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행복한 100세 시대] 노년의 빈곤

경제적 빈곤보다 사랑의 결핍이 더 큰 불행<br>정신적 빈곤 극복엔 배우자 챙기기가 최고

서동필 우리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연구위원

아이들이 없으면 어색하다. 목소리 들으면 짜증부터 난다. 결혼 전 연인이 자주 생각난다.성적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부부가 결혼해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나타나는 권태기의 몇몇 증상이라고 한다. 마릴린 먼로가 지하철 환풍구 위에서 치마를 펄럭이던 장면으로 유명한 '7년만의 외출'이란 영화의 원제는 '더 세븐 이어 이치(The Seven-year Itch)'다. 권태기란 뜻이다. 왜 하필이면 세븐(7)이란 숫자가 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결혼 후 서로 이런 모습 저런 모습 다 보고 이제 더 이상 볼 것 없는 시기가 대충 그 정도 되는 모양이다. 특별히 문제가 없다면 애 둘은 있을 나이고, 호르몬에 의한 열정적 사랑은 이미 식은 지 오래일 터이다. 이 즈음 대화의 십중팔구는 아이들 얘기고, 나머지 십중일이는 돈 얘기다.

그렇다고 딱히 배우자와 이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아닌데, 그냥 보기 싫단다.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던 모습이 이제는 우적우적 씹는 소리만 들리고, 풍만한 상상을 남기던 잠자리는 둔탁한 숨소리에 잠긴 지 오래다. 속삭이던 목소리는 날카로운 바늘이 되어 귀에 박힌다. 뭘 해도 가슴이 응답하지 않는다. 중년 즈음에 찾아오는 부부의 위기다.


하지만 점점 더 오래 살게 되면서 배우자의 존재 역시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돈이 없다라는 경제적 빈곤과 함께 고령자들이 노년에 가장 힘들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외로움이나 소외감 같은 정신적 영역의 빈곤이다. 사실 노년이 돼서 경제적 빈곤과 정신적 빈곤을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 이 둘이 노년에 닥쳤다는 것은 젊은 시절에 준비를 소홀히 했다는 의미여서 짧은 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두 영역 모두 젊을 때부터 차근차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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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말년을 더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경제적 빈곤보다 오히려 사랑의 결핍, 즉 정신적 빈곤일 수 있다. 돈은 많은데 같이 쓸 사람이 없는 것보다 비록 적은 돈이나마 같이 나눌 사람이 더 소중할 수 있는 시기가 바로 노년인 것이다. 이 같은 정신적 빈곤을 해결하는 최고의 방법이 배우자 챙기기다. 늙어서 자식들 다 떠나고 팔팔하던 손발에 한기가 차기 시작하면 옆에서 온기를 더해 줄 사람은 부부밖에 없다.

특히 남성입장에서 배우자의 존재는 수명연장과 관계가 깊을 정도로 중요한 부분이다. 대부분의 장수국가나 지역에서 여성의 비율이 월등히 높은 것과 달리 이탈리아의 대표적 장수지역인 사르데냐 섬의 100세 이상 남녀비율은 거의 1대1이라고 한다. 이 지역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혼자 사는 노인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사별하더라도 바로 재혼한다고 한다. 배우자의 존재가 운동이나 음식 못지 않게 장수에 중요한 부분임을 시사한다.

세상의 많은 것들이 세월의 흐름과 동시에 처음의 감동과 열망은 줄기 마련이다. 권태기를 결혼생활 중 겪는 하나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면서 서로 노력하면 된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부부만의 공간과 시간을 갖기 위해 노력해 보기도 하고, 결혼 전 추억을 같이 나눠보기도 하자. 허심탄회하게 마음속 이야기를 드러내 보기도 하고, 그것도 아니면 혼자 여행을 떠나보기도 하자. 어떤 식으로든지 노력하고 챙겨야 한다. 소원한 관계를 방치한 채 노년이 돼서 부부관계를 복원해 보겠다고 나서는 것은 말 그대로 배 떠난 뒤 손 흔드는 일이다. 노년준비의 많은 것들이 젊은 시절부터 차근차근 해야 하는 것들이지만, 부부관계 역시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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