리끼리 분열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격분했다.
야권은 공조 균열을 놓고 책임 공방까지 벌이는 모습이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오늘 농림장관 해임건의안이 (본회의 표결에서) 부결된 것도 선진당이 배신했기 때문인 것 같다”며 “어제 청와대가 선진당을 회유하기 위해 물밑 교섭을 벌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나라당이 오늘 느긋했던 것도 그것 때문 아니겠느냐”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 대변인은 “청와대와 교섭은 없었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선진당의 또 다른 관계자는 “민주당이 (해임건의안에 대한) 자기들 표도 제대로 단속 못해놓고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한나라 ‘FTA 연장전’ 개시=한나라당은 FTA 비준안을 처리하자며 오는 26~29일 일정으로 5월 임시국회 재소집을 요구했다. 조윤선 한나라당 대변인은 “최근 국회에 FTA 비준안 처리를 요청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도 있었고 민주당 내에서도 일부 소신파 의원들이 비준안 처리를 지지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며 “이처럼 극적인 분위기 전환 가능성이 있어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비준안 처리를 위해 임시국회를 재소집하는 게 17대 국회의 책무라는 견해가 있었다”며 지도부의 기류를 전했다.
그러나 임시국회가 재소집되더라도 상임위원회나 본회의 일정조차 잡지 못한 채 공전하는 ‘먹통국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 국회가 개회되더라도 민주당 측이 의사일정 협상에 응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민주당이 의사일정에 합의하더라도 FTA 대신 쇠고기 문제 해결이나 민생법안 처리를 주장하며 맞불을 놓을 것으로 보여 소득 없는 여야 간 기싸움만 되풀이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