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가 LG카드에 구명밧줄을 던져줬다. 만약 LG카드가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선진국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면 청산절차를 밟아야 했을 것이다. 한국정부는 시장원리보다는 온정주의에 의존하는 듯 보인다. 정부가 LG카드 지원에 보증을 선 것은 LG카드에는 이익이 될 수 있지만 세금을 낸 국민들에게 비용을 떠안기는 셈이다.
한국정부는 LG카드가 전체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해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렇다면 미국이나 다른 나라 정부가 생각하지 못한 것을 한국 금융당국만 알고 있는 것일까. 해외에서는 큰 기업들이 파산한 사례가 얼마든지 있다. 이들 회사가 무너질 때도 `청산시키기에는 규모가 너무 크다`는 인식 때문에 정부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고는 했다. 이들 회사의 파산이 금융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대마불사` 원칙이 힘을 발휘했던 지난 84년 미 은행감독기관측은 규모가 크고 시장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11개 대형 은행들을 망하도록 놔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정책으로 기관투자가들은 보호를 받게 된 은행에 대한 지분을 늘려 지배력을 높이는 한편 보호를 받지 못하는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투자를 줄였다. 은행시스템을 지배하는 시장원리는 느슨해지며 결과적으로 부실채권이 늘었고 비은행 금융기관들은 자본을 구하기가 어려워져 성장할 수 없게 됐다.
당시 미국은 시장원리의 중요성을 깨닫고 시카고에 기반을 두고 있던 대규모 상업은행인 일리노이 컨티넨탈은행의 파산을 방치했다. 그 파장에 대한 우려가 컸지만 은행시스템은 손실을 흡수했고 어떤 위기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은행시스템이 더 튼실해졌다. 은행가들은 정부의 긴급지원이 아니라 시장원리가 산업을 지배하게 되리라는 것을 인식했다. 은행들은 여신에 더욱 신중해졌고 내부관리를 강화했다.
92년 캐나다계 올림피아앤요크사(社)가 무너졌다. 올림피아앤요크는 부동산회사로 런던의 유명한 `카나리월프`를 포함해 전세계에 부동산을 갖고 있었다. 당시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회사의 규모가 너무 커서 감히 청산시키지 못할 것이라 평했다. 뉴욕과 런던의 은행에 막대한 규모의 대출이 있는 대형 부동산회사가 망하면 전세계 은행시스템이 불안해질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당치 않은 걱정이었고 은행시스템에는 눈에 띄는 그 어떤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다.
반대로 긴급지원 결과가 후에 회한을 남긴 사례가 있다. 98년 미 연방준비은행은 파산위기 놓였던 헤지펀드인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에 자금지원을 했다. 중앙은행은 이 펀드가 망하면 세계 금융시장이 파국을 맞을 수 있다며 개입에 나섰지만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부 개입이 잘못된 방향으로 이뤄졌고 불필요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원 없이도 LTCM은 살아 남았을 것이고 무너졌더라도 금융시장에 파장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의 지원은 헤지펀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계기가 됐고 결국 헤지펀드들이 정부 규제를 피해 해외로 나가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국에서도 정부와 LG카드가 오늘의 상황에 이르기까지 많은 실수를 했다. LG카드는 위기관리에 대한 점검 없이 한국 내 1위 카드사가 되겠다며 과도하게 공격적으로 영업을 펴 오늘날의 위기를 자초했다. 한국 카드업계의 열풍은 99년 정부가 수출저하를 상쇄하기 위해 소비진작에 나서면서 시작됐다. 정부는 카드 소지자들에게 세금혜택을 주고 저금리를 유지했으며 카드사들은 이를 기회 삼아 신용이 거의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카드를 발급했다.
이 시점에서 일부 독자들은 한국은 시장이 작고 LG카드 파산은 전체 금융시스템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한국 금융시스템에 보다 큰 신뢰를 가질 때다. IMF 위기 이후 금융시스템은 구조조정을 거쳐 강해졌다. 일부 금융회사들은 과도한 부실채권을 안고 있지만 그들의 경영은 개선돼 기반이 건실해졌다. 장기적으로 금융시스템은 시장원리에 의해 강화되고 정부의 온정주의적인 태도로 약화될 것이다.
한국이 글로벌 금융네트워크의 구성요소인 이상 시장원리는 더욱 중요해진다. 외국투자가들은 오늘날 한국기업들이 도달한 수준보다 더 높은 수준의 투명성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을 위해 정부가 개입을 멈추고 시장원리가 작동할 수 있기를 바란다.
<손성원(美웰스파고은행 부행장) >